오늘의 시간을 온전히 나에게 선물하다
2021년 1월, 이혼 신청서를 제출하고 1년간의 장기교육을 떠나기 직전의 어느 날이었다.
나에게 하루를 선물하기로 했다. 직장에서의 시간은 온전히 나의 것이 될 수 없다.
공무원으로서 나의 하루 연차는 10만 원이 조금 넘는 연가보상비와 맞바꾸는 것이지만,
가끔은 그 돈 이상의 가치가 있음을 알기에 나는 과감히 나를 위한 하루를 샀다.
나의 발걸음이 향한 곳은 아이러니하게도 백화점이었다. 자본주의의 결정체.
나는 그곳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내면이 공허하고 삶에 찌들 때, 정신적인 허기를 물질로 채우기 위해 배회하던 곳.
하지만 이날 나를 백화점으로 이끈 것은 옷이나 가방이 아니었다.
그리움이었다.
코로나로 인해 해외는 꿈도 꿀 수 없게 된 시절, 나는 잃어버린 자유를 갈망하고 있었다.
동유럽의 낯선 풍경 속에서 ‘아, 이렇게도 살 수 있구나’라며 삶의 희망을 보았던 서른넷의 나.
아이들의 손을 잡고 겁 없이 떠났던 서유럽과 동남아의 수많은 여행지들.
그리고 마침내 오롯이 혼자만의 길을 걸었던 스페인 산티아고, 포르투갈, 프랑스.
화양연화(花樣年華) -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시절 - 그 모든 자유의 순간들이 사무치게 그리웠다.
해외여행의 백미인 면세쇼핑의 설렘을, 나는 백화점 식품관에서 대신 찾고 있었다.
가까운 곳에서 이국적인 맛과 냄새를 느낄 수 있는 효율적인 공간.
치약, 화장품, 차, 와인, 빵… 생필품 위주로 장바구니를 채우면서도,
나는 상담 선생님과 고생하는 팀원들을 위한 선물을 함께 골랐다.
곧 1년간의 장기교육을 떠나는 터라, 혼자만 이 지옥을 탈출하는 것 같은 미안함 때문이었을까.
어쩌면 떠나는 마당에라도 좋은 이미지로 기억되고 싶었던 걸까.
나는 왜 맺고 끊는 것에 이토록 서툰 걸까. 왜 이렇게 사람에게 질척댈까.
그 이유를 파고들다 보면 어김없이 ‘애정결핍’이라는 낡은 이름과 마주하게 된다.
‘날 잊지 마요’, ‘나의 순수한 진심을 알아줘요’라고 외치는 내 안의 어린 마음.
하지만 그날, 나는 나에 대한 비판과 조롱을 멈추기로 했다.
모두의 마음속에는 그런 어린아이가 살고 있지 않은가.
그 감정을 부정하고 외면하기에 이상한 방식으로 뒤틀리고 마는 것이지.
나는 내 감정을 이렇게라도 알아차리고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70살이 되어서도 나는 이렇게 어리고 지질한 모습으로 살고 싶다.
어른인 척, 센 척, 고상한 척 위장하지 않고 내 삶을 온전히 누릴 것이다.
이 글을 쓴 지도 어느덧 4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지옥을 탈출하는 미안함에, 잊히고 싶지 않은 질척임에 혼란스러웠던 그날의 제가 아릿하게 떠오릅니다.
애정결핍이라 자책했던 그 마음이,
실은 모든 것이 무너지던 세상 속에서 어떻게든 사람과의 끈을 놓지 않으려 했던
필사적인 몸부림이었음을 이제는 압니다.
자유로웠던 여행의 순간을 ‘화양연화’라 그리워했지만,
돌이켜보면 나를 지키기 위해 하루의 연차를 기꺼이 샀던 그날이야말로,
제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 중 하나였습니다.
스스로에게 선물을 건네는 법을 배우던 그 위태로운 시간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미정다운 제가 존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