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은 꽃잎이 전하는 말
어제 올린 글의 여운이 가시지 않아, 비 오는 벚꽃길을 걷다 든 생각들을 부끄럽지만 적어봅니다.
꽃비 내리는 화사함은 내 것이 아니었다
눈부신 햇살 아래 박수받는 분홍빛 생은
내가 끝내 입어보지 못한 타인의 화려한 외출복이었다
나의 봄은 늘 잿빛 구름 아래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
내 몸이라는 좁은 수로(水路)를 타고 밀려드는
뿌리 깊은 원망과 대물림된 설움들
그 낯선 해류에 휩쓸려 내 이름을 잃어버릴까 봐
홀로 나라는 구석으로 비겁하게 숨어들었다
그것이 신령의 부름인 줄도 모르고 앓았던 열병
내가 가진 알량한 이성을 붙잡고
아둔한 자의 얕은 수싸움이라도 벌여야 했다
내 안의 범람하는 혼돈을 분석하고, 규정하고, 억누르며
어떻게든 나를 지켜내려 발버둥 쳤던 가련하고도 오만한 항해사였다
어쩌면 이토록 처절하게 나를 붙들고 헤매었던 이유는
나를 소모하지 않고, 나를 잃지 않은 채
신의 춤과 인간의 숨을 함께 쉬고 싶었기 때문일까
그것이 나의 생(生)을 지키려 했던 가장 외로운 독기였을까
흐린 하늘 아래 젖은 벚꽃은 우울이라 말하지만
비에 젖어 무거워진 꽃잎은
사실 누군가의 눈물을 대신 받아내며 버티는 중이다
태양의 환호 없이도 기어이 피어낸 그 비릿한 생명력
비에 젖어 바닥에 찰싹 달라붙은 꽃잎처럼
낮게, 더 낮게 엎드려 나와의 여행을 계속하는 지금
다만 젖은 채로 다시 살아지리라 짐작할 뿐,
비에 젖은 분홍이, 바닥에 낮게 엎드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