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과 사는 남자, 그리고 나의 외증조할머니

무당의 운명과 인간의 모순

by 미정다움

비가 내린다. 일요일 오후. 쨍한 햇살보다 가끔은 이런 꾸물한 날씨가 더 아늑하다. 세상의 채도가 낮아지니 비로소 내 안의 풍경들이 선명하게 고개를 든다. 기분은 조금 가라앉아 있지만, 마음 한구석은 오히려 상쾌하다. 내가 여전히 사람을 그리워하고, 사랑하고, 그들의 행복을 빌어줄 수 있는 '따뜻한 인간'임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조금 전, 울산에서 온 전 직장 동료들이 떠났다. 그녀들의 바쁜 일상 속에서 1박 2일이라는 귀한 시간을 온전히 나에게 내어주고 간 길이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어제 그녀들을 맞이하기 전 나는 무척이나 불안했고 걱정스러웠다. 이제는 '공무원 김미정'이 아닌 '일월꽃무당'으로 불리는 나의 변화된 신분이 그녀들을 불편하게 하지는 않을까. 24년간 공무원이었던 내 소중한 시간을 공유한 인연들이 혹여나 나를 낯설게 느끼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했다.


심한 감기 몸살 탓에 목소리조차 나오지 않았지만 마음만은 뜨거웠다. 하지만 아이 키우는 그녀들에게 혹여나 감기 바이러스를 전파시킬까 봐 하룻밤을 같이 보내지 못하고 홀로 집으로 돌아오며, 나는 무당이기 이전에 여전히 타인의 안녕을 먼저 걱정하는 '동료'임을 느꼈다. 그 외로운 배려의 시간이 나에게는 인간적인 행복감이었다.


그녀들이 떠난 빈자리, 만 원의 유료 결제가 아까워 멜로 영화 <만약에 우리>를 포기하고 심야 영화로 택한 <왕과 사는 남자>. 사실 무당이 되고 나서 영화관 같은 밀폐된 공간은 내게 금기의 장소였다. 불특정 다수의 기운이 섞인 곳에 가면 원인 모를 두통과 지기가 온몸을 휘감아 영화 한 편 보는 일조차 엄두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쇼츠 영상에 끊임없이 뜨는 '왕사남'의 유혹은 강렬했다. 평소 역사에 관심이 깊었던 터라, 동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잠시 깨어난 '인간 김미정'으로서의 소소한 자아가 꿈틀거렸다. 나도 남들처럼 영화 한 편 즐기는 평범한 일상을 누리고 싶다는 갈망. 그 작은 욕심이 두려움을 이기고 나를 극장으로 이끌었다.

그런데 그 낯선 극장의 어둠 속에서, 나는 뜻밖에도 나의 외증조할머니를 만났다.


영화 속 세조와 단종의 비극이 흐를 때, 내 안의 무언가가 터져 나왔다. 어린 아들 셋을 데리고 만주에서 울산까지, 그 험난한 여정을 홀로 버티며 내려오셨던 나의 외증조할머니. 손주들이 태어나자마자 연이어 죽어가는 참척(慘慽)의 고통을 겪으시고, 몸이 약해 학교 갈 때까지 업어 키워야 했던 내 엄마를 지켜내신 분. 지난 굿판에서 외증조할머니는 하염없이 울기만 하셨다. 그 눈물의 무게를 가늠하다 보니 문득 소헌왕후가 떠올랐다.


문종과 세조, 그리고 금성대군을 낳은 어머니 소헌왕후. 조선의 가장 고귀한 여인이었으나 정작 자식들을 연이어 앞세우는 참척의 고통을 겪었고, 사후에는 한 배에서 나온 자식들이 서로를 죽이는 골육상잔의 비극을 지켜봐야 했던 여인. 나의 외증조할머니와 소헌왕후, 시대와 신분은 달랐으나 두 분이 짊어진 '어머니라는 숙명'은 지독하리만큼 닮아 있었다. 어느 집안에나 있듯 우리 집안에도 재산 문제로 형제간에 칼부림이 나는 비극이 있었다. 외할머니의 목에 칼을 들이대며 재산을 내놓으라고 했던 외작은할아버지. 누군가는 그를 세조 같은 악인이라 비난할지 모른다.


하지만 무당인 나의 눈은 달라야 한다. 세상의 잣대로는 '악인'일지라도, 그 사람의 원(願)과 한(恨)을 풀어내어 내 몸에 실을 수 있어야 진짜 무당이다. 선과 악, 옳고 그름의 이분법으로는 절대 닿을 수 없는 영역. 돌아가신 외작은할아버지는 나에게 오셔서 "너를 잘 불리게 해 주겠다" 약속하셨다. 권력을 위해 조카를 처참하게 짓밟는 세조가 있는가 하면, 죽음을 앞두고 조카가 있는 곳을 향해 절을 하며 사약을 마시는 삼촌, 금성대군의 눈물도 있다. 그 모든 극단적인 스펙트럼이 인간의 마음 안에 공존하며, 그것이 곧 역사라는 사실을 나는 엉엉 울며 목도했다.


나는 이 복잡한 세상에서 무당으로 살아야 한다. 조상님의 뜻을 가감 없이 전해야 하면서도, 동시에 나의 정신과 주관을 바로 세우기 위해 처절하게 고민해야 하는 것이 나의 운명이다. 무당으로서 모든 조상을 몸에 실어내겠지만, 인간인 나는 여전히 선과 정의, 인간애의 힘을 믿는다. 단종의 죽음에 슬퍼한 백성들의 마음, 화를 당할 것을 감수하고도 의리를 지킨 엄흥도와 광천골 사람들의 정신. 시대를 막론하고 전 세계를 감동시키는 이 보편적인 따스함이야말로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다.


세상이 아무리 험하고 각박해지더라도, 이런 영화를 보며 함께 울 수 있다는 사실이 좋다. 어쩌면 이것이 이 세상에 대한 작은 희망이 아닐까. 우리가 인간을, 그리고 이 세상을 포기하지 말아야 할 단 하나의 이유가 아닐까 싶다. 특히 조카를 끔찍이 생각하며 거사를 꿈꾸다 마지막 순간 단종이 있는 곳을 향해 절을 하고 사약을 마시던 금성대군의 장면에서 나는 가장 슬프게 울었다. 인간이란 참으로 단순하지 않다. 삼촌이 조카를 위해 목숨을 걸기도 하고, 권력을 위해 짓밟기도 하는 그 모든 모순이 인간과 역사 그 자체다.


결국, 정의와 선은 역사가 기억한다는 것을 나는 믿는다. 무당으로서 조상의 업을 짊어지되, 인간 김미정으로서 따뜻한 선의 길을 걷는 것. 그것이 내가 파도처럼 밀려오는 이 운명에 몸을 맡기며 나아가는 방식이다. 엄흥도가 보여준 그 고결한 정신은 시간이 흘러도 우리를 감동시키듯, 나 또한 그런 인간적인 온기를 잃지 않는 무당이고 싶다.




부족함은 눈물로 채우고, 가야 할 길은 사유와 성찰의 힘으로 다잡는다.

나른한 월요일 오전, 나는 여전히 세상을 공부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무당으로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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