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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ris Seok Oct 18. 2022

내가 싫은 날

그 날은 첫째 아들 친구의 생일파티에 참석하는 날이었고, 우리 가족은 아침부터 분주했다. 미국의 클래식한 브런치 가게 '아이홉'에서 간단하게 아침식사를 해결하고, 근처 마켓에 들려 아들 친구에게 줄 생일선물을 구매했다. 집에와서 생일선물을 재빨리 포장하고, 아들과 함께 생일 카드도 만들었다. 생일파티에 갈 모든 준비를 마치고 두 아들은 주말이면 집에 방문하는 미술선생님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생일파티 시작 시간은 오후 2시였고, 파티에서 점심 또한 제공될 것이므로 우리 가족 모두는 제각각 여유로운 주말 오전시간을 누릴 수 있었다.


난 넷플릭스로 미드를 보며 단잠에 빠져들었다. 얼마만에 자보는 낮잠인지 달고 달았다. 실로 평화로운 주말이었다.


아이들의 미술과외가 끝나고, 우리 가족은 넉넉하게 생일파티 장소에 도착하기 위해 오후 1시20분쯤 차에 탔다. 난 네비게이션에 찍을 주소를 확인하고자 이메일로 받은 초대장을 열었다. 그리고 심장이 덜컹 내려 앉고 말았다. 생일파티 시간이 오전 11시부터 오후 1시까지로 쓰여 있었다.



망.했.다.

난 도대체 왜 파티가 오후 2시부터라고 100% 믿고 있었던 것일까?


심장이 벌렁거렸다. 어떻게 이런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르고야만 것일까. 것도 나에게만 피해가 가는 게 아닌 아들과 아들 친구에게 피해를 주는 실수였다. 아들 친구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봤지만, 파티를 끝내고 짐을 챙기느라 한창 정신이 없는 시간인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우선 남편에게 생일파티 장소로 가보긴 하자고 말했다. 남편은 이미 파티가 끝났는데, 뭐하러 그곳에 가냐고 물었지만, 내게는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일단은... 그래 일단은 생일파티 장소에 가보자고 부탁했다. 뒷좌석에 탄 첫째 아들이 물었다.


"엄마, 얼마나 걸려? 15분이면 도착하는거야?"


말문이 막혔다. 지난 주 내내 친구 생일파티에 간다고 기대에 찬 아들에게 대체 뭐라고 설명하면 좋을까. 애매하게 미소만 지으며, 난 그 어떤 대답도 하지 못했다. 우선 친구 엄마와 연락이 되는게 우선이었다. 메시지로 장황하게 내 상황을 설명하고, 미안하다고 거듭 사과했다. 몇 분이 채 지나지 않아 답장이 왔다. 괜찮다고, 이해한다는 내용이었다. 아들 친구와 아들은 그날 오후 4시에 야구 연습이 있었기 때문에 그때 만나 생일선물을 전달하기로 했다.


일단 학부모에게는 사과를 건넸고 (그러나 마음은 여전히 불편하기만 하다) 이제는 아들에게 사실을 고백할 시간이었다. 달리는 차 안에서 사실을 전했다. 엄마가 생일 파티 시간을 착각했고, 이미 생일파티는 끝나서 친구들은 모두 집으로 돌아갔다고 설명했다. 아들은 얼굴이 일그러지더니 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아들의 울음은 20분 내내 그칠줄을 몰랐다. 너무 가고 싶던 생일파티였는데, 자신은 친구들과 함께 놀고 싶었는데, 왜 자신만 빼고 다른 친구들은 생일파티에 갔느냐고 아들은 절망했다.


난 정말 내가 싫었다. 자괴감이 들었다. 이런 말도 안되는 실수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스스로도 납득이 되지 않았다. 하루 전날 남편과 와인을 마시며 '프로 의식'에 대해 이야기하던 게 떠올랐다. 모든 일이든 프로처럼 하는 게 멋지다는게 우리 대화의 골자였다. 나는 내가 일에서든 엄마로서든 많은 역할에서 제법 프로처럼 행동한다고 생각했는데, 난 아마추어 중에 아마추어였다. 아마추어라는 단어 조차도 내겐 과분하게 여겨졌다. 어떻게 이런 실수를! 스스로가 부끄러워 땅 속으로 꺼져 들어가고 싶었다.


전날에도 나는 건망증 실수를 했었다. 아침에 아들이 학교에 등교하는데 책가방을 챙기지 않고 학교 앞까지 간 것이다. 부랴부랴 차를 돌려 책가방을 가지러 집으로 돌아갔다. 집이 가까웠으니 망정이었지, 집이 멀었다면 그날 아들은 지각을 면하지 못할 뻔 했다. 지각을 하면 학교 오피스로 가서 다른 통로로 교실에 들어가야 하는데, 그건 아들이 가장 싫어하는 일이다. 아침부터 아들의 대성통곡을 들을 뻔 했던 것.


왜 자꾸 이런 어처구니없는 실수들을 저지르는 것일까...


울고있는 아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했다. 엄마도 살면서 이런 실수를 해본 적이 없는데, 대체 왜 이런 실수를 저지른건지 너에게 너무 미안하기만 하다고, 우리 아들에게 엄마가 미안한 마음이 너무 커서 사과하는 지금 이 순간 조차 슬프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근처 한식당에 들어가 얼큰한 순두부를 먹으니 집나간 정신이 돌아왔다. 배가 고팠는지 아들도 울음을 그치고 밥을 평소보다도 많이 먹었다. 아들에게 어떻게 엄마를 용서했느냐고 물었고, 아들은 엄마에게 화 조차 나지 않았다고 답했다. 엄마에게는 화가 나지 않았고, 그저 생일파티에 가지 못한 사실이 슬플 뿐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말해주는 아들에게 너무 고마워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한없이 어리기만 한 줄 알았더니, 어느새 이만큼 커버렸을까. 큰 절망에 빠져 허우적 대는 나를 아들이 물 밖으로 꺼내주는 것만 같았다.


이날 난 7살 아들에게 진심으로 고마웠다.


사과의 의미로 아들에게 용서 카드 1장 (혼날 때 사용 가능), 장난감 선물을 주기로 했다. 그리고 난 그날 단 한번도 아들에게 화를 내지 않았다. 지난 몇달간 그처럼 사이 좋은 날은 없었다.


그리고 나를 책망하지 않고, 그럴 수 있다며 위로의 말을 건네준 남편에게 고마웠다. 자꾸만 자책하는 나에게, 일하랴 육아하랴 너무 바쁘다보니 과부하가 걸려 이런 일도 생긴거라고, 여유를 되찾아야 한다는 신호라고 남편은 말했다.


그날 야구연습장에서 만난 아들 친구 아빠에게 와인과 생일선물을 건네고,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친구가 생일파티에 참석하지 않아 슬펐을 아들친구에게도 생일 축하 인사를 건넸다. 내가 저지른 실수를 어찌저찌 수습하고, 집으로 돌아왔더니 저녁 시간이 됐다.


컵라면과 함께 맥주 한 잔을 마셨다. 그제야 온종일 자책감, 죄책감 등으로 불안했던 마음이 안정감을 되찾았다.


어차피 일어난 일, 별것 아니라고 스스로를 달랬다. 하지만 다음부터는 이런 실수를 다시는 저지르지 않기 위해 미리미리 확인하는 습관을 키우자고, 무엇이든 기록하자고 다짐했다. 물론 난 아들 친구의 생일파티도 스케줄러에 제대로 기입했지만, 알람을 해두지 않아 문제가 됐다.


요즘 하는 일이 많은 건 사실이다. 아니, 조금 더 정확히 말해서 내가 하고 싶은 모든 일을 하며 지내려는 게 문제의 근원이 아닌가 싶다. 풀타임으로 일을 하며, 매일 운동도 해야하고, 육아도 해야 하고, 아이들 학원도 라이드해야 하고, 밤이면 자기계발 시간도 가져야한다. 이 모든 걸 다 하려다 보니, 탈이 난 게 아닐까 싶다. 이날의 실수는 몇 개쯤은 내려두고 살라는 하늘의 계시였을까? 다시는 같은 실수를 저지르고 싶지 않은데,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내려놓을 수 있는 사람인가에 대해서는 아직 자신이 없다. 그저 정신을 바짝 차리고, 긴장하고 살자고 스스로에게 되뇌이는 수밖에는. 글을 쓰는 지금도 살짝 부끄러운 감정이 들지만, 이렇게 백지 위에 털어놓고 나니 속이 시원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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