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 속 모래를 털어주는 다정함에 대하여

산 아버지가 주지 못한 사랑을,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채워주다

by 미정다움


재작년의 나는 24년 차 공무원이라는 견고한 성벽 안에 살았다. 공직이라는 외피는 나를 보호하는 갑옷인 줄 알았으나, 실은 나를 가둔 감옥이기도 했다. 그해 10월, 나는 그 성벽을 내 손으로 허물고 광야로 나왔다. 현재는 타인의 눅눅한 슬픔과 간절한 기도가 뒤섞인 현장 속을 닥치는 대로 누비는 늦깎이 무당으로 일하고 있다.


지난 열흘 가까운 시간은 그야말로 전쟁 같았다. 라이브 방송의 열기, 굿판의 땀 냄새, 양고장 수업의 생경함 그리고 이어지는 점사 손님들까지. 어제는 간만에 얻은 휴무에 시체처럼 쓰러져 잠만 잤다. '이건 아니지 않나' 싶은 자책이 밀려오기도 했지만, 그 마음을 애써 무시한 채 꼬박 하루를 비워내고 나니 오늘 아침은 마치 허물을 벗고 새로 태어난 기분이다.


최근 니체의 문장들을 엮은 책을 한 권 샀다. 그는 말했다. '인간은 극복되어야 할 그 무엇이다.' 나의 지난 삶은 이 ‘극복’이라는 단어와 사투를 벌여왔던 시간이었다. 그동안 나는 내가 꽤 독하게 성실한 사람인 줄 알았다. 하지만 이제야 알겠다. 그건 독기가 아니라, 거절할 줄 몰라 나만 뒷전으로 밀어두었던 '미련한 성실함'이었다는 걸. 남의 기준에 나를 맞추느라 정작 나를 챙길 줄은 몰랐다. 시스템이 시키는 대로, 남들이 박수 쳐주는 대로 나를 야금야금 깎아 쓰면서 그걸 책임감이라 믿고 살았다. 정작 나를 지키고 내 목소리를 내야 할 때 써야 할 '진짜 독기'는 내 삶 어디에도 없었다.


사실 나는 작년 한 해 동안 이 길을 처절하게 회피했다. 그 시간을 두고 '공무원에서 무당으로 넘어가는 가교 같은 필연적인 쉼표'라 자부했고, '브런치 작가가 되기 위한 고상한 준비 기간'이라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하지만 막상 현장의 치열한 리듬 속에 들어와 보니, 그 달콤한 자기 위로조차 도망친 자의 비겁함이었음을 깨닫는다. 너무나 바쁘고 빠르게 흘러가는 이 생생한 시간들 속에서, 나는 이제 그 아까운 1년의 공백마저 후회하게 된다.


조금 더 일찍 부딪혔더라면 좋았을까. 폭풍 속에서도 우아하게 춤을 추며 즐기길 기대했지만, 현실의 나는 여전히 스스로를 검열하고 의심한다. 쉰 평생 습관처럼 달고 산 그 결벽증 같은 자기 검열이 어찌 한 번에 바뀔까. 1년이라는 시간을 벌어 고상하게 준비하려 했던 오만함은 간데없고, 나는 여전히 매 순간 흔들리고 자책한다.


그러다 문득 마주한 짧은 영상 하나가 내 심장을 갈기갈기 찢어 놓았다. 신발에 들어간 모래 때문에 칭얼대는 아기를 붙잡고, 투박한 손으로 정성껏 그 모래를 털어주는 할아버지의 모습이었다. 그 당연하고도 평범한 다정함을 보는데 걷잡을 수 없이 눈물이 터졌다. 내게는 살아계신 아버지가 있다. 그러나 내 기억 속 아버지는 존재했으되 늘 부재했다. 내 신발 속 모래를 걱정해 주거나, 그 까슬한 불편함을 먼저 알아채 털어주는 다정함은 내 생(生)에 결코 허락되지 않은 사치였다. 쉰 살의 어른이 되어 남의 인생을 점치고 있지만, 내 안에는 여전히 모래가 들어간 신발을 신고 홀로 울고 있는 어린아이가 살고 있었다.


그 울음 끝에 비로소 선명해지는 것들이 있었다. 머리로 분석해서 얻은 답이 아니었다. 장판을 태워 먹고 목소리가 쉴 정도로 무식하게 자신을 몰아붙이며 닥치는 대로 부딪히다 보니, 내 상처가 어디에 있는지, 내 결핍이 어디서 소리를 지르는지 몸이 먼저 가르쳐준 것이다. 이 거칠고 투박한 '생존 근육'은 결코 승리의 전리품이 아니다. 도망치지 않고 나를 밑바닥까지 밀어 넣어 본 사람의 몸에 새겨진, 아프지만 정직한 흉터이자 살아남았다는 증거일 뿐이다.


사람은 때로 자신의 결핍과 정면으로 마주해야 한다. '나 어른이야'라는 오만함으로 그 결핍을 무시하거나 억누르면, 그것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해져 결국 나라는 사람 전체를 잠식해버리고 만다. 그래서 나는 혼자만의 공간 속에서 때때로 아이처럼 엉엉 울기로 했다. 쉰 살의 무당이라는 껍데기를 잠시 내려놓고, 신발 속 모래 때문에 칭얼대던 그 어린아이로 돌아가 마음껏 우는 것. 그런데 이 눈물을 쏟아내고 나서야 비로소 보이기 시작한 것이 있었다.


내가 그토록 밀어냈던 이 무속의 길 위에서 나는 비로소 그 '모래 털어주는 손길'을 만난다. 고된 굿판에서 땀을 흘리거나 내담자의 아픔에 동기화되어 눈물 흘릴 때, 가끔 할머니와 할아버지라 부르는 내 조상님들의 사랑이 훅 하고 들어온다. 생전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그분들이 내 영(灵)을 감싸 안으며 건네는 위로. “애썼다, 내 새끼야.” “이제 그만 자책해도 된다.”


살아있는 아버지에게 평생 구걸해도 얻지 못했던 그 투박한 긍정이, 죽은 조상들의 입을 빌려 내 가슴에 꽂힌다. 죽을 때 가장 억울할 것 같았던 ‘사랑에 대한 갈증’이, 역설적으로 신령의 제자가 되어 해갈되고 있는 것이다.


이 사랑을 확인받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나를 지키는 진짜 ‘독기’를 품기 시작했다. 니체가 말한 *위버멘쉬(Übermensch)*는 자신을 소모하는 자가 아니라, 자신의 결핍을 직시하고 그 고통을 동력 삼아 스스로의 운명을 사랑하며 춤추는 자(Amor Fati)이기 때문이다.


나는 여전히 나의 상처를 품은 채 나아간다. 하지만 이제 결핍은 나를 멈추게 하지 않는다. 오히려 매일 새로운 혼돈 속으로 기꺼이 걸어 들어간다.


오늘은 굿당의 양고장 수업을 가는 날이다. 쉰 평생 나는 몸치이자 박치, 음치라는 3박자를 고루 갖춘 채 살아왔다. 리듬에 몸을 맡기는 일은 내가 가장 싫어하고, 절대 도전하지 않았던 미지의 영역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 두려움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내가 싫어했던 일, 결코 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던 일에 내 몸을 던지는 것. 서툰 시작이야말로 아둔한 성실함을 버리고 ‘독기 있는 자기 극복’으로 나아가는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비록 박자는 어긋나고 몸짓은 뚝딱거릴지라도 상관없다. 신발 속 모래를 털어주시는 조상님들의 보이지 않는 손길이 내 등 뒤에 있고, 내 안에는 이미 춤추는 별이 반짝이기 시작했으니까.


나는 오늘, 가장 나답지 않은 모습으로 가장 나다운 길을 가련다. 니체의 말처럼, “춤추는 별을 잉태하려면 내면에 혼돈을 간직해야 한다”는 것을 믿는다. 산 아버지가 주지 못하는 사랑을,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채워주시는 이 거룩하고도 기묘한 필연 속에서, 나는 매일 새로 태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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