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량주가 물처럼 달던 밤, 중국 할머니가 내게 오셨다

엄숙함은 질색이라, 낭만을 선택한 어느 무당의 기록

by 미정다움

어제는 평택의 밤공기가 유난히 달았다. 신당에 앉아 고량주 한 잔을 따랐는데, 술이 술 같지 않고 그저 맑은 물처럼 목을 타고 넘어갔다. 이건 내 목구멍이 아니라, 내 몸에 실린 ‘그분’이 마시는 술이었다. 지난 진적굿에서 쌍둥이를 품고 내게 오셨던 나의 중국 할머니.


할머니는 고량주 향을 맡으며 내 입을 빌려 나직이 뱉으셨다. “기분 좋다... 참 좋다.”

그 투박하고도 다정한 한마디에 24년 공직 생활이 내 몸에 입혀두었던 빳빳한 풀기들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비장하게 운명을 탓하며 우는 무당은 내 체질이 아니다. 사실 신당을 차리고 나서부터 내 일상에는 기이하고도 선명한 변화들이 찾아왔다.


어느 날은 코스트코에 장을 보러 갔다가 화려한 미미 인형 앞에서 발을 떼지 못하고 아이처럼 엉엉 울어버렸다. 내 몸주로 오신, 아주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난 나의 이모 '선녀 애기씨'의 서러움이 인형을 보자마자 내 눈을 통해 터져 나온 것이다. 또 평생 예쁜 커피잔 하나 가져보지 못한 채 고단한 삶을 사셨던 나의 엄마, 이모, 할머니들의 못다 한 취향 때문이었을까. 나는 홀린 듯 고흐의 '아몬드 나무' 꽃그림이 그려진 화사한 커피잔을 사 들고 왔다. 그분들이 누리지 못한 소박한 낭만을 이제야 내 손을 빌려 채워드리고 싶었나 보다.


가장 신기한 건 **면경(거울)**이었다. 진적굿에서 중국 할머니를 정식으로 찾아내기 전부터, 나는 이상하게도 해산말명 할머니의 상징인 면경을 미리 사고 싶어 마음이 조급했다. 내가 면경을 사고 싶어 한다는 걸 알게 된 우리 언니는 선뜻 면경을 주문해 내게 선물해 주었다. 신당 한쪽을 채울 그 거울을 언니의 도움으로 미리 준비하며, 내 영혼은 이미 그분이 오실 길을 마중 나가고 있었던 셈이다.


그 거울 속에 비친 서사는 생각보다 깊고 장엄했다. 나의 외증조할아버지는 일제강점기 시절, 뜨거운 가슴을 품고 만주로 건너가 독립운동에 투신하셨던 분이다. 광활한 대륙에서 말을 타고 달리며 시대를 정면으로 마주하셨던 할아버지. 그 험난한 여정 속에서 외증조할머니는 삼 형제를 데리고 고국으로 돌아오셨고, 홀로 만주에 남겨진 할아버지가 운명처럼 만난 분이 바로 나의 중국 할머니다.


하지만 운명은 가혹했다. 말을 타며 누비던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시자, 홀로 남겨진 중국 할머니와 어린 애기씨에게 닥친 건 도적떼의 침입이었다. 도적들은 집에 불을 질렀고, 할머니는 어린 딸을 품에 안고 그 거센 불길 속에서 함께 스러져가셨다. 백 년 전 만주 벌판의 눈보라와 불길 속에서 잊혔던 그 서러운 넋들이 이제야 비로소 나를 만나 웃으시는 것이다. 그 웃음에 제대로 응답하고 싶어 나는 요즘 서툰 중국어 공부를 시작했다.


“니↗️ 셩↘️ 자이↘️ 저↘️머 하오↘️ 더 시↗️ 다이↘️, 둬〰️ 하오↘️ 아〰️.”

(너 이 좋은 시절에 사니 얼마나 좋냐.)

할머니가 내게 건네는 이 한마디가 가슴에 박혔다. 내가 누리는 이 평범한 일상이 누군가에겐 그토록 바랐던 '좋은 시절'이었음을 깨달으며, 나는 무당이자 학습자의 길을 걷는다.


나는 흔히 무속이라 하면 떠올리는 무거운 비장미와 엄숙함에 동의하지 않는다. 왜 무당은 늘 날 선 칼날 위에서 비극만을 말해야 하는가? 나는 오히려 삶의 ‘낭만’과 ‘열정’을 노래하고 싶다. 사람을 겁주는 무서운 권위 대신, 이웃처럼 대화하고 공감하는 무당이고 싶다.


어제 5시간 가까운 라이브 방송을 하며 확인했다. 채팅창에서 시청자들과 실시간으로 대화를 주고받는 이 **‘대화형 상담’**이야말로 내가 추구하는 탈권위의 현장이다. 모르는 게 있으면 "나 이거 모르니까 좀 알려줘"라고 솔직하게 손 내밀고, 실수하면 미안하다고 사과할 줄 아는 자연스러운 여유. 그 진정성이야말로 이 시대가 원하는 진짜 영검함이라 믿는다.


사람들은 말한다. 24년 차 공무원의 연봉과 퇴직 후 보장된 연금을 모두 포기하고 미쳤냐고. 그래, 나는 기꺼이 이 아름다운 신명에 미쳐보려 한다. 미쳐야 산다. 굿당의 정직한 극한의 육체노동자로 살든, 밤새 5시간 라이브를 하며 목을 쓰든, 혹은 평택 신당에 앉아 조용히 글을 쓰든 본질은 하나다. 지금 내 표정이 너무나 좋다는 것. 언니가 선물해준 명경 속에 비친 내 맑은 얼굴이 곧 할머니의 얼굴이고, 그것이 나의 정답이라는 확신이다.


배가 고프지 않다. 신령님의 기운으로 충만한 지금, 나는 다시 내일의 청주 길을 준비한다. 사랑하는 이들의 손길로 놓인 거울을 닦으며 다짐한다. 나는 앞으로도 낭만을 노래하는 무당으로, 오늘의 나를 기록하는 작가로, 이 뜨거운 열정을 이어 나갈 것이다.





담쟁이


도종환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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