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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리재 Oct 22. 2024

애덜이랑 써봐유 챗GPT 영어글쓰기

Ep.1 학원없이 챗GPT 로 영어 공부를  

아들, 영어 굉부는 해야겄는디 학원에 안 간다는 게 뭔 소리여 


“엄마! 나 영어공부 하기로 했어!”

그려, 착하게 살다 보면 하늘이 복을 준다는디 살다 보니 이런 날이 오는구마잉. 시상에, 이것이 꿈이여 생시여. 6학년을 마쳐가는 이 시점에서 드디어 공부를 하겄다고? 그것도 영어공부를?


“나 내년에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에 손흥민 선수 직관하러 갈 거야.”

뭐, 뭐여? ‘영어’ 야그가 나왔으니 ‘잉글랜드’가 나오는 건 알 것는디 그다음은 뭔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여?     


“아이, 엄마, EPL 몰라, EPL? 영국 프로 축구리그 같은 거야. 손흥민 선수는 알지? 나 영국에 축구 보러 직접 가야겠다고. 그러려면 영어를 잘해야 할 거 아니야?”

 

출퇴근, 통학 시간에만 버스가 15분 간격으로 오는 면 단위에 살면서 서울 가는 이야기까지는 그러려니 하겄다. 난데없이 영국 이야기를 꺼내는 걸 보니 호그와트 입학 허가증이라도 받은겨? 아니 뭐가 워찌 됐든 간에 애가 공부를 한다니 일단 학원부터 알아보고,라고 생각하는 순간, 다음 말이 날아들었다.     


그런데 엄마, 나 영어 학원은 안 갈 거야. 내가 배우고 싶은 내용도 아니고, 애들이 다 지겨워하고 싫어해. 애들이 밖에서 기다려. 정리는 나중에 하고, 나 축구하러 갈게!”

누구를 부를 틈도 없이 심란할 때, 따스한 캐모마일 한 잔을


띠리링. 현관문이 잠긴다. 나만 남겨졌다. 조용한 가운데 붙박인 듯 잠시 서 있다가 크게 숨을 쉬고 포트에 물을 올렸다. 따뜻한 캐모마일 티를 한 잔 준비해서 나에게 건넸다. 그래, 역시 그렇구나. TV에 나오는 애들은 우리 집에는 잘 안 산다. ‘저도 이제 6학년이니 중학교 내신 대비를 해야겠어요’와 같은 대사를 기대한 건 내가 아직도 멀었다는 증거다.


멍하니 있다가 문득 축구하러 나간 아들이 소파 위에 날려두고 간 가방과 눈이 마주친다. 쭈그러진 가방이 비스듬히 누워 나를 바라보며 묻는다. 그래서 어머니, 이제 어쩌시겠습니까?     


지혜롭고 싶은 엄마는 상황을 빠르게 정리하기 시작했다. 영어공부를 해야겠단다. 왜? 그 놈의 축구경기 직관을 위해서라면 런던행 비행기를 타야 하니까. 비행기 티켓값은 누구의 몫인지 모르겠지만 일단 ‘영어공부를 해야겠다’라는 문장에 꽂힌 엄마는 다른 걱정을 뒤로 밀어둔다. 그런데 영어학원에는 안 가겠단다. 학원에서 배우는 내용은 자기가 바라는게 아니라는게 이유인데 이게 뭔 소리인가. 그래도 이해하기로 했다. 이 말인 즉슨, 학원에 가면 뭘 배우는지 정도는 알아봤다는 뜻 아닌가. 날 닮아 준비성이 철저하다. 역시, 될 놈이다.

 

어찌됐건 결론은 학원은 안 갈건데, 영어공부는 한다는 것이다. 무려 영어공부를 하겠다고 하지 않나. 정신을 바짝 차린다. 아이를 어떻게든 이해하려는 마음으로 가득 찬 나는 이 아이만의 그럴듯한 이유를 찾아냈다. 여지껏 공부를 위한 학원에 다니지 않았던 아이니까, 학원에 대한 막연한 거리감이 좀 있는 애니까, 그래서 얘 말대로 학원이 최선의 선택은 아닌거야, 그래. 그런 거야.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결국 인정하고야 말았다. 중학교 공부로 방향 전환을 할 절호의 기회라고 여겼는데 김칫국부터 마신 내 속마음을 말이다. 헛웃음이 나왔다.

‘이 사람아, 애 하나 먼저 키워보고도 아직도 그러니. 정신 차리세요.’

그러다 다른 생각이 들었다. 하긴 학원에 간다 한들 다니는 길이 만만치는 않겠구나. 우리는 면 단위 시골 마을에 살고 있으니까.

     

10년 전 서울을 떠나 충남의 시골 마을로 이사 온 첫 해, 집에서 듣는 아파트 관리사무소 방송 내용들은 신선했다. 새끼 멧돼지가 인근 중학교 운동장에 나타나 어미가 나타날까 봐 119가 긴급 출동했으니 멧돼지를 도로에서 마주치면 조심하라는 안내, 이장 선거를 치른다는 엘리베이터 안의 선거 공고, 수변공원 산책로에서 살고 있는 천연기념물 수달에 먹이를 주지 말라는 안내 등이었다.


비가 오면 생전 처음 보는 맹꽁이, 두꺼비를 만날 수 있었고 부엌 창으로 보이는 뒷산에 한 폭의 산수화처럼 수시로 뛰어다니는 고라니가 내 생활환경의 변화를 일깨워줬다. 한강 뚝섬 공원에서 유모차를 몰며 아스팔트 위를 걷던 풍광과는 전혀 다른 감각이 계절의 마디마다 찾아들었다. 이런 생물들과 이런 종류의 풍문이 도는 곳에는 다양한 학원이 있기 어렵다. 학원이란 도시의 밀집된 아파트 지역에서 SKY를 꿈꾸는 열망들이 층층이 쌓인 토양에서 잘 자라는 생물이니까.


시계가 다섯 시를 알렸다. 저녁이 다가온다. 따뜻한 온기가 남은 찻잔을 내려두고 나는 기지개를 켜며 중얼거렸다.


 "괜찮여, 그려, 허면 되지, 해보자니께! 뭐라두 해보면 되지 않겄어? 아가 뭔가를 배우겠다는데 에미가 그냥 있어서는 안 되는겨. 또 뭐시냐, 그랴, 그 배운다는 게 영어 아녀? 고맙게 생각혀."

    

나는 원영적 사고가 흐르는 시대에 사는 K 엄마다. 내가 아이와 못할 게 뭐 있을까. 그렇게 우리의 파란만장 

<애덜이랑 챗GPT 영어글쓰기>는 시작되었다.    


#애덜이랑해봐유 #우리삶은우리것 #챗GPT는사투리로써야제맛이지 #글로벌하게배워보장께 #가라EP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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