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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ubia Feb 19. 2017

기술이 아닌 사람이 희망, 영화 <라이언>

기적을 써내는 힘, Technology or Humanism?


약 13억 7천 3백만명의 세계 제 1위인 인구 대국인 중국에 이어 인도는 12억 6천 6백만명의 세계 2위의 인구수를 자랑하는 국가이다. 게다 인도의 인구수는 매년 증가 추세에 있다고 한다.


좀 더 쉬운 일례로 우리나라의 국토 면적과 인구수를 생각해보면 인도라는 나라의 땅덩어리와 인구수를 짐작하기가 한결 쉽다. 우리나라의 경우, 38선 이남의 면적은 약 22만 1487 제곱킬로미터이며 남한의 인구수는 약 5천 1백만명 정도이다.

그런데 인도의 국토 면적은 약 3,287,000 제곱킬로미터에, 인구수는 12억이 넘는다. 국토 면적만 해도 우리나라의 약 15배 수준이며 인구수로는 거의 24배나 된다라는 의미이다. 결국 단위면적당(1제곱킬로미터당) 인구 밀도로 보면 우리나라보다 더 심각한 셈이다.  이런  단위면적당 거대한 인구수를 자랑하는 인도에서는 매해 8만명에 가까운 미아들이 발생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는 비단 인도만의 문제는 아니다. 우리나라만 해도 연간 미아 발생건수가 2만명을 초과하고 있다.(2015년 기준)

특히 이런 실종 문제는 범죄와의 연루(대구 개구리 소년 사건처럼)가능성 및 가족 해체 등의 문제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아 더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때문에 우리나라의 경우는 실종아동전문기관이 설립되고 경찰이 2008년부터 타기관과 연계해 실종아동 정보를 전산화하는 한편, 2012년엔 실종아동을 보다 효율적으로 찾아내기 위해 아동 등을 대상으로 하는 사전지문등록제를 도입했고,  일명 '코드아담'과 같은 실종 아동 조기예방지침을 시행 중이기도 하다.


하지만 인도는 우리나라보다 훨씬 더 거대한 국토면적에 인구수도 훨씬 더 많으며 여전히 사회구조 또한 우리보다 더 열악하다.

인도 같은 거대한 땅에서 길을 잃거나 집을 잃는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그것은 상상을 초월하두려움이자 막막함일 것이다.

게다 인도는 넓은  땅덩이만큼 다양한 인종이 거주하고 있기 때문에 언어 또한 우리와 같단일언어 체계가 아니다.

인도에는 각 지방에 따른 다양한 인종과 더불어 180여 종이 넘는 언어가 사용되고 있다. 그 가운데 헌법으로 인정된 지역별 공용어만 해도 18종에 이른다. 인도의 전체 인구수의 약 37.8% 인구가 사용하는 힌디어를 비롯, 어 등을 포함해 마라티어(7.2%), 구라자트어(4.5%) 등 공용어 18종 이외에도 산탈리어, 보도어, 도그리어, 마이틸리어 등이 새롭게 지역 공용어로 지정되었다. 그리고 22개 공용어에는 해당하지 않으나 의회, 행정부, 사법부 및 사회 각 분야나 고학력층을 중심으로 널리 사용하는 공용어로서의 영어까지. 실로 다양한 언어들이 한 국가 안에서 넘쳐난다.


때문에 인도라는 나라에서 길을 잃거나 집을 잃는다는 건 대한민국이라는 땅덩이 안에서 벌어지는 일과는 또다른 차원의 문제들을 야기한다고 볼 수 있다. 한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넘어가면 사용하는 언어 자체가 달라지니 도움을 요청하더라도 알아듣지 못하거나 무시되기 십상이다.



Based on a real story, '사루 브리얼리'의 실화를 모티브로 한 영화 라이언


영화 라이언(Lion)은 형을 따라 우연히 나선 길에서 영영 형도, 자신이 되돌아가야할 집도 잃어버린 5살 꼬마의 실화담을 다룬 영화이다. 자그만치 25년이란 세월이 흐른 후 구글 어스로 자신의 집과 어머니를 찾게 된 실화를 토대로 만들어진 이 영화는 한 사람의 개인사를 넘어 이처럼 한 국가의 미아 문제와 인구 문제, 타국으로의 입양 문제, 그리고 다른 나라의 어린이를 자신의 아이로 기꺼이 품어안는 인류애 등  단순히 한 사회, 한 국가 차원의 이슈를 넘어 국제적 이슈까지를 품어안고 있다.


1987년, 인도 칸드와 가네쉬탈레이.

인도 중부의 마디아프라데시 주에 위치해 있으며 ‘칸다브 숲’이라는 뜻의 ‘칸다브 반(KhandavVan)’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는 '칸드와'는 인도 나마드(Nimaad) 지역에 위치해 있으며 철도의 중심지로 유명한 곳이다. 때문에 영화 라이언의 오프닝 시퀀스에서 활공에서 잡은 칸드와의 광활한 풍경과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철길 풍경은 어린 사루의 유년시절의 총체인 동시에 성인이 된 사루가 복기할 수 있는  그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고향과 가족이란 이름의 총체이기도 하다.

 

하지만 활공에서 집은 오프닝 시퀀스에서 보이는, 제 3자인 관객의 눈으로 보자면 지극히 아름다운 이 미지의 풍경은 곧장 사루와 그의 가족이 처한 현실 속 삶의 풍경으로 치환된다.

마치 여느 재난영화 속 풍경처럼 온통 재빛 풍경 속에서 펼쳐지는 삶의 모습은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는 것의 투쟁처럼 보인다.

이미 삶이 무엇인지를 똑똑히 체험하고 살아가는 5살 꼬마 사루는 돌을 나르는 일을 하며 가장의 몫을 대신 해내고 있는 엄마를 도와 돌을 나르는가 하면 형 구뚜를 따라  화물열차칸에서 석탄 등을 훔쳐 우유를 사오기도 한다.


대개의 불행들이 어떤 사소한 계기에서 발생하듯이 사루에게 닥친 비극과 불행 역시나 사소한 일에서 싹이 튼다. 어느날 일거리를 찾아나서는 형을 따라 간 어느 열차 플랫폼에서 잠이 들고 형은 그런 동생을 재워두고 일거리를 찾아보겠다며 잠깐 자리를 비운다. 그러나 무슨 연유인지 기다리던 형은 오지않고 잠에서 깨어난 사루는 형을 찾아 텅빈 객차 안으로 들어갔다가 열차가 출발하는 바람에 고향으로부터 영영 멀어지게 된다.



테크놀로지가 아닌 사람이 만드는 기적


영화 라이언(Lion)의 플롯은 우연한 계기로 집을 떠나 낯선 곳, 먼 세계에 불시착하게 된 사루라는 한 인도 소년의 이야기를 빌려 보다 깊숙한 이야기를 전한다. 하지만 결국 그 우연한 계기란 아버지의 자리를 대신해 가장의 책임을 떠안은 10대 형과 5살 꼬마가 생을 영위하는 과정의 지난함에서 발생한 생존 문제로부터 파생되었다는 점에서 우리의 경우와는 사뭇 다르다.

그래서 영화 속에는 도움을 주는 척 사루를 이용하려드는 어른들의 모습, 수많은 미아들이 노숙자 신세로 길거리를 전전하는 모습, 그런 와중에도 우호의 손길을 내미는 선한 사람들의 모습까지 다양한 어른들의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 된다.


그나마 사루의 경우는 무척 긍정적인 케이스에 해당한다. 어린 사루 역시나 이 위험한 세상에서 나쁜 계략을 지닌 어른들에 의해 여러번 위협을 느끼며 거친 탈주를 감행해야 했지만, 적어도 그에겐 도움을 줄 선량한 이들을 만나는 행운이 존재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실종 미아들이 사루와 같이 긍정적인 결과로 이어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사루가 오스트레일리아로 입양되기 전, 그의 모습을 눈여겨본 한 청년에 의해 경찰에 인계되는 과정에서 보이는 인도 어린이들의 미아문제, 이런 실종 어린이들의 집단수용실태와 그 아이들을 대하는 어른들의 강압적이고도 위압적인 태도와 남루한 행색 등은 한 사회를 너머 국제적으로 이런 아동 실종문제의 심각성을 엿보게 한다는 점에서 한없이 무겁다.


결국 미아와 실종문제의 대부분은 어른들의 이기심에 맞닿아 있다는 점에서 국내의 경우 이런 류의 소재는 대개 범죄스릴러물의 외피를 빈 장르물로서 많이 다루어지는 편이다.

그러나 라이언의 색채는 사루의 여정, 그 자체를 따라가는 드라마 형식이다. 게다 이 영화의 홍보과정상 어쩔 수 없이 부각되었던 구글 어스는 실상 이 영화에서 중요하게 기능하지 않는다. 이 영화가 다루는 쪽은 기술이 아니라 사람이며, 사람을 대하는 문제에 귀결된다.


현대의 테크놀로지는 분명 과거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하지만 결국 그 테크놀로지를 최종적으로 움직이고 구현시키는 힘은 인간에게서 나온다. 기적도 마찬가지이다.

결국 기적을 만드는 것은 기술이 아니라 사람이다. 사루가 집을 찾기까지 구글 어스라는 현대의  테크롤로지의 힘을 빌린 건 사실이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사루의 현재를 있게 한 것은 결국 사람이다. 

사루의 경우는 적어도 이런 테크놀로지에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환경에 살고 있었고 그러한 것이 가능한 사람들과 세계 속에 살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자신들의 자식을 포기하면서까지 포화상태인 세계적인 인구 문제, 그 속에서 제대로된 기회를 잡지 못하는 가난한 제3국의 아이들에게 그 어떤 댓가도 바라지 않고 기꺼이 손을 내밀줄 아는 수의 따스함과 휴머니즘은 테크놀로지가 구현해주는 세계의 놀라움, 그 이상을 인간에게 선물한다.

이런 존과 수 부부의 사랑과 희생이 없었다면 사루의 현재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게다 그들은 사루 뿐만이 아니라 사루의 동생으로 멘토시라는 또 한 명의 자녀를 더 입양한다.


영화 속에서 보이는 입양가정의 모습은 극적으로 미화되지 않는다. 그들 역시나 여느 가정에서나 있을법한 문제로 갈등하고 충돌하며 그 과정에서 멘토시는 결국 또다시 가출을 감행하거나 형 사루와 마찰을 일으키며 독자 노선을 걷게 되기도 한다. 특히 극 중에서 멘토시가 보이는, 자신의 주먹으로 자신의 신체를 학대하는 전형적인 자폐 증상은 선천적이라기보다 학대와 같은 후천적인 요인으로 발생했을 가능성이 커보이며 설령 선천성이라 하더라도 그를 끝까지 품어안으려는 수의 진정성은 부모의 기준과 가치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하는 지점을 선사한다.


사루가 자국에서 자신의 집을 찾아 수많은 이들에게 헬프 미를 외칠 때, 어른들은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을 하라며 그 어린 아이의 품을 밀치거나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이용하려 들거나 거리에서 떠도는 어린아이들을 납치해 경제적으로 이용하려는 어른들의 이기적인 모습은 존과 수 부부의 행동을 더욱 값진 무엇으로 우르러 보게 만든다.

생각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그것을 실천하는 일은 어렵다.


그래서 이 영화는 '구글 어스로 집 찾기'라는 기적의 신화 자체에 초점을 맞춘 영화가 아니다. 구글 어스는 주인공이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는 영화 후반부에 이르러서야 잠시 잠깐의 행위 정도로 한정적으로 묘사된다.

때문에 그런 기적의 신화담을 기대하는 관객이라면   다른 실화영화들을 보시는 편이 더 나은 선택이 될 수도 있다. 영화 라이언은 기적 그 자체보다 기적을 불러온 그 뒷면의 이야기에 보다 초점을 맞춘 영화이다.

25년의 시간을 뛰어넘는 비교적 긴 서사에 비해 인물들의 행동이 각자 겉도는 듯 한 인상과 이야기의 밀도가 촘촘하지 못한 것은 아쉬움으로 남지만 이 영화 속에서 피상적으로나마 다루어지고 있는 많은 문제들은 영화 속 이야기가 아닌 현실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그 무거움이 있다.


사루 브리얼리의 실제 실화를 바탕(그의 저서 '집으로'가 기반)으로 만들어진 라이언의 마지막 엔딩 자막에 이르면, 그날 기차역 플랫폼으로 사루를 찾아오지 못한 형 구뚜의 사연과 그 내막의 진실이 밝혀진다. 그리고 실제 주인공인 사루(실명은 세루, 이 세루가 영어로는 라이언의 의미라고 한다)와 그의 호주 부모님인 수와 존 부부가 사루의 인도집을 방문하는 실제 다큐멘터리 영상이 소개된다.


현대의 테크놀로지와 사랑을 실천하는 한 부부의 휴머니즘이 결합되어 만든 작은 기적!

우리는 이런 기적을 만드는 일에 기꺼이 동참하고 있는지, 동참하지도 못하면서 그들을 향해 날선 비판만을 행하고 있지 않은지 영화 라이언은 혈연과 지연을 뛰어넘어 가족이란 이름의 유대로 묶인 가족이란 이름의 참된 정의와 진정 부모됨의 자격을 한 번쯤 되돌아보게 만든다.

사루의 현재와 오늘을 있게 한 것은 결국 사람이며 가족들이다.

그래서 영화 라이언은 때로 사람이 절망이 되는 세상에서 그럼에도 박노해 시인의 시 속 한 구절처럼 사람만이 희망인 세상을 어렴풋하게나 정의해주는 영화이다.


인도~오스트레일리아에 이르는 광활한 대륙을 활공에서 잡은 아름답고도 웅장한 영상미와 인상적인 피아노 선율, 거기에 아름답고도 어린 사루 역의 '써니 파와르'의 똘망똘망한 눈동자와 귀여운 목소리가 성인 연기자 데브 파텔과 수 역의 니콜 키드먼, 사루의 연인으로 나오는 '루시' 역의 루니 마라의 존재감을 훌쩍 뛰어넘는다. 개인적으로 이들의 네임 밸류에 비해 존재감이 미약한 연출과 다소 헐거운 듯 한 스토리의 밀도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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