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돌릴 틈 없는 11월의 끝에서, 나만의 성소(聖所)를 지키며
11월 30일 오후, 평택. 나만의 견고한 성(Castle)에서
11월의 마지막 날 오후 3시. 그저께 이사를 마친 평택 신당 거실에 잠시 앉았다. 아직 채 풀지 못한 이삿짐들이 눈에 띄지만, 이 공간에 들어선 순간 느껴지는 공기는 다르다.
이곳은 평택. 신당을 모신 지 이제 갓 한 달이 지난 이곳은 나에게 단순한 집이 아니다. '일월꽃무당'으로서의 삶이 뿌리내리는 성소(聖所)이자, 세상의 소음에서 벗어나 온전히 나로 존재할 수 있는 '나만의 견고한 성(Castle)'이다. 비록 몸은 고단할지라도, 이곳에 머무는 순간만큼은 내면이 꽉 차오르는 충만함을 느낀다. 이곳은 온전히 나를 위한 세상이다.
성소 밖, 거친 현실의 속도
하지만 이 성(城) 밖의 현실은 숨 돌릴 틈 없이 돌아간다. 어제는 온종일 굿을 했고, 잠시 후 오후 5시에는 내일 있을 굿 준비를 위해 또다시 청주로 내려가야 한다. 이것이 지금 내 삶의 속도다.
나는 무당이다. 사람들은 무당이 자기 앞날도 훤히 내다볼 거라 생각하겠지만, 실상은 다르다. 나는 내 점을 보지 못한다. 그저 조상님들이 알려주시는 희미한 징조들과 사주의 흐름을 보며, 이 11월이 거대한 액땜의 폭풍우가 될 것임을 짐작했을 뿐이다.
알고도 온몸으로 맞닥뜨려야 하는 현실은 가혹했다. 굿판에서 나는 내가 아니었다. 신령님과 조상님이 실리는 완벽한 통로가 되어야 했다. 하지만 '인간 김미정'으로 돌아오면, 밀려오는 고립감과 외로움, 그리고 이미 나의 한계를 벗어나 버린 육체노동의 흔적들을 맨몸으로 받아내야 했다. 그것이 나의 성소 밖에서 마주하는 현실이다.
폭풍 속의 고요, '아무것도 너를...'
이사와 굿, 틈틈이 이어지는 전화와 방문 점사, 그리고 라이브 방송까지. 성소 안과 밖을 오가는 숨 가쁜 일정 속에서 나를 지탱해 준 것은 역설적이게도 아주 고요한 것들이었다.
가장 괴롭고 지칠 때, 나는 가톨릭 성가를 듣는다. 돌아가시기 전까지 처절하게 성가를 부르시며 기도하셨던 어머니. 엄마의 고단한 삶에 희망이 되어준 성당에서 어린 나 역시 간절히 기도했던 그 기억.
"아무것도 너를 슬프게 하지 말며, 아무것도 너를 혼란케 하지 말지니..." 스피커 너머로 들려오는 <아무것도 너를>의 담담한 위로. "왜 슬퍼하느냐? 왜 걱정하느냐? 무얼 두려워하느냐? 아무 염려 말아라." 며 따뜻하게 나를 다독여주는 <왜 슬퍼하느냐>의 선율.
그것은 내 영혼 가장 깊은 곳에 뿌리내린 또 하나의 성소이자, '인간 김미정'을 지탱해 온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다. 무당이라는 운명 앞에서도 결코 놓을 수 없는 내 안에 자리 잡은 습관이자 해방구. 아마 신령님들조차 이 영역만큼은 그저 내버려 두시는 것인지도 모른다.
다시, 길 위로
이제 몇 시간 뒤면 12월이고, 곧이어 거대한 불기둥이 폭발한다는 병오년(丙午年)이 온다. 11월의 폭풍우는 예고편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
솔직히, 여전히 두렵다. 거대한 활화산 분화구 앞에 선 기분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나의 성소, 평택 신당에서 잠시나마 충전한 에너지로 다시 일어선다.
주섬주섬 청주행 가방을 챙긴다. 11월을 겨우 통과해 낸 나는, 나만의 완벽한 캐슬을 뒤로하고, 신의 통로이자 동시에 어머니의 기도를 가슴에 품은 한 인간으로서 다시 길 위로 나선다.
이것이 지금 나의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