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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리재 Nov 16. 2024

'그냥 쓰는 날마다'를 약속하며

나의 <월든>, 슬초 브런치 워크샵

기차는 나를 품어 도착점에 데려다줬다. 나는 기차역에 서서 이 글을 쓴다. 오가는 기차가 무서운 속도로 나를 흔들지만 이 글을 마치기 전에 자리를 뜰 수 없을 것 같다. 지금 바로 쓰지 않으면 날아버릴 것 같은, 나의 시선이 고였던 우리의 순간들을 기록한다.


'나의 인생'이라는 책을 펼쳐 오늘, 11월 16일이라는 페이지에 특별한 표시를 해 두려 한다. 오늘 글 쓰는 사람들이 이룬 초록 공간에서 쑥스럽지만 다정함을 건네는 동기 작가님, 1,2기 작가님들과 인사를 나눴다.이은경 선생님이 준비하신 2025년 글감 선물도 한가득 받았다.


또 하나 나는 자그마치 '꽃'과 '퇴고 축복'을 선물 받았다.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용기 내어 방장을 맡아 마음 쓰기 어려우셨을 텐데, 먼 길 오시는 중에도 나를 챙겨주셨다. 꽃에 담긴  축하와 응원의 마음이 고운 색과 싱그러운 향으로 다가온다. 글은 퇴고를 통해 르네상스를 맞이한다는데 이런 선물을 받았으니 나는 정말 무를 수 없는 작가의 길을 걷고야 말리다.


쓰자, 그냥 계속 쓰자


아직 쓰고자 하는 마음과 생활이 단단히 뿌리내리지 않은 나에게 글쓰기는 '비일상'에 더 가깝다. 남은 내 생의 모든 날  당연히 글을 쓰는 매일이 '일상'이 되기를 바라고 바라고 또 바라본다.


주변에서 꾸준히 쓰는 사람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아니, 어렵다. 그러나 브런치에 들어오면 다르다. 읽을수록 잃어버렸던 촉촉함을 되살려주는 글들과 가뜩이나 예민한 눈물샘을 고장 난 수도꼭지로 만드는 문장들이 넘실넘실거린다. 아이 키우며 겪는 갈등을 풀어내는 혜안을 얻기도 하고, 제대로 돌봐야 할 내 몸과 건강을 살펴보리라는 결심이 일어난다. 단행본을 능가하는 수준의 전문 지식을 다루는 작가님들이 글쓰기에 최적화된 화면 위에서 성찬을 준비하고 있기도 하다. 


어쩌면 아무도 나의 글을, 그들의 글을 기다리지 않을지도 모른다. 사실이 그렇다. 글쓰기는 고요의 작업이며 고독의 결과물이기에. 내가 나 자신을 직면해야 태어나는 것이 글이다. 마땅히 기다려주는 이가 없어도 '쓰고 싶다, 써야 한다'는 갈증을 느끼는 이들이 브런치에서 영혼의 식사를 준비하고 함께 나눌 이들을 기다린다. 작가들의 목적과 바람에 따라 브런치의 시공을 다채롭게 채워진다.


브런치는  연옥이다. 쓰는 자와 쓰지 않는 자의  경계를 이루는 공간이다. 천국과 지옥의 중간 지점인 연옥처럼 브런치 플랫폼은 글쓰기를 둘러싼 양 극단의 중립 지대를 이룬다. 브런치 플랫폼도 시대의 변화와 교환 가치의 논리에 따라 '응원'이라는 제도를 도입했으나 여전히 브런치에는 '써야 하기에 쓰는' 작가들의 글이 유영하는 곳이며 그 너머의 꿈의 맥박이  고동치는 곳이다. 전자책을 홍보하며 권당 수 만원에서 수십 만 원을 외치거나 구글 애드센스의 수익을 반복적으로 논하며 '월천드림' 실현을 외치는 글들이 브런치에는 드물다.


오늘 만난 분들은 '작가'가 되기를 꿈꾸고 '브런치 작가'를 디딤돌 삼아 인생의 울타리 너머를 살펴보고자 눈을 밝힌 분들이다. 그 자리에 모인 우리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다른 존재이지만 교집합을 지니고 있었다. 울타리 너머 바라는 것이 돈이든 자아실현이든 지금의 현실 말고 뭐라도 좋다이든 상관없지 않을까. 삶의 어느 지점을 통과해 가는 우리 모두가 각자의 순간과 찰나를 놓치지 않고 쓰고자 하는 그 마음 하나면 충분하지 않은가. 만일 그 노력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에게 돈이라는 위안까지 안겨준다면 그건 선물이 되겠지.


오후 2시부터 5시 사이에 무수한 막연함과 선명함, 열망과 겸손함 사이를 오가며 쓰고자 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눈으로 보고 왔다. 소로우는 제대로 보기 위해 '월든'으로 떠났고 오늘 이곳은 나의 '월든'이다.


고마움이 이른 함박눈처럼 내 삶에 내린다. 나는 쓰고자 하는 내가 고맙다. 그리고 주말에 아내를 위해 아이들과 함께 보내는 일을 언제나 기꺼이(?)도맡는 남편, 엄마의 작가 됨을 응원하며 함께 쓰는 둘째, 밥은 챙겨 먹었는지 묻는 엄마가 살아계심이 감사하다.가족이  혈연과 결혼으로 맺은 공동체라면, 슬초 브런치 작가님들은 글쓰기가 이어준 또 다른 영혼의 이웃들이다.  오늘 받은 꽃과 '퇴고' 선물은 나를 지지하고 다독이는 마음의 기둥으로 삼아야지. 함께 쓰는 고운 천의 틀을 만든 이은경 선생님, 씨실과 날실이 되어 엮어온 슬초 브런치 작가님들에게 프레드릭이 되고 싶다..





p.s.퇴고야, 미안해. 오늘은 우선 발행할게. 그래야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아. 퇴고야,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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