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노래를 잊고 있었다니
회사를 다닐 때 참 좋아하던 노래가 있었다
자이언티의 [꺼내먹어요] 라는 노래
참 서정적인 멜로디에
현실적이고 직설적인 가사지만
마무리는 츤데레처럼 감싸주며 위로해 주는 그런 가사.
당시 공감했던 부분은
바라는 게
더럽게 많죠
(그렇죠)
쉬고 싶죠
시끄럽죠
다 성가시죠?
누가 내 마음속에 들어갔다 나왔나
맨날 하고 싶은 말을 이렇게 노래로 들으니 내 마음 알아준 것 같고 괜히 위로받는 느낌이랄까.
한참을 잊고 지냈다.
매일 대여섯 번씩 들었으니 약간은 지루했는지
다른 노래를 듣다가 한참을 잊고 지냈다.
며칠 전, 일상에 지친 날이었다.
임신 8개월의 무거운 몸을 이끌고 일상을 소화한 날이었고,
저녁을 해 먹은 설거지가 남아있었다.
세 명이 겨우 한 끼 차려 먹었는데 뭐가 이리 많나..
아이는 유독 자기주장이 강한 날이었고,
남편은 유독 무심한 날이었다.
음악이라도 들으며 설거지하자는 마음에
누군가 모아놓은 달달한 플레이리스트를 틀어놓고
설거지를 막 시작하는 참이었다.
익숙한 멜로디에 나오는 담백한 노래.
안녕,
쉽지 않죠 바쁘죠
왜 이렇게 까지
해야 하나 싶죠
오랜만에 보는 친구에게 전화가 온 것만큼 반가운 노래다
노래가 반가운 적이 있었던가
나를 위로해 주기 위해 재생되고 있는 듯한 노래.
하던걸 멈추고 서서 음악에 집중했다.
집에 가고 싶죠?
(집에 있는데도)
집에 가고 싶을 거야
그럴 땐 이 노래를
초콜릿처럼 꺼내 먹어요
피곤해도 아침 점심밥 좀 챙겨 먹어요
그러면 이따 내가 칭찬해 줄게요
이 부분이 이렇게 마음을 후려칠 일인가.
역시 호르몬이라는 놈이 무섭다.
아주 사람을 들었다 놨다 한다.
이 노래를 꺼내먹으라는 발상 자체도 훌륭하지만
힘들 땐 이 노래를 들으며
스스로를 다독이라는 의미가 아닐까.
진짜 아침 점심밥 굶는 사람을 걱정해서 하는 말이 아니겠지
너 스스로를 돌보는 시간을 주라고 하는 말이겠지
사실은 둘째의 출산이 무서워지고 있고,
그보다 두 아이의 전담육아가 더 무서워지고 있는 시기다.
아직 겪어보기 전의 막연한 두려움이 언제나 더 무서운 법이니까.
나는 육아를 괴로워할 정도로 힘들어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한 두 번 정도는 마음이 무너지고
내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을 순간이 온다는 것을 안다.
마음이 무너지고 스스로가 안쓰러워질 내가 걱정된다.
물론 걱정만 하고 있을 순 없다.
요즘은 엄마부터 챙기는 고맙고 애잔한 첫째 딸과
나만 믿고 이 세상에 나올 둘째 딸을 위해
산후 우울에서 지켜줄 방어복을 만들어야지
그럴 때 찾아들을 만한 노래들을 모으고
나의 취향에 맞는 간식들을 찾아놓고
바라보고 있으면 행복한 소소한 소품들도 찾아놓아야지
내 소확행 바구니에 차곡차곡 한가득 쌓아두고
겨우내 도토리를 꺼내먹는 다람쥐처럼
마음이 지쳐갈 때쯤
하나씩 야금야금 꺼내먹어야지.
물론 노래 일 순위는 이 노래다.
문득, 자이언티 님의 노메이크업이라는 노래도 생각난다.
만삭 임산부부터 신생아, 영아시기 아기육아에 지친 엄마들에게
남편이 센스 있게 불러주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넌 모를 거야
자다가 일어나 살짝 부은 얼굴이
얼마나 예쁜지
넌 모를 거야
자기 전 세수한 니 모습이
얼마나 예쁜지
자꾸 거울 보지 마
몸무게 신경 쓰지 마
넌 그냥 그대로 너무 예쁜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