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답하다 답답해

미안

by 그럴수있지

첫째 아이가 올해 6살이 되었으니, 유치원에 다닌 지도 1년이 되어 간다.

그동안 아이는 참 즐겁게도 유치원을 다녔다.

율동과 노래를 부를 때에는 항상 가운데서 제일 열심히 몸을 흔들어댔으며,

차를 타고 유치원 앞을 지날 때면, 목이 터져라 유치원에 안녕 인사를 했다.

영어 유치원에 적응을 잘할까 고민했던 과거의 걱정이 무색할 정로로

유치원을 좋아하는 아이를 보는 게 나에게도 즐거운 생활이었다.


그런 나에게 처음으로 시련이 찾아왔다.

1년에 한 번 있는 단어 콘테스트가 그것이다.

한 달 남짓한 시간 동안 50개의 단어를 외워서

골든벨 형식으로 답을 못쓰면 탈락자로 떨어지고 계속해서 살아남는 사람이 1등이 되는 그런 형식이다.

이제 막 6살이 된 아이들에게 냉혹한 방식이지 않은가

그냥 받아쓰기처럼 한 번에 시험 보고 그냥 결과가 나오고 끝이었으면 그나마 나았을 것 같다.

나의 시련은 그런 콘테스트에서 아이가 좋은 성과를 내기 바라기 시작한 것이다.


사실 나는 유치원 입학 상담 때,

나는 아이에게 사회의 경쟁을 벌써부터 경험하게 해주고 싶지 않다며

1등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그냥 아이가 즐겁게 영어로 농담을 할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런 내가 흔들렸다.

남편은 본인이 알던 내가 달라졌다며 매일 말하고 나도 인정한다.



나는 왜 갑자기 아이의 시험에 신경 쓰게 되었을까.

아이를 모범생으로 만들어주고 싶었던 것 같다.

관심받기를 좋아하는 아이가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이 받을 수 있는 관심들을 받게 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무언가를 열심히 노력해서 얻어낸 결과에서 성취감을 맛보기를 바랐다.


그렇게 요 근래 보기 힘들었던 나의 의욕이 타올랐다.

난 아이에게 단어 암기 하는 방법을 알려줄 수 있었고

언제든지 아이와 함께 공부해 줄 준비가 되어 있었다.

내가 공부를 한창 할 때처럼

단어를 쉽게 외우는 방법을 알려주면서

남은 기간 동안 하루에 외워야 할 단어의 개수를 정해 외우고

하루가 지날수록 누적되어 온 단어들을 복습했다.



그런데 아주 중요한 사실이 있었다.

나의 딸은 17일 전에 고작 6살이 되었다.

아직 60개월도 채우지 않은 어린 아이다.



그렇게 어린아이가 왜 어릴 때의 나처럼 단어를 쉽게 외우지 못하는지 답답했고

(당연하다. 나는 그렇게 어릴 때부터 영어 공부를 하지 않았다.)

왜 집중을 하지 못하는지 답답했다.

그럴 때마다 나의 목소리가 커지기도 하고 표정도 변했으리라.

그러다가 아이가 단어를 잘 외우는 날에도

나의 표정이 변한걸 아이는 알았겠지

미련한 엄마 같으니라고.



그렇게 시험 날짜가 다가오면서

단어를 다 외우지 못한 것에 전전긍긍하기도 하고

아이에게 경쟁에서 성과를 내라고 다그친 것 같아 미안하기도 했다.

또, 시험 당일에 아이가 실수로 똑 떨어져 버려서 마음의 상처를 받진 않을까 걱정도 되었다.

이런 생각들이 며칠을 머릿속에서 엉켜있었다.

하루 종일 출렁거리던 생각들로 멀미가 날 지경에 이를 때쯤

이런 생각이 들더라.



아. 이런 시험에서 1등 할 아이었다면, 나는 지금 영어유치원을 안 보냈겠구나

우리 첫째 아이는 언어적 감각이 뛰어난 아이가 아니라

말도 늦게 틔었고

본인이 잘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에 있어서는 자신감이 떨어지는 게 나를 닮았다.

그래서 아이의 영어유치원행을 결정했다.

다양한 교육방식에 관심이 있는 나로서는 다른 대안을 생각해 볼 수도 있었지만

아이의 미래에서는 피해 갈 수 없는 영어를

최대한 자연스럽고 친숙하게, 재미있게 배울 수 있도록 준비해 줘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아마 50개의 단어를 다 손쉽게 외울 수 있는 감각이 있는 아이었다면

나는 아마 영어유치원 대신 이 시기에 중요한 다른 것들을 채워주기 위해 노력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했던 내가 지금 성과를 바라고 있다니

아이가 단어를 내 마음과 다르게 외우지 않는다고 답답해하고 있다니..

진짜 답답하게 행동하는 사람은 나였다

욕심이라는 것이 정말 무서운 거구나

나라는 사람을 이렇게 정신 못 차리게 했구나



이렇게 생각을 정리하니 마음이 편해졌다가 이내 다른 고민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이렇게 흔들려서는 안 되는데..

아이는 앞으로 학교도 갈 것이며

무수히 많은 경쟁과 시험 속에서

스스로를 비교도 할 것이고 좌절도 할 것이다.

그때 모든 것을 다 보여주며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아이가 큰 바람을 맞아 휘청거릴 때 붙잡고 설 수 있도록

올바른 중심을 잡아줄 수 있는 엄마가 되어야 한다.

앞으로 수도 없이 듣고 읽어보고 생각할

이런 고민을 지금부터라도 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혼자 생각해 본다.



오늘이 그 시험날이다.

아침부터 아이는 98일 된 동생에게

"언니 1등 할 수 있을까?"를 물어보는 아이에게

"노력 1등으로 했으니까 괜찮아, 재미있게 보내고 와 "

라고 말해주며 등원시켰다.

마지막까지 그런 스트레스를 막아주지 못한 미련한 엄마는 미안한 마음에

상장을 만들어야겠다.

아이의 오늘 성적은 물어보지 않고

아이가 태어나서 가장 최선을 다했을 노력을 칭찬해 주며

치킨을 사줘야겠다.

수고했어 딸아

반성할게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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