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중간'이 없는 인간일까?

극단의 열정과 무기력 사이, 도파민 중독 무당의 고백

by 미정다움

어제의 지옥, 오늘의 허무한 평온


어제는 분명 지옥이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짜증이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치밀어 올랐고,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싫은 무기력함이 나를 집어삼켰다. 예정되어 있던 라이브 방송을 펑크 내고, 억지로 잠을 청하며 생각했다. "다 때려치우고 싶다. 이게 맞는 길인가?"

그런데 야속하게도, 오늘 아침 눈을 뜨니 거짓말처럼 기운이 달라져 있다. 어제 나를 죽일 듯이 짓누르던 그 감정의 파도는 언제 그랬냐는 듯 잔잔하다.

허무하다. 동시에 두렵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감정이 널뛰고, 보이지 않는 기운에 육체가 휘둘려야 하는 삶. 이것이 무당의 숙명인가. 어제는 이것을 "신령님이 주신 강제 휴식"이라고 포장하며 합리화하고 싶었지만,

솔직해지자. 이건 달콤한 휴식이 아니라 '고통스러운 적응기'다.

24년간 '계획'과 '통제' 속에 살아온 공무원 김미정이, 예측 불가능한 '신의 영역'에 익숙해지기 위해 겪어야 할, 피할 수 없는 성장통인 것이다.



11월, '신(神)뽕'이라는 이름의 도파민


시간을 조금 되돌려 지난 11월을 기억해 본다. 평택에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일월꽃무당'이라는 나만의 '신당'을 모시던 날들. 나는 사람이 아니라 '불꽃'이었다.

24년 공무원 생활을 뒤로하고 선택한 무당이라는 제2의 인생. 그 시작에 대한 설렘과 열망이 나를 지배했다. 잠을 못 자도 피곤하지 않았고, 낯선 굿판에 뛰어들어 제금을 쳐도 즐거웠다. 신령님과 함께라면 천하를 호령할 것 같은 근거 없는 자신감, 소위 말하는 '신뽕'에 취해 있었다.

그때는 몰랐다. 그것이 뇌가 뿜어내는 강력한 '도파민'의 장난이었음을. 나는 내가 가진 에너지의 총량을 계산하지 않은 채, 내일 쓸 체력까지 가불해서 마구 쏟아부었다. 그 달콤한 고양감이 빠져나간 자리에, 얼마나 지독한 금단현상이 기다리고 있을지 짐작조차 못한 채.



12월, 환상이 깨지고 현실이 덮치다


12월이 되자마자 축제는 끝났다. 연례행사인 김장의 거대한 노동, 연일 이어지는 굿판 참석, 그리고 긴장이 풀린 틈을 타 침투한 독감과 몸살. 나의 육체는 비명을 지르며 파업을 선언했다.

11월의 도파민이 빠져나간 자리에 잿더미 같은 무기력만 남았다. 바닥을 찍다 못해 지하로 꺼지는 기분이었다. 새해가 밝았음에도 내 몸과 마음은 여전히 12월의 진흙탕 속에 있었다. "긍정적으로 다시 시작해 보자"는 다짐은 하루를 못 갔다.

나는 재작년 10월 명예퇴직 이후 1년간 이 세계를 외면하고 도망친 방랑자였다. "인간 김미정으로 살 거야." 그렇게 선언하며 나를 찾기 위해 떠돌고 방황했다. 그러다 막다른 길에 다다라서야 겨우 무릎을 꿇고 이 길을 받아들였다.

그런데 고작 신당을 차린 지 석 달 만에, 내가 짠 하고 도인이 될 수 있을까?

그건 불가능하다. 1년을 도망 다녔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신의 뜻을 완벽히 이해하고,

모든 고통을 초월한다는 건 인간으로서의 오만이자 망상이었다.



'지기', 인간의 때를 벗기는 고통


사람들은 무당이 굿을 할 때만 '지기(조상님의 신호)'를 느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겪어보니 지기는 일상 그 자체다. 예약 손님의 이름만 들어도, 다가올 굿 날짜만 잡아도, 심지어 아무 일 없는 날에도 지기는 예고 없이 들이닥친다.

어제 내가 느꼈던 그 죽을 것 같은 짜증과 답답함. 그것은 내 성격이 파탄 나서가 아니라, 무당으로서의 본질이 작동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고통을 미리 감지하고, 신의 신호를 육체로 받아내는 과정.

하지만 내 안의 '인간 김미정'은 여전히 저항한다. "왜 내 마음대로 안 돼? 왜 계획대로 안 흘러가?" 24년간 공직 생활로 굳어진 습관, 통제하고 싶은 자아, 인정받고 싶은 욕망... 이 묵은 때들을 벗겨내야만 비로소 무당의 새 살이 돋아난다.

지금의 이 괴로움은 피부에 달라붙은 인간의 습관을 억지로 떼어내는 '박피'의 고통이다.

그러니 아픈 게 당연하다.



마법은 없다, 그날의 숙제만 있을 뿐


나는 이제 인정한다. 나의 꿈, 나의 거창한 계획들은 그저 인간으로서 꾸는 헛된 망상일 뿐이라는 것을.

이 길에는 마법 같은 반전이 없다. 어느 날 갑자기 도통해서 모든 게 편안해지는 기적도 없다. 무당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주어지는 일'을 해내야 하는 사람이다.

오늘 아침 눈을 떴을 때 주어지는 기운, 오늘 내게 찾아오는 인연, 오늘 닥쳐오는 감정의 파도, 육신의 고통. 그것이 신령님이 내게 내주신 '그날의 숙제'다. 내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고, 내 몸이 내 마음 같지 않다고 발버둥 칠 필요가 없다. 애초에 내 의지대로 흘러가는 판이 아니니까.

나는 지난 1년, 인간으로서 내 욕망에 충실하고자 오로지 내 의지대로 살았다.

그러니 어른들이 나를 위해 조용히 기다려주셨던 그 최소한의 시간만큼은,

나 또한 기본기를 다지고 걸음마부터 배우는 '애동(아기 무당)'으로서의 삶에 충실해야 한다. 그것이 예의다.

넘어지면 넘어진 김에 쉬어가고, 울고 싶으면 실컷 울면 된다.

도파민 중독자처럼 열정에 들뜨지도 말고, 번아웃에 패배감 느끼지도 말고.

그저 닥치는 대로, 주어지는 대로. 오늘 하루의 숙제를 묵묵히 해 나가는 것.

수동적인 순응이야말로, 내가 이 세계에서 살아남는 유일한 능동적인 의지임을 깨닫는다.

하지만 이것은 패배감에 젖은 맹목적인 순응이 아니다.

이 세계의 문법을 철저히 배우고 익혀, 훗날 가장 나다운 방식으로, '내 스타일'대로 살아내기 위한 치열한 도움닫기다.





사실, 오늘은 널브러져 있을 틈이 없다. 어제 나를 집어삼킬 듯했던 그 끈적한 무기력함이 거짓말처럼 걷혔다. 오늘은 '움직여야 하는 기운'이 나를 일으켜 세웠기 때문이다.

개운해진 마음으로 신당을 쓸고 닦았다. 밀린 일들을 하나씩 차근차근 처리하고, 내일 있을 굿을 위해 짐을 챙겼다. 이제 청주로 달려야 한다.

이것이 오늘의 숙제다. 어제는 '멈춤'이 숙제였고, 오늘은 '달림'이 숙제일 뿐이다.

하지만 분명히 하고 싶다. 나는 기운에 휘둘려 억지로 끌려가는 것이 아니다.

이 기복 심한 감정이 내 못난 성격 탓이 아니라 '무당의 지기'임을 알아차렸기에, 비로소 자책을 멈추고 다시 일어설 명분용기를 얻은 것이다.

기운은 바람이고, 나는 그 바람을 타는 뱃사공이다.

바람이 부는 방향을 알았으니, 이제 키를 잡고 나아가는 건 오롯이 나의 몫이다.


자기 객관화와 성찰, 그리고 다시 시작할 용기. 글을 쓰며 나는 그것을 얻었다.


그렇게 나는, 나의 의지로 엑셀을 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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