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탄광촌 골목에 꽃이 핀다.

태백 철암탄광역사촌, 사라져 가는 것들

by 키작은 울타리

폐가의 무너져 내린 지붕 조각들 사이에 벽시계가 끼어 옴짝달싹 못한다.

마지막 운행이 언제였는지 모른다.

문지방에 걸터앉은 깨진 거울은 생생한 목격자였을 것이다.

뒤란의 등치 큰 나무 한 그루,

몇 갈래의 뿌리는 허공을 밟고 몇 갈래는 땅속에 박고 버티고 있다.

잡초들에게는 살 맛 나는 세상이다.

주인 없는 집으로 무차별 줄기를 뻗어 나간다.



흰 비닐로 입을 봉한 낡은 나무 대문이 열린다.

바람이 빠져나간 줄 알았다.

지팡이의 닳은 발바닥이 먼저 문 밖으로 얼굴을 내민다.

붉은 꽃이 수놓아진 흰 스웨터를 입은 노인이 뒤따라 나왔다.


골목마다 땅바닥에는 지팡이의 지정석이 있다.

종지만 한 자리를 찾아가는 지팡이가 부들부들 떨었다.

지팡이와 땅바닥의 밀고 누르는 힘겨루기 끝에 노인이 맨바닥에 앉는다.

흰 연탄재 하나가 담벼락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멀리 해가 푸른 하늘과 검은 산의 경계를 오간다.

오래전 윗집 복남이도 해처럼 왔다.

그리고 어둡고 깊은 막장에서 불꽃같은 삶을 살다가

어느 해 짐을 싸 검은 산의 경계를 넘어갔다.

해처럼 다시 돌아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검은 산이 나란히 앉은 연탄재와 노인을 품는다.

하얀 등에 울긋불긋 붉은 불꽃이 핀다.

꽃은 겨울 언덕배기 탄광촌 골목을 데운다.

마음에 난 내 차가운 골목도 데워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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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암역두 선탄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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