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걱거리는 것들에게 필요한 잠시의 멈춤
"끼이익, 덜덜덜."
고속도로 위에서 차가 비명을 질렀다. 작년부터 주차장 한 구석에 방치되다시피 했던 나의 애마(愛馬)는, 내가 무당으로서 일을 시작한 10월부터 고속도로를 쌩쌩 달리기 시작했다. 올 1월 점검 때 어느 정도 주행해도 된다던 정비사의 말에 너무 방심하고 말았다.
평택에서 청주로 향하던 길, 첫눈이 내리던 날이었다. 브레이크를 밟는 내 발끝으로 녀석의 떨림이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이 차가 어떤 차인가. 몇 년 전, "단명할 사주라니 죽기 전에 드림카나 타보자!" 하는 객기 반, 설움 반으로 질러버렸던 녀석이다. 그때는 나를 태우고 어디든 쌩쌩 달려줄 것 같더니, 주인을 닮아가는 건지, 세월 탓인지 이제는 녀석도 여기저기 아프다고 아우성이다.
하기야, 고장 난 게 어디 차뿐일까. 핸들을 잡고 있는 나도 지금 정상은 아니다.
지난 한 달여 시간은 '나'라는 자아가 믹서기에 갈려 나가는 시간 같았다
24년 차 공무원의 빳빳했던 명함은 내려놓았는데, 신입 무당의 명함은 아직 잉크도 마르지 않았다. (사실 종이 명함 자체가 없다.) 굿당의 차가운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배추를 절이고, 굿상을 차리고, 빗자루질과 걸레질 같은 허드렛일을 하다가 불호령 같은 꾸지람을 듣는다.
"똑바로 안 해?" "정신 안 차릴래?"
혼나고, 위축되고, 다시 눈치를 본다. 몸은 고되다. 굿판의 육체노동은 체력을 키우는 근력 운동과는 차원이 다르다. 뼈마디 사이사이에 찬바람이 든 것처럼 시리고 쑤신다. 그렇게 몸이 힘드니 마음도 덩달아 파업을 선언한다.
'나 지금 잘하고 있는 건가?' '오늘 하루, 도대체 뭘 남긴 거지?'
성과는 눈에 보이지 않고, 의심은 잡초처럼 자라난다. 화려한(?) 무당이 되어 폼 나게 살 줄 알았는데, 현실은 기름때 묻은 작업복을 입고 있는 기분. 그렇게 자존감이 바닥을 칠 때쯤, 차도 함께 퍼져버린 것이다. 참, 타이밍 한번 기가 막히다.
"부품이 없어서 며칠 걸립니다. 여기저기 손볼 데가 많네요."
정비 기사님의 무심한 진단이 마치 나에게 하는 말 같아 뜨끔했다. 며칠 뒤, 부품이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고 차를 정비소에 맡겼다. 정비소를 터덜터덜 걸어 나오며, 휴대폰을 꺼내 병원 건강검진을 예약했다. 차를 고치러 온 김에, 나도 좀 고쳐야겠다 싶어서. 경고등이 들어왔는데 무시하고 달리면 폐차밖에 더 되겠나.
차가 없으니 걷는다. 걷다 보니 스타벅스가 보인다. 홀린 듯 들어가 윈터 시즌 시그니처 메뉴인 달달한 커피 한 잔을 시켰다. 한 모금 들이키니, 머리끝까지 찌릿하게 당이 차오른다. 창밖으로 유모차 탄 아기가 지나가고, 털이 복슬복슬한 강아지가 꼬리를 흔든다. 앙상한 겨울나무는 생명력을 잃지 않고 살아남아 꿋꿋하게 서 있다. 그걸 보고 있으니 피식, 웃음이 난다.
방금 전까지 "내 인생은 고장 났어" 하며 땅을 파고 들어갔는데, 고작 달달한 커피 한 잔, 지나가는 아기와 강아지, 굳건히 서 있는 겨울나무에 마음이 스르르 풀린다.
나란 인간, 행복의 진입장벽이 낮아도 너무 낮다. 참 가성비 좋은 인간이다.
차도 고장 나고, 나도 고장 났다. 하지만 뭐 어떤가. 고장 나면 고치면 그만인 것을
열심히 달렸으니 부품이 닳는 건 당연하다. 차가 정비소에서 수리되는 동안, 나도 잠시 시동을 끄고 건강검진을 예약하며, 달다구리한 커피와 잔잔한 겨울 풍경으로 나의 정체성을 찾아간다.
다시 쌩쌩 달리기 위해, 지금은 삐걱거리는 우리에게 '쉼표'를 찍어줄 시간이다.
지난 8년간 나를 태우고 열심히 달려왔던 애마(愛馬)의 고장은, 꽤나 적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