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살, 주특기는 추억팔이입니다.
‘강날다리’가 무엇인지 아는가. 강날두... 이런 거 아니고 아빠가 어린 두 딸들의 종아리를 주물러주며 외쳤던 구호로 강하고 날씬한 다리의 줄임말이다. 어른들은 왜 이렇게 줄임말을 좋아하실까. 타자로 치면서 괜스레 부끄러워지는 단어이지만, 아직까지도 기억나는 걸 보면 구호로서는 효과적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강날다리를 만들자는 차원에서 아빠는 딸들을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며 운동을 시켰는데, 특정 공휴일에 걷기 대회 따위가 열리면 꼭 참가했다. 특히나 운동을 싫어했던 나의 반발 때문에 마라톤까지는 아니지만 걷기 정도로 타협했다. 그런데 지금 와서 보니 아빠도 마라톤 뛸 만한 실력은 아니었던 것 같다.(미안하지만 사실이다...)
초등학교 4학년 또는 5학년 때였다. 그해에도 어김없이 3.1절 걷기 대회에 참가했다. 보통 아침 9시에 시작하고 나면 11시쯤 경품 추첨 시간이 있었다. 그날은 1등 상품이 대형 TV였고, 동생과 나는 너무나도 갖고 싶었다. 하필 일요일이라 오전 예배 시간과 겹쳐 아빠는 우리를 두고 먼저 가야 했다. 남겨진 동생이 서운한 목소리로 “아빠, 그러면 우리가 만약에 1등 당첨돼서 TV 타면 어떻게 들고 가?”라고 물어봤다. 옆에서 듣고 있던 아주머니 두 분이 깔깔 웃으시며 “아유~ 걱정하지 마! 너희들 1등 하면 우리가 집까지 가져다줄게.”라셨다. 꽝일 줄 알고 농담하셨던 거겠지만 우리는 감동받아 떨리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번호가 불릴 때마다 설렜다가 실망하기를 반복한 끝에 다가온 1등 발표. 하지만 (역시나) 우리 번호는 불리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그 아주머니들이 소리를 지르는 것이다. TV 당첨의 주인공이었던 것. “얘들아~ 미안하다. 우리가 가져갈게.” 해맑게 웃으시며 당신들 말씀대로 TV를 들고 가셨고, 우리는 손에 쥔 것 없이 씁쓸히 집으로 돌아갔다. 엄마와 아빠는 이야기를 듣더니 좋은 말을 해야 복이 찾아오는 거라며 굉장히 재미있어했다.
고2 때 우리 가족은 친구까지 초청했다. 3.1절 마라톤이었는데 우리는 가장 짧은 5km 코스를 걷다시피 했다. 한창 공부할 때라 체력이 바닥이었던 우리는 헥헥거리며 걸었다.(공부하느라 그렇다고 하자!) 옆을 쌩- 하고 지나가시며 한 할머님이 "뭔 학생들이 체력이 이렇게도 없어서 우짜까~?” 하시길래 서로의 건강(?)을 기원하는 대화가 이어졌다. 여든이 넘으셨다나? 다음날 아빠가 지역신문에 실린 이번 대회의 최고령 참가자 사진과 사연을 보여줬는데 그 할머님이셨다. 한동안 우리의 즐거운 이야깃거리였다.
한동안 뚜벅이 생활에 지쳐서 걷기나 뛰기라는 행위를 굳이 찾아서 하지는 않았다. 차가 생기니까 움직일 일은 더욱 줄었다. 이쯤 되니 사실을 인정해야 할 것 같은데, 나는 원래 몸 움직이기를 싫어한다. 그러나 어느 순간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었다. 아빠가 외치던 강날다리가 아니라 약하고 뚱뚱한 약뚱다리가 되게 생겼다.(아빠 닮아가는 거야? 줄임말 멈춰!) 요가 선생님 말대로 지면을 단단하게 밟고 선다는 것은 사소하지만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요즘에는 일부러 더 걸으려고 애를 쓴다. 주말에 침대에 누워있기보다는 어디로든 가서 걷고, 식사하고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산책한다. 사무실에서도 엘리베이터보다는 계단을 이용하려 한다. 갑자기 등산하러도 간다. 최근에는 친구들과 함께 플로깅 캠페인에 참여했다. 조깅을 하면서 쓰레기를 줍는 활동이다. 함께 걷고 함께 치우는 과정이 참 따뜻했다.
'걷기'는 두 다리가 있다면 나이와 성별 상관없이 누구나 가능하기에, 누구와도 같이 할 수 있고, 누구라도 만날 수 있는 훌륭한 도구이다. 귀찮았어도 막상 걷기 대회 이벤트는 어릴 적 소소한 에피소드들을 선물해주었고, 한편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걸으며 생각과 감정을 공유했던 몇몇 장면들은 여전히 마음에 남아 힘이 되어준다. 걷기 좋은 계절이 다가오고 있다. 초여름 해 질 녘에 걷는 것을 참 좋아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어서 해주고 싶다. 그때 함께 걷자.
모두 줄지어 함께 걷는다. 단지 그것뿐인데, 어째서 이렇게 특별한 느낌인 걸까.
- 온다 리쿠, 《밤의 피크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