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호캉스
둘째 출산 D-12
이 날이 어김없이 오기는 한다
입덧으로 밥 한 숟가락에도 위경련이 오던 날들이 엊그제 같은데
늘 그렇듯 시간은 생각보다 빠르다
국군의 날이 임시공휴일로 된다는 소식에 부랴부랴 집에서 가까운 호텔을 예약했다
만삭이라
차를 오래 타고 이동하고 싶진 않고
둘째 만삭이라
첫째 아이와 우리 셋만의 추억을 공식적으로 만들고 싶었다
마침 호텔 안에서 캠크닉을 할 수 있는 패키지를 판매하고 있어, 날씨도 좋고 여러모로 예약을 안 할 수 없던 것이다. (가격만 빼고)
예약할 때까지만 해도 좋았는데
뭔가 마음이 흐지부지였다
그 사이 출산준비로 인한 지출도 많았고 남편과 나는 각자의 컨디션 난조로 약간은 지쳐있었다
그래도 첫째 아이에게 불어놓은 헛바람과
우리들 마음속에 암묵적으로 자리 잡은 생각으로 강행하기로 결정.
그 생각은 아마도 ’ 이번에 안 가면 당분간 이런 여유는 없다 ‘였을 거다
아이와 함께 호텔에 들어서는 순간 특유의 고급스러운 향이 몸을 감싸는 느낌이다
아이는 샹들리에의 화려한 불빛과 매혹적인 향, 만삭인 엄마에게 특히나 친절한 직원들에 기분이 들뜨지 않을 수 없었는지, 흥분된 목소리를 감출 생각도 없이 “엄마 여기 너무 좋아요”라며 방방 뛴다.
그동안 꽤 괜찮은 호텔을 다녀봤음에도 아이가 그곳을 인지하려면 5살은 되어야 하나 보다
처음 온 사람처럼 보이고 싶지 않아 아이에게 여유 있게 이야기해 주면서도
아이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며 역시 오길 잘했다
돈이 좋긴 하구나 라는 생각을 안 할 수 없는 엄마였다
내일부터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가 (일단은) 있으니
오늘 서둘러 캠크닉을 가야 한다
부랴부랴 셔틀을 타고 올라간 공원에는
오늘 그대들의 낭만과 여유를 책임지겠다는 듯
온갖 것들이 준비되어 있다
인디언텐트와 잔디밭에 있는 캠핑의자들과 간단한 가족 놀이 소품들과 맥주, 팝콘 등의 간식까지.
석양이 질 때 즈음엔 노란 알전구도 알알이 켜진다
거기에 활짝 웃는 우리의 아이와 우리가 있다
하.. 이러려고 여기 왔지
비눗방울을 따라잡으러 뛰어가는 딸을 보며
문득,
꿈을 따라잡으러 뛰어가는 너를
엄마가 계속 이렇게 지켜봐 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주책맞은 생각도 해본다
우리 집은 숲뷰, 나무뷰 이기 때문에 숙소는 항상 오션뷰, 리버뷰를 선호한다
이번 숙소도 4만 원 차이로 남편의 눈치가 조금 보이긴 했지만 리버뷰를 포기할 수 없었다
서울의 야경 리버뷰 인걸!!
역시나 내 선택은 옳았다는 걸 방에 있는 내내 확인할 수 있었다
새벽에 자다 깬 아이가 창 밖을 보며 졸린 눈으로 씨익 웃는다. “엄마 밖이 너무 예뻐요”라고 말하고는 잠이 든다
그런 네가 더 예쁜 건 너는 모르겠지
오른쪽으로 몸을 돌리면 숨 트이는 서울의 야경이
왼쪽으로 몸을 돌리면 숨 막히는 귀여움을 가진 딸이 자고 있다
하.. 이러려고 여기 왔지
야경이 보이는 루프탑에서 셋이 쪼르르 앉아 족욕하며 서로 장난치고, 아이가 샤워하는걸 밖에서 지켜보며 김이 서린 유리창에 낙서하던 아이의 모습이 또 하나의 소중한 장면이 되어 마음속에 박힌다
참 다행이다
오롯이 우리의 순간을 담을 수 있는 마음이라서.
둘째가 생기고 첫째에게 가졌던 왜인지 모를 안쓰러운 감정들을 이제는 씻어내려 한다
동생이라는 존재가 나중에는 너에게 가장 큰 선물이 될 줄 알지만
지금은 어린 너의 마음을 알게 모르게 속상하게 했을
너만의 엄마가 이제는 동생의 엄마도 되겠다고 마음을 먹는 것 같은 기분이다
대신 내가 두세 배는 더 큰사람이 되어야겠지
혼자 그런 다짐을 해보는 것이다
사실 이 다짐을 하기 위해 여기 왔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