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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ris Seok Feb 06. 2022

인생은 오래달리기

너가 머리가 확 좋은 건 아니었잖니.


얼마전 최모 선생님과 통화 중 나온 이야기다. '그렇지, 내가 머리가 확 좋은 사람은 아니지' 하며 오랜만에 메타인지를 하게 됐다. 내 머리는 1을 배우면 10을 깨우치는 그런 특별함은 없다. 그저 남들만큼 모나지 않은 평범한 수준이다. 선생님은 내가 초등학교 5학년때부터 중학교 3학년 때까지 과외를 해주셨기 때문에 나의 지능수준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시는 분이다.


당시 난 선생님께 2대1로 과외를 받았고, 나와 과외를 받던 또 다른 친구 한 명은 머리가 좋았다. 내 기억에도 그 친구는 하나를 배우면 10까진 아니어도 5까지는 응용이 가능했다. 반면 난 딱 배운데까지만 생각할 수 있었던 것 아이였던 것 같고.


그런데 난 그 친구를 이겨야 직성이 풀리는 아이였다. 잘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선생님의 설명에 의하면 그렇다고 한다. 선생님은 내가 12살부터 34살이 된 지금까지 지난 22년간 내 인생을 곁에서 지켜보며 '샘이 많은 아이가 꾸준히 노력을 하면 성취할 수 있구나'를 느꼈다고 하셨다.


그런가. 난 샘이 많았고, 그래서 노력을 했던가.




내가 어린 시절부터 자신있었던 건 '오래달리기'였다.


살면서   번도 운동회의 꽃인 계주 달리기 선수가 되어본 적이 없다.  빨리 달리는  소질이 없으니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이 당연한 일이다. 빨리 달리는 일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선천적 재능이고, 예체능 분야에서 재능이란  노력만으로 따라잡을  있는 범주가 아니다.


그런데 오래달리기는 달랐다. 내가 '해보겠다'라는 강한 마음만 먹으면 그저 달리면 되는 일이었다.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할 수 있는한 발을 앞으로 내딛기만 하면 끝까지 달릴 수 있었다. 그건 빨리 달리는 일과 비교해 재능 보단 노력으로 어느 정도 결과를 낼 수 있었다. 체력도 재능이라고 누군가 반문한다면 머리를 긁적일 수밖에 없겠지만서도, 그래도 빨리 달리는 일에 비하면 재능이란 요소가 상대적으로 큰 부분을 차지하지 않는 것 같다. 노력만으로 어느 정도 결과물이 달라질 수 있단 점에서 오래달리기가 훨씬 더 공정한 게임이 아닌가, 난 그렇게 생각한다.  


내겐 공부도 달리기와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최대한 객관적으로 내 지능 수준은 아주 특출나지도, 모나지도 않은 보통, 딱 그 정도다. 어릴 적 한글을 일찍 깨우쳐 우리 부모님은 이 아이가 천재가 아닌가, 하며 손뼉을 쳤겠지만 그런 경험은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누구에게나 한 번씩은 있는 법이다. 여하튼 난 어릴적부터 평균치를 웃도는 아이였다. 학교에서 받아오는 시험 성적 평균은 대개 88점. 아슬아슬하게 90점은 넘지 않아 공부에 특별한 재능이 있다 말할 수 없지만, 어느 정도 대강 공부하면 늘 88점~89점에 머물러서 '공부가 길이 아니다'라고 섣불리 판단할 수 없는 그런 상태.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한 건 중학교 3학년 때부터였다. 드라마가 너무 좋았던 나는 성공한 덕후가 되기 위해 방송국 PD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했다. PD들이 쓴 책을 읽어보니 공통적으로 좋은 대학을 나와야 PD가 되기 위한 첫 번째 관문을 통과하는 것 같았다. 목표가 정해지니, 공부할 의지도 불끈 솟아났다. 다행이 내겐 전교권에서 노는 공부 잘 하는 친한 친구가 있었고, 그 친구를 따라 학원도 다니며 열심히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평소보다 노력하니 시험 성적은 평균 90~92점대로 올랐고, 난 스스로에게 일말의 가능성을 발견했다. 고등학생 때 성적은 눈에 띄게 좋아졌다. 고3 때는 전교 7등까지 성적이 올랐다. 노력한 만큼 결과가 나오자, 공부의 재미를 느꼈다. 그 때의 난 '독한' 부분에 있어서는 자신이 있었다.


목표가 있는한 꾸준히 오래달리기만 한다면 적어도 목표지점 비슷한 수준까지는 도달할 수 있다.



하지만 오래 달려야 하는 선수로서의 삶이 마음에 드는 것만은 아니다.


선생님은 노력 덕에 여기까지 왔다고 칭찬해 주셨지만, 나로서는 이따금씩 '왜 이렇게 아등바등 딱 노력한만큼만 결과가 나올까'하고 한탄하게 될 때도 있다. 때때론 남들처럼 운이라는 요소도 작용해서 내 기대 이상의 성취를 맛보고 싶기도 하다. (어쩌면 다른 사람들이 '운' 덕에 좋은 자리에 올라갔다고 말하는 일 조차 나의 오만함인지 모른다. 그게 그들의 노력 덕택인지, 운 덕택인지 난 알 길이 없으니.)


남편에게 고민을 털어놓으면, 그는 대답한다. "노력 만큼이라도 나오는 게 어디야."


그래. 우문현답이다. 노력 만큼 결과물이 나오는 삶은 그야말로 근사한 삶이다. 세상은 변수로 가득하고, 노력은 언제나 공정한 결과를 가져오지 않으니까.


노력한 만큼은 결과가 나오는 나를 믿고, 오늘도 오리처럼 물 밑에서 발차기를 세차게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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