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동무당의 좌충우돌 굿당 적응기, 그리고 메멘토 모리
나는 무당인가, 머슴인가?
지난주 목요일부터 일주일 남짓, 나는 청주의 한 굿당에서 배추를 절이고 양념을 준비하며 김장을 마무리하는 시간과 함께, 무당으로서 본연의 업무인 굿을 준비하고 참석하며 쉴 틈 없이 달리는 시간을 보냈다. 24년 동안 펜대를 굴리던 손은 고무장갑 안에서 퉁퉁 불었고, 허리는 끊어질 듯 비명을 질렀다. 함께 일하는 신령님의 제자들, 그중에서도 가장 엄격한 책임자인 나의 친언니에게 수시로 욕을 먹었다. "입 다물어. 웃고 떠들지 마. 네가 가벼우면 네 신령님도 가벼워져."
예전의 나였다면 참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왜 그래야 하는데?"라며 자존심을 세우고, 감정을 폭발시켰을 것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화가 나지 않았다. 아니, 화를 낼 힘조차 없었다는 게 맞겠다. 육체의 고통이 극한에 달하니, 감정이라는 사치스러운 것이 끼어들 틈이 없었다.
그 순간, 나는 기묘한 평온을 느꼈다. 아, 이것은 머슴의 노동이 아니라, 자아가 비대해진 나를 짓누르는 '몸의 기도'구나. 나약하고 말 많은 '인간 김미정'을 죽여야만, 비로소 신의 말을 전하는 '일월 꽃무당'이 살 수 있기에. 나는 그 굿당의 차가운 바닥에서 내 안의 껍질을 하나씩 벗겨내고 있었다.
굿판에서 배운 '기회비용'의 계산법
사람들은 쉽게 말한다. "멀쩡한 공무원 관두고 왜 그 힘든 무당을 해?" 무속의 세계를 잘 모르는 이들은 무당을 사회의 밑바닥 인생이라 여기기도 한다.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잃을 것 없는 이들이 마지막 동아줄을 잡듯 들어오는 경우도 있으니까.
하지만 나의 경우는 조금은 다르다. 나는 꽤 비싼 입장료를 내고 이 세계에 들어왔다. 24년의 공무원 경력, 남부럽지 않은 연봉, 사무관 승진, 그리고 죽을 때까지 보장된 공무원 연금. 나는 그 안락한 안전장치를 모두 담보로 걸었다.
경제학적으로 따지자면 미친 짓이다. 하지만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 그 명제를 대입하면 계산은 의외로 단순해진다.
나의 할머니 신령님은 내게 "짧은 명줄을 이어주겠다"라고 하셨다. 나는 단 1초도 망설이지 않았다. 죽어서 아이들의 복을 빌어주는 귀신이 되느니, 살아서 내 아이들에게 다정한, 비빌 언덕이 되어주는 엄마가 되기로 했다. 내가 치른 그 막대한 기회비용은, 내 생명과 아이들의 엄마로 살아갈 시간에 대한 '값비싼 수업료'였다. 그러니 나는 주눅 들지 않는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합리적이고 본능적인 등가교환을 했으니까.
원망하는 자는 복을 걷어찬다
이번 일정 중 목격한 한 할머니 만신의 '퇴송굿(신을 돌려보내는 굿)'은 내게 충격이었다. 평생을 무당으로 사셨던 할머니의 마지막. 그 굿판에서 울부짖는 자손을 보았다. "아버지가 밉다, 나한테 왜 그랬냐"며 원망을 토해내는 그 모습에서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살아있는 나의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었다.
상처받은 인간의 눈으로 보면 억울함뿐이다. 하지만 죽음을 건너간 조상신의 눈으로 보면, 가해자였던 아버지 또한 운명의 수레바퀴에 낀 가여운 중생일 뿐이었다. 자신의 억울함에 갇혀 있으면, 신이 주려는 복이 세 개여도 두 개는 발로 차버리게 된다.
나는 결심했다. 내 안의 상처, 트라우마, 인간적인 억울함을 굿당의 쓰레기통에 버리기로. 살아서 원(冤)을 풀지 못하면 죽어서 그 원과 한은 몇 배로 커질 뿐이다. 나는 무당이니까,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의 마음을 모두 이해해야 하는 존재니까, 내 상처 따위는 이제 거름으로 써버리기로 했다.
썩은 것을 도려내고, 다시 신당으로
일주일 만에 평택의 신당으로 돌아왔다. 주인이 비운 사이, 제단에 올려둔 음식에는 곰팡이가 슬어 있었다. 나는 그것들을 담담하게 치웠다. 시간이 지나면 음식은 썩기 마련이다. 썩은 것은 도려내고 버리면 그만이다. 마치 내가 지난 일주일간 내 안의 썩은 자존심과 아집을 도려내고 온 것처럼.
청소를 마치고 향을 피우니, 비로소 마음이 편안해진다. 190여 명의 구독자가 기다리는 유튜브, 그리고 나를 기다리는 신령님들. 나는 여전히 실수가 잦고, 언니에게 혼나는 '걸음마 단계'의 애동무당이다. 하지만 나는 안다. 나는 이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공무원증은 반납했지만, 대신 '살아있음'이라는 가장 빛나는 명찰을 달았다.
오늘도 나는 초콜릿 하나를 입에 물고, 내 안의 동자님과 함께 웃는다.
"아이고, 인생 참 달고 쓰다! 그래도 살아있으니 얼마나 재밌는가!"
어느 날은 머슴 같고, 어느 날은 여왕 같은, 평택의 이중생활자 일월 꽃무당 김미정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