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Iris Seok Feb 25. 2022

사촌이 좋긴 좋구나

아이들에게는 사촌이 있다. 하지만 살면서 본 적이 거의 없다. 여기서 ‘거의’라고 표현한 건 첫째 아들은 자신의 사촌을 태어난 지 6개월쯤 딱 한 번 봤는데, 당시의 기억은 아들에게는 없는 것이나 다름 없어서다. 그러니 아이들은 살면서 자신들의 사촌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해도 무방할 것이다.


아이들의 사촌은 남편 누나의 아들이다. 남편 누나네 가족은 우리 부부가 결혼을 한 직후 곧바로 유럽으로 주재원 파견을 나갔다. 우린 한 번쯤은 누나네 가족이 있는 유럽 나라에 가서 유럽여행을 하리라 마음 먹었지만, 3년째 지속되는 코로나19는 우리의 계획을 뭉그러뜨렸다. 유럽커녕, 내 나라 한국 조차 가기 힘든 나날이 이어졌다.  


그러다 최근 아이들과 사촌이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드디어 생겼다. 남편 누나네 가족이 미국에 MBA 과정을 하러 온 것. 비록 아주버님이 MBA를 하는 학교가 LA와는 비행기로도 5시간이나 떨어진 곳이어서 자주 볼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1년에 한 두 번은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지난주 누나네 가족은 3박4일이라는 짧은 일정으로 LA를 방문했다. 이번 만남에서 처음 만난 아이들이 어색하지 않고, 친해질 수 있느냐가 관건이었다. 아이들은 총 3명. 모두가 남자아이다. 첫째 아들과 사촌은 나이가 똑같다. 친해진다면 친구나 다름 없는 사이가 될 수 있을 터였다. 시어머님은 한국에서 우리가 단톡방에서 나누는 대화를 지켜보며 멀리서도 뿌듯함을 느낀다고 하셨다. 어머님은 누나네가 방문하면 아무래도 돈이 들어 갈 테니, 식사하는데 보태라며 한국 통장으로 100만원을 보내주셨다. 어머님이 이만큼이나 신경 쓰시는 걸 보니, 누나네가 오면 더욱 잘해야겠다는 마음이 불끈 솟았다. 나이 들어 자식들끼리 친하게 지내는 것만큼이나 부모를 기쁘게 하는 것은 없구나 싶었다.



누나네가 오기로 한 날, 평소보다 1시간 일찍 퇴근해 LAX 공항으로 향했다. 남편은 회사가 멀어 내가 누나네를 마중 가기로 했다. 공항을 가는 길은 언제나 기쁘다. 내가 여행을 떠날 때도, 그리고 가족이나 친구를 맞이할 때도 모두 큰 설렘이 따라온다. 누나네를 직접 만난 지 어느덧 만 4년이 지났다. 공항에는 사람들이 바글바글해서 이게 과연 코로나 시국이 맞는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수하물 찾는 곳에서 비교적 쉽게 누나네를 발견했다. “언니!”하고 달려갔다. 사실 공식적으로는 ‘형님’이라고 불러야 옳은 호칭이지만, 형님이라는 말은 영 내키지 않는다. 게다가 ‘아주버님’이라는 호칭은 더욱 이상하다. 우리는 우리 집 식대로 서로 부르기로 했다. 언니네는 내 이름을 그리고 나는 언니, 오빠라고 부르기로 했는데 사실 오빠라는 호칭 또한 아이를 낳고 보니 어색하다. 대신 친구 남편을 부를 때처럼 자꾸 ‘형부’라는 호칭이 나도 모르게 튀어 나왔다.



아이들은 처음 만나자 마자 금세 친해졌다. 영상 통화로 몇 번 본 게 도움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저들끼리 낄낄 거리며 남자아이 셋은 집안을 휘젓고 뛰어다녔다. 조카는 실물이 훨씬 더 멋있었다. 언니네와 오랜만에 만나 와인을 마시며 그간 밀린 대화를 나눴다. 어른들이 술을 마시고 노는 동안에 아이들 또한 잠도 자지 않고 끝없이 놀 태세였다. 결국 그날 아이들과 어른 모두 자정이 가까워져서야 잠이 들었다.

언니네가 와있는 동안 남편과 나는 휴가를 내고 언니네와 함께 LA 인근을 여행했다. 우리도 여행객이 된 듯 새삼 LA의 모습들이 새롭게 다가왔다. 예민한 기질을 타고난 첫째 아들은 사촌과 함께하는 3박 4일 동안 착한 아이로 변신했다. 사촌 아이가 워낙 착하고 차분한 성격이다 보니 저 또한 가면을 쓴 것처럼 착한 행동들을 했다. 이를 테면 장난감 양보, 보고싶은 TV 프로그램 양보 같은 것들.


덕분에 이 기간 동안 나의 육아는 아주 쉬웠다. 그저 하루하루를 언니네와 함께 여행 다니고, 밤 마다 와인을 마시며 여행 온 사람처럼 즐길 수 있었다. 아이 셋을 바라보며 ‘아들 셋도 좋겠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물론 실제 아들 셋은 아들 둘과 조카 1명이 이루는 조화와는 다를 것을 알지만서도, 아들 셋의 비주얼이 아름답게 여겨졌다.



사촌이 있는 동안 첫째 아들, 둘째 아들 모두 행복해 보였는데, 그 중에서도 첫째 아들이 특히나 즐거워 보였다. 자신과 나이가 똑같은 사촌을 새로 사귄 친구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새로 사귄 친구와 동고동락하며, 이곳 저곳 여행 다니니 즐거울 수밖에.


사촌이 다시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는 날. 첫째 아들은 쿨하게 사촌과 이별했지만, 텅 빈 집에서 잠시 멍을 때렸다. ‘나 이제 누구랑 놀아’라며 다시 본래의 징징대는 성격이 나오기 시작했다. ‘너에겐 동생이 있잖니’라고 말하면, ‘동생이랑 노는 건 재미가 없어’하며 반격했다.



사촌이 좋긴 좋구나. 조만간 다시 만나는 날을 고대하며.

작가의 이전글 발렌타인 구디백(Goody bag)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