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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ris Seok May 20. 2022

골프에 빠지니 좋은 점

골린이 라이프


골프는 아직 내겐 어울리는 취미가 아니라고 생각해왔다.



골프는 돈과 시간을 필요로하는 운동이다. 먼저 골프를 시작하기 위해 준비해야 할 기본 준비물(골프채, 골프백, 골프장갑, 골프공)과 골프 레슨에 소요되는 비용은 다른 운동과 비교해 너무 비싸다. 그간 해왔던 수영, 요가, 필라테스, PT 등 다른 운동의 준비 비용과는 차원이 다르다. 골프를 제대로 시작하면 장비를 갖추는 데만 적어도 수백만원이 깨진다. (이후 필드를 나가기 시작하면 들어가야 하는 돈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지만, 나는 골프값이 싸기로 유명한 미국에 거주하므로 그 문제는 패스)


무엇보다 골프에 거부감이 들었던 것은 과도한 '시간'이 들어가기 때문이었다. 머리를 올리기까지 수차례 레슨을 받고 숱한 연습을 거쳐야 하는데, 나는 하루도 빠짐없이 시간과 사투를 벌이는 워킹맘의 신분이다. 일과 육아도 겨우 해나가고 있는 와중에 골프는 사치였다. 짜투리 시간이 생기면 골프보다는 건강에 좋은 다른 운동을 하거나 편안하게 앉아 책을 읽는 게 더 좋았다. 어쩐지 골프는 시간 낭비같았다.



그런데 최근 어쩌다 보니 골프에 빠져버렸다. 자나 깨나 골프를 생각하는 골린이(골프 어린이)가 되어버린 것. 그리고 새로운 사실을 깨달았다. 골프는 내 삶에 무지개 빛깔의 활력을 더해주고 있다는 사실을.





골프 레슨은 5년 전부터 띄엄띄엄 받아왔다. 5년 전 한국에서 대학원생 신분으로 논문을 쓰고 있던 때, 나는 비교적 시간이 많은 사람에 속했다. 대학원 수업은 다 들었고, 논문만 쓰면 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하루에 한시간씩 운동할 시간은 충분히 만들 수 있는 여건이었다. 당시 주변에서 하나 둘씩 골프를 시작하는 추세에 합류해 '나도 한 번' 하는 마음으로 레슨 수업을 결제했다.


하지만 재미가 없었다. 그리고 자꾸 '내가 시간 낭비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지배했다. 다이어트에도 큰 도움이 안되는 이 운동을 내가 뭣하러 하고 있는 거지? 차라리 살이라도 뺄겸, PT레슨을 받는 게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읽어야 할 논문이 산더미인데, 연습장에 나가서 조그마한 공을 치는 과정이 번거롭게만 느껴졌다. 그리하여 당시 난 6번의 레슨을 듣긴 들었지만, 연습을 전혀 하지 않았으므로, 어디가서 골프를 친다고 말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난 2021년 여름, 난 다시 골프 레슨을 받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한국에 방문해 친구들과 함께 라운딩을 나가고 싶다는 동기가 작용했다. 30대가 훌쩍 넘어가자 친한 친구들 대부분이 골프를 즐기고 있었다. 친구들과 놀기 위해서 골프는 더이상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된 것 같았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쳐보자는 마음으로 골프 레슨을 시작했지만,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주기적으로 레슨과 연습을 하기 위해 골프장에 나가는게 부담이 됐다. 결국 이번에도 레슨비를 날리는 꼴이 됐다.



그러다 지난 달부터 본격 골프를 시작했다. 이제부터 골프를 배운다해도 과언이 아닌데, 이제서야 나는 스윙을 하는 방법이라든지, 체중을 오른쪽부터 왼쪽으로 옮기는 법, 몸통이 움직여야 한다는 사실 등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유튜브를 통해 골프 관련 영상을 보는 시간이 길어졌다. 더이상 골프를 하는 시간이 낭비처럼 여겨지지 않았다. 오히려 일상의 스트레스를 날려주는 귀한 시간으로 여겨졌다.





아무래도 이번에는 골프가 과거와 달리 재미있게 다가오는 이유는 골프를 시작한 동기가 다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번에는 '가족과 즐기는 취미생활을 찾는다'는 마음으로 골프를 시작했다. 지난해 회사에서 주최하는 골프 행사를 취재하기 위해 골프장을 간 적이 있는데, 그때 참가자 한 분과 이야기를 나눴다. 그분은 나처럼 자녀가 아들 둘이었다. "와이프 분이 딸이 없어 서운하지 않나요?"라는 나의 물음에 그분은 답했다. "전혀요. 골프가 있으니까요. 아들 둘과 다같이 골프 나가면 정말 재밌어요."


거기서 나는 희망을 발견했다. '난 딸이 없으니 나중에 딸들과 쇼핑을 가고 여행을 다니는 행복은 누리지 못하겠지'란 생각을 했었는데, 그렇다면 아들들과 할 수 있는 다른 취미생활이 있으면 될 터였다. 그걸 이제서야 깨닫다니.


무엇보다도 남편과 취미생활을 하나쯤은 공유하고 싶었다. 앞서 글에서도 밝혔듯 남편과 나는 mbti의 알파벳이 단 하나도 겹치지 않을 만큼 반대의 성향을 가진 사람이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함께 즐길 취미랄 게 없다. 물론 와인을 마시고, TV나 영화를 같이 보지만, 것보다도 한 발 더 앞으로 나아가 건전한 취미를 공유하고 싶었다. 이를테면 건강에도 좋은 운동과 같은. 그래서 바쁜 남편에게 골프를 시작하자고 꼬득였고, 내 머리를 올려달라 요청했다. 이번 여름 한국에 가서 가족과 라운딩 하기 전 미국에서 오빠가 먼저 머리를 올려달라는 부탁이었다.


와이프 머리 올려주겠다는 목적을 가지고, 남편은 10여년 만에 골프채를 다시 잡았다. 캐나다에서 중고등학교를 나온 남편은 학교에서 골프를 배웠다고 하는데, 남편 나이가 30대 중반이니 그게 대체 언제적인가. 실로 오랜만에 연습장에서 남편을 골프채를 휘둘렀고, 본인의 기대치보다 공이 잘 맞지 않자 낙담했다. 그래도 골린이인 내가 보기에 남편의 폼은 썩 훌륭했다. 게다가 공이 일정하게 맞는 것만으로도 부러웠다.



골프를 제대로 시작한 또 다른 이유는 역시나 가족이다. 부모님이 미국에 방문하면 골프를 함께 즐기고 싶었다. 날씨가 좋은 요즘 한국에 계신 엄마와 아빠에게 전화를 걸면 거의 대부분 엄마 아빠는 "골프치는 중"이라고 황급히 전화를 끊는다. 부모님이 하루 걸러 하루는 필드를 나가기 때문에 요즘 부쩍 통화할 시간이 없다. 그래도 부모님이 골프와 함께 충만한 노년을 보내고 계신다고 생각하니 흐뭇하다. 풍경 좋은 곳에서 자연을 누비며, 친구들과 담소를 나누는 일. 부모님에게 골프는 노년의 행복한 인생을 위해 빠질 수 없는 부분인 것이다.



엄마와 아빠가 좋아하는 취미 생활을 함께 즐기고 싶은 마음이 날 골프로 이끌었다.




목적이 뚜렷하다 보니, 아무 생각 없던 과거와 달리 생각을 하고 골프를 치게 됐다. 유튜브 영상을 찾아 스윙 방법을 익히고, 또 익힌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이면 어김없이 연습장을 찾아 전날 본 영상에 기반해 채를 휘두른다.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씩은 코치님께 직접 레슨을 받아 점검을 받는다. 매일의 일상에 골프가 끼어 있다 보니, 나는 점차 골프에 매력에 스며들고야 말았다.



골프에 빠지고 가장 좋은 점은 목표가 생겼다는 것.

그래서 일상의 크고 작은 걱정들이 뒷전으로 밀려났다는 것.



지금의 목표는 간단하다. 기본만 하자. 필드를 나갈 수 있는 수준이 되자. 필드를 나가서 타인에게 민폐끼치지 않는, 적당한 실력을 갖추자는 게 목표다. 그 목표를 위해 매일 연습을 하고 있다 보니, 인생에 다른 부분에 대해 걱정이 줄어들었다. 가령 꿈을 향한 조급함이 사라졌다. 어떻게 하면 골프 실력이 늘까,를 고민하다 보니 일상의 소소한 걱정들이 뒷전으로 밀려 증발해 버리는 묘한 경험을 했다. 그리고 새삼 깨달은 것은 이전의 내가 여러 중압감에 시달려왔다는 뚜렷한 사실이다. 왜 과거의 나는 스스로를 달달 볶지 못해 안달이었던 것일까?


이래서 사람들이 취미생활을 가지라고 했나 보다. 목표에 매몰되지 않고, 일상을 즐기며 살아가기 위해서 취미는 필수인가 보다. 요가와 유산소 운동으로는 쉽사리 찾아오지 않았던 삶의 여유가 골프로 인해 아이러니하게도 찾아왔다.


그래서 나는 아주 천천히, 지렁이만치나 느리게 늘어가는 나의 골프실력이 오히려 고마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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