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초를 켜고, '발암물질'을 피우며
사람들은 무당의 신당(神堂)이라 하면, 숨이 턱 막힐 듯 진동하는 독한 향나무 냄새와 알록달록 화려하게 꾸며진 '전안(殿內)'을 떠올린다. 대개 그곳엔 시들지 않는 꽃, '조화(造花)'가 가득하기 마련이다. 화려한 색색의 꽃들이 전안을 채우고 있어야 신령님의 위엄이 산다고들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신당의 풍경은 조금 다르다. 24년이라는 긴 공직 생활의 마침표를 찍고 내가 마련한 이 작은 보금자리에는 그 흔한 조화 한 송이 꽂혀 있지 않다. 대신 나는 초를 켠다. 무당집 어디에나 굴러다니는, 아무런 장식도 없는 투박하고 하얀 일반 양초다.
그저 그 밋밋한 하얀 초에 불을 붙이고, 나는 나만의 위험한 사치를 부린다. 바로 '향(香)'이다. 남들 다 쓰는 근엄한 냄새 대신, 나는 은은한 라벤더 향부터 갖가지 이국적인 향기가 가득한 인도산 인센스 스틱을 고른다.
엄숙한 전안에 웬 인도산 인센스냐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이 다채로운 향기들이 좋다. 서슬 퍼런 작두 날 위를 걷는 듯한 무당의 삶 속에서도, 이 이국적인 공기만큼은 '인간인 나'를 부드럽게 감싸주기 때문이다.
나는 꽃을 꽂지 않는다. 하지만 정성을 다해 기도를 올리다 보면, 타오르는 그 평범한 하얀 초 심지 끝에 영롱하고 붉은 몽우리가 맺힐 때가 있다. 무당들은 그것을 '초에 꽃이 폈다'고 말한다.
그래, 내 전안에 시들지 않는 가짜 꽃은 없으나, 그 하얀 초 끝에 진짜 꽃은 피었다. 연기 속에 피어난 그 뜨거운 불꽃을 바라보며, 나는 오늘도 무당이 아닌 낭만주의자로서의 꿈을 꾼다.
무당의 길은 냉정해야만 한다. 신령님은 인간의 사사로운 감정이나 미련에 휘둘리지 않으신다. 잘못된 인연은 칼같이 끊어내라 하시고, 독이 되는 길은 돌아보지 말고 도망치라 호통치신다. 내 앞에 앉아 눈물을 훔치는 내담자를 향해 신령님은 차갑고 정확한 공수를 내리신다.
"너에게 해로운 인간이다. 전혀 도움이 안 되니 당장 내쳐라."
그 짧은 한마디가 누군가에겐 인생을 바꾸는 경고가 되겠지만, 그 공수를 입 밖으로 내뱉어야 하는 내 육신은 너무나 뜨겁고 아프다. 내 인생을 망치고 있는 그 '해로운 사람'을 차마 놓지 못해 어깨를 들썩이며 우는 그 여자의 눈동자를 볼 때, 내 안의 낭만은 자꾸만 신령님의 칼날을 무디게 만든다.
차마 "헤어져!"라는 말이 비수처럼 나가지 않는 이유는, 그 미련한 사랑조차 그 사람에겐 유일한 낭만이었음을 알기 때문이다. 나 또한 한때는 사랑에, 사람에, 그 빤한 낭만에 인생을 걸고 울어본 여자였기에 그렇다. 신의 뜻을 전해야 하는 엄중한 '사명'과, 사람의 무너진 마음을 먼저 안아주고 싶은 '본능'. 그 괴리감 속에서 나는 매일 밤 자욱한 인센스 연기를 마시며 남몰래 앓는다.
어제는 기도를 올리다 말고 주체할 수 없이 펑펑 울었다. 사는 게 너무 팍팍하다며, 이제는 버틸 힘조차 없다며 찾아왔던 어느 20대 청년의 구부정한 뒷모습이 자꾸만 전안의 연기 사이로 아른거려서였다. 신령님은 "살 놈이니 걱정 마라"며 짧게 던지셨지만, 그 청년이 짊어진 삶의 무게가 내 어깨를 짓누르는 것만 같아 견딜 수가 없었다.
신은 전지전능하여 인간의 고통을 이미 알고 계시기에 걱정이 없으시겠으나, 인간인 나는 당장 내일이 걱정이고 오늘이 아프다.
나는 서슬 퍼런 신의 제자이기 이전에, 아이 셋을 연달아 낳고 기른 엄마이자, 여전히 문학을 사랑하고 시 구절에 마음을 뺏기는 소녀이기 때문이다.
눈물을 닦으며 가끔 생각한다. 아니, 아주 자주 생각한다.
내가 조금 더 독한 사람이었다면, 낭만 같은 건 개나 줘버린 냉혈한이었다면,
이 무당 노릇이 좀 더 쉬웠을까.
김용택 시인은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라며 설레는 마음을 노래했지만, 나는 달이 뜨면 누군가의 앞날을 걱정하며 가장 먼저 초를 켜야 한다. 시인은 달빛에 취해 시를 쓰면 그만이지만, 무당인 나는 그 달빛 아래 숨겨진 시커먼 그림자까지 읽어내야만 한다.
오늘도 나는 전안에 앉아 투박한 하얀 초를 켠다. 그리고 뉴스에서 '발암물질'이 나온다며 온 세상이 기겁하고 갖다 버렸던, 바로 그 인도산 향을 다시 꺼내 든다. 남들은 폐가 상한다며, 건강에 치명적이라며 손사래를 치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불을 붙인다.
누군가는 나를 보고 미련하다고 할 것이다. 제 몸 하나 챙기지 못하는 무당이 무슨 남의 운명을 논하느냐고 비웃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나에게는 그깟 발암물질보다, 낭만 없는 건조한 공기가 훨씬 더 치명적인 것을. 폐가 조금 헐고 숨이 가빠지더라도, 당장 내 코끝에 머무는 이 이국적인 위로가 더 급한 것을.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는 것보다 행복하다"던 어느 시인의 말처럼, 나는 신령님의 칼날 같은 진실을 전하면서도 끝내 인간을 향한 낭만적인 연민을 포기하지 못한다. 그것이 나를 갉아먹을지라도 말이다.
자욱한 연기가 보랏빛으로, 때로는 짙은 흙내음으로 흩어지고, 하얀 촛불 끝에 다시 붉은 몽우리가 맺힌다.
나는 무당이지만, 여전히 시를 읽고, 위험한 향기를 탐닉하며 스스로를 태우는 대책 없는 낭만주의자니까.
비록 내 육신은 신령님의 길을 걷는 제자의 것이나, 이 연기 속에서 피어오르는 인간 미정다움의 낭만만큼은 온전히 나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