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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리재 Nov 05. 2024

당신이란 초록에 닿으면

프롤로그 : 슬초 브런치 3기에 관한 단상들

초록색은 생명과 희망, 그리고 재생의 상징입니다. 그리고 브런치 3기에서 만난 동기 작가님들의 색이기도 합니다. 그 안에 속한 저는 매일 170여 분이 모인 온라인 공간에서 각자의 잎맥과 물관, 기공을 여닫는 하루의 기록을 숨 쉬듯 듣고 읽습니다. 혈관을 흐르듯 작품들을 따라가다 보면 문득 우리 동기 작가님들이 초록을 선택한 이유를 짐작하고 상상하게 됩니다. 닮았지만 고유의 채도를 지닌 이파리들처럼 각자의 고유성을 되찾고 가꾸고 싶은 마음, 여리디 여린 연둣빛으로 차가운 겨울을 밀어내고 생동하는 봄이 되고 싶은 열망, 다시 성장하는 과정에서 숲을 이루어 함께 살아내고자 하는 엄마의 마음이 담겨 있기 때문이 아닐까. 


3기 작가님들은 브런치 작가가 되고자 만났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브런치앓이를 했습니다. 브런치는 환상과 최상의 자극만이 존재하는 SNS 세계와 달리 좌절과 절망, 고통과 슬픔, 상실과 망각을 고백하고 그 안에 깊이 천착하는 분들의 목소리가 있는 그대로 울려 퍼지는 공간인 듯합니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말이 어울리는 곳,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 가장 반짝이는 곳입니다. 저에게 작가라는 정체성은 언감생심 남의 것만 같았는데 브런치 3기에 모인 분들이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저를 지지하고, 응원해 주며, 있는 그대로의 마음을 거름으로 더해주신 덕에 저도 브런치 작가로 새로 태어나는 기쁨을 누렸습니다. 이은경 선생님의 인스타그램 피드에서 우연히 브런치 2기에 대한 글을 보고 언젠가 나도 꼭 함께 할테야, 다짐했는데 바람 하나가 현실이 되었네요. 동기 작가님들, 그리고  본인이 아프고 힘들게 먼저 걸어간 길을 너무 헤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열정을 다 하시는 이은경 선생님, 그리고 오랜 시간을 이웃으로, 동료로 함께 한 글쓰기 센스만점 매니저 작가님도 계십니다. 


3기 작가님들과 함께 한 시간이 이어지고 있는 지금, 저는 정말 감사하고 행복합니다. 작가님들은 각자 뿌리내린 자리에서 낳고 기르고 돌보고 있는 아이와 가족, 세상에 관한 메세지를 표현하는 언어를 얻기 위해 타는 목마름을 이겨내고자 모인 분들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저 멀리 아스라히 희미해져 버린 '나'라는 존재를 회복하고 '나'를 통해 태어나고 살아가는 존재들에 관한 메세지를 준비하는 분들이지요.  'Message'라는 단어의 어원은 라틴어 'missio'에서 유래되어, '전달하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고, 각자의 경험을 통해 서로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과정과 꼭 닮았습니다. 우리는 삶의 대지에 새로운 씨앗을 뿌리고 싹을 기다리며 봄과 함께 연두를 환영한 뒤 여름과 함께 온 세상을 짙푸름으로 흠뻑 적실 거예요. 가을에게는 초록의 아쉬운 마음을 달래어 함께 보내고 겨울에게 그간 만난 초록과 그 친구들의 흔적을 들려주며 새로움을 기다리게 되겠지요. 


이 단상들은 3기의 초록을 위한 글, 작가님들이 털어놓은 감정의 출렁임과 모두에게 속삭여 준 이야기가 깨운 저의 기억, 늦은 밤 우리에게 기대어 이따금 화면에 등장하던 사랑스러운 글감들이 건네고 간 영감에 대한 사랑과 존중의 조각들입니다. 때로는 그저 떠나야 하기에 떠나는 발걸음이 있듯, 이 단상집은 특별한 목적이나 이유가 있지는 않아요. 그저 초록에 관한 이야기, 이은경 선생님, 매니저님, 동기 작가님들과 함께 공유한 순간에 관한 이야기, 브런치 3기 활동을 하며 제게 다가온 떠오름들을 담은 시간 모음 상자입니다. 각자 삶의 여정에서 잠시 쉬어갈 그늘이 필요할 때 다가와서 열어보셔도 좋습니다.  


이 시간도 한 계절이라 지나고 나면 다른 삶의 계절이 열리겠지요. 그래도 우리는 해마다 새로워지는 식물들처럼 스스로 읽고 쓰는 여정을 이어갈 거라 믿어봅니다. 여리고 짙푸르며 싱그러운 초록의 다채로움을 닮은 3기 작가님들과의 시간이 아름드리 나무로 자라나길. 그리고 읽고 쓰는 이로 존재하는 우리들의 울창한 숲을 이뤄가길. 그 누구보다 나 자신이 포기하지 않고 그러한 이가 되길 간절히 바라봅니다. 당신이란 초록 덕분에 읽고 쓰는 존재가 된 제가 드리는 작은 선물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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