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비, 통신비, 약소하게 빌린 돈을 나눠 내는 일.
물론 누군가는 처음부터 자신의 생계를 책임져왔겠지.
아니, 이보다 더한 삶을 견디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에게는
우리 가족이 위태로운가 싶었던 순간이었다.
하염없이 부모의 힘을 빌릴 수는 없지만
어느 치사량까지는 보탬을 받고 싶은 마음.
자식이라 어쩔 수 없는 걸까,
아니면 그저 나의 이기심일까.
나도 용돈을 받으며
한두 달쯤 걱정 없이 살고 싶고,
생활비를 고민하지 않으며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우고 싶다.
이 또한 나의 의지의 한계일까.
꽤나 비극적이라 생각하면서도
나는 또 한 번 나를 다진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혼자가 편하다.
인간은 서로의 필요에 의해
관계를 트고 허문다는데
지금의 나는 어떤 온기도 필요하지 않다.
차가운 온기도, 따뜻한 온기도.
왜일까.
혼자가 편안해질 만큼 성숙해진 걸까.
아니면 아직 나를 더 다져야 할 무언가가
남아 있는 걸까.
오늘 하루만큼은
나의 인생이 누군가의 감독 아래 만들어지고 있다고
착각하며 살고 싶다.
NG가 나면 다시 시작할 수 있고,
힘들다 하면 수정할 수 있고,
보완하고 싶다면 편집할 수 있는 삶.
영화 속 주인공처럼 말이다.
인생에는 시작도 끝도 없다.
그냥 살아갈 뿐이다.
나는 고요한 삶을 살아가고 싶은데
사람들은 종종 나를 공허하게 이해한다.
이 간극이 어쩌면
나를 더 지치게 만드는 지도 모르겠다.
이유 없는 이유를 설명해야 하는 굴레 속에서
‘그냥’이라는 단어의 존재가
조금 더 또렷해지길 바란다.
의례적인 관계가 아닌,
진짜 관계를 원한다.
맑은 관계.
술 한 잔으로 서로의 공허함을 덮는 관계도 좋지만
그것은 지금의 나에게
불필요한 사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