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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ris Seok Jun 04. 2022

형제라서 참 다행이야

아둘맘의 이야기


이런 문장을 말과 글로 표현하게 될 줄 몰랐다.


형제라서 참 다행이야


불과 지난해까지만 해도 셋째 딸을 고려해오던 난 '아둘맘'이다. 3년 전 산부인과에서 둘째 아이의 성별이 'boy'라는 사실을 듣고서 병원을 걸어나오다 털썩 길가 벤치에 주저앉았던 기억이 지금도 선명하다. 아들 둘은 생각지도 못했던 결과물이었다. 나와 남편에게는 각각 남동생, 누나가 있다. 우리 둘 다 남매였던지라 당연히(?) 우리의 자식 또한 남매로 구성될 줄 알았던 거대한 착각을 오랜 기간 품고 살았다. 그랬기에 아들 둘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조합은 적잖이 당황감을 가져다줬다.


물론 막상 낳고 보니 둘째 아들은 귀엽고, 또 귀여웠다. 형과 달리 순둥한 둘째는 키우는 동안 엄마 아빠의 몸과 마음을 평온한 상태로 유지하게끔 도와줬다. 둘째를 혼내는 일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둘째를 보고만 있어도 미소가 났다.


그럼에도 딸에 대한 미련은 지난 해까지도 쉽사리 놓아지지 않았다. 미래에 딸과 함께 여행 가고 싶고, 쇼핑도 가고 싶은 마음이 잊을만 하면 거머리처럼 들러붙어 나의 미련을 자극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난, 이상하게도 셋째 딸 타령을 하지 않게 됐다. 그리고 이젠 확고해졌다.

난 아들 둘로도 충분하다. 충분하다 못해 더할 나위 없다, 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딸을 향한 미련이 감쪽같이 사라진 건, 나는 남편과 노는 게 제일 좋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기 때문이다.


남편은 늘 바쁜 사람이다. 친인척 하나 없는 미국에서 자신의 사업체를 차려 자리를 잡기까지 남편은 늘 긴장 속에 살아야했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지금은 살만 하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자리를 잡았다'는 기준이 애매모호 하거니와 한 가정을 책임지는 가장으로서, 그리고 직원들의 월급을 꼬박꼬박 챙겨야 하는 사장으로서 그는 여전히 바쁜 사람이다.



그런 남편과 얼마 전 실로 오랜만에 단 둘이 데이트를 했다. 첫째는 학교에, 둘째는 유치원에 간 어느 금요일 오전. 직장인으로 치면 월차를 낸 남편과 7년 전처럼 둘이서만 데이트를 즐겼다. 영화를 보고, 점심을 먹고, 길거리 쇼핑을 했다. 연애 때는 당연한 일들이 애 둘의 부모로서는 전혀 당연하지 않았다. 꽉 차오를 만큼 행복한 하루를 보내고 나서야 새삼 깨달았다.


아, 나는 남편과 둘이 놀면 행복한 사람이구나. 미래의 내가 딸과 하고 싶던 일들은 남편과 하면 된다. 여기서 아이를 더 낳아 육아의 늪에 빠지느니, 아들 둘을 장성하게 키워놓은 후에 하루 빨리 둘 만의 시간을 확보하는 게 더 좋은 선택이다.



게다가 유아기를 벗어나자 아들 둘은 서로에게 베스트 프렌드가 됐다.


남편과 나는 주말에 일할 때가 잦다. 둘 다 일해야 하는 주말에는 꼼짝없이 하루 종일 집에 갇혀있을 때가 발생한다. 그런데 요상한 일은 아이들은 엄마 아빠가 일하던 말던 하루 종일 놀기 바쁘다는 것이다. 지난 주말에 남편은 외출하고, 나 혼자 일하면서 아이 둘을 봤다. 그런데 전혀 힘들지 않았다. 아이 둘은 서로 대화하며 낄낄 거리고, 집안 곳곳을 뛰어다녔다. 저희들만의 상상 속 세상에 빠져, 엄마와 아빠의 부재는 전혀 신경쓰지 않는 듯 했다. 나는 그저 틈틈이 밥과 간식만 챙겨줄 뿐, 육아의 고됨을 느끼지 않았다.


만세삼창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세상에. 아이들은 이만큼이나 성장했다.


서로의 존재만으로도 행복한 아들 둘은 어제도 오늘도 너무나 잘 논다. 굳이 특별한 이벤트가 없는 날에도 아들들은 함께 노는 것만으로도 즐거워한다. 그리고 그 모습을 바라보는 게 오늘날 나와 남편의 행복이다. 저렇게나 친한 친구라니. 이 험한 세상에서 앞으로 아들 둘은 서로에게 얼마나 큰 의지가 될런지.


나 역시 어릴 적 자매있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나도 언니 또는 여동생이 있었으면, 하고 얼마나 바랐던가. 부모에게는 아들과 딸 하나씩 있는게 좋겠지만, 아이들 입장에서는 동성 형제, 자매가 있다는 게 큰 축복인 것 같다.




그러니 아들 둘이라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너희들만 행복하다면, 뭘 더 바랄게 있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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