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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리스 Oct 03. 2022

[詩] 해무


해무


               

어스레한 새벽 

수평선이 

새로이 해를 낳을 때 마다

심장에 가시가 하나 둘 박혀온다          


1. 아버지     

나를 두고 간 아버지

아버지는 폐로 나를 낳으셨다

하얀 몸에 불을 붙이면

타들어가는 폐부

목구멍에 안개를 밀고 오면 

가슴 깊숙이 퍼져 오는 회한

폐포가 한 개씩 터질 때 마다 

눈썹이 갈앉는다

아빠아

부연 안개 속은 온통 

집에 두고 온 

딸내미 생각      

아버지 

아버지도 나처럼

나를 그리워할까 

그리워한다 말하면 더

그리운 

내 아버지      


2. 파도     

파도가 겨울을 밀고 온다 

해안은 북쪽부터 시리다 

솨아 솨아

큰 파도는 작은 파도를 덮는다

어제는 밤새 비가 내렸다

솨아 솨아 

밤새 눈물을 흘려도 

들리는 건 오직 

찬바람 소리

파도 소리           


3. 비린내     

얼굴이 흰 여인이 

흰 손으로 흰 국물을 낸다

칼칼한 국물 

홍합은 껍데기가 비리다

홍합 쌓은 쟁반을 머리에 이고 

흰 다리가 항구로 향할 때마다

역한 냄새가 머리칼에 스민다

얼마요

얼마면 먹을 수 있나

얼굴이 흰 여인이

홍합을 판다

홍합도 판다 

사내들이 하얀 속살을 먹어치울 때마다

얼굴이 흰 여인 

비린 생의 냄새를 맡는다     


4. 해무     

수평선이 해보다 안개를 먼저 끌고 오는 날이면

네 발 달린 테트라포드 지대

거대한 시멘트 사막이 된다     

테트라포드에서는

소리 없이 밀려오는 해무를 조심해야 한다

아래의 해초와 따개비들은

두 발 짐승의 살점을 뜯으며 자라난다

다리 하나 위에 배를 깔고 엎드리면

테트라포드에 갇혀 죽어가는

영혼들의 비명소리가 들려온다     

수와 흐와 

물안개 자욱한 테트라포드

흐느끼는 바람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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