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Iris Seok May 11. 2022

부부싸움 얼마나 자주?

에너지 낭비가 아까워서요

남편하고 안 싸워요?


얼마 전 점심을 먹다 받은 질문인데, 당시 난 1초의 고민도 없이 "거의 안 싸운다"고 답했다. 올해 들어 싸운 기억이 없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런 대답이 흘러나왔다. 상대방도 나처럼 기혼자였는데, 어떻게 부부싸움을 하지 않을 수 있는지에 대해 물었다. 육아와 일을 하다보면 서로 지치기 마련이고, 몸이 지치면 짜증이 밀려온다. 그러다보면 별 것 아닌 일에 충돌할 일은 하루에도 몇 번씩은 있다.


그날 대화를 통해 '흠, 나는 남편과 싸움을 정말 안 하는군'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날 밤 브런치에 '남편과 싸움을 하지 않는 이유'에 대한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아이들을 재우고 글을 쓰고 있는 와중에 남편이 퇴근을 했다.



 

그리고 그 날 우린 싸웠다.


안 싸우긴 개뿔... 쓰려던 글을 지웠다.




여느 부부들이 그렇듯 사소한 이유로 비롯된 싸움이었다. 최근 남편이 내 전기차를 타고 다니는 바람에 내가 7인승인 남편 차를 모는 일이 잦았고, 그게 난 불만이었다. 7인승 차를 몰고 동네를 운전하는 일까지는 괜찮았다. 그런데 '위드 코로나' 시대가 도래하면서 난 7인승 자가용을 타고 LA 다운타운에 취재가거나 회사에 출근하는 일이 늘어났다. 도시의 주차장은 서울의 주차장 버금가게 좁은 공간을 자랑한다. 7인승 차를 주차하는 일은 오늘날 나의 스트레스 지수를 높였다.


그래서 투정하듯이 퇴근한 남편에게 "오늘도 취재하느라 시청에 오빠 차를 타고갔지 뭐야. 차에 기스나도 난 몰라"하며 입을 빼쭉했다. 내가 회사가 먼 남편이 자율주행이 가능한 전기차를 탈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는 사실을 생색내고 싶어서 한 말이었다. 나의 배려와 희생을 알아달라고, 토닥토닥 해줬으면 하는 마음에서.


그런데 남편은 나의 투정을 가볍게 넘기지 않았다. "그게 무슨 소리야. 이미 기스난 곳이 얼마나 많은데. 앞으로도 운전을 부주의하게 하겠다는 거야?"


실제로 몇 번의 과실 차량사고가 있었다. 한 달 전 운동을 하고 나오는 길에 진입금지봉을 차마 보지 못하고 박았다. 주관적인 눈으로는 차에 잔기스가 미세하게 남았다. (그러나 남편의 눈에는 굉장히 크게 보였던 모양) 남편은 내가 차를 함부로 탄다고 생각했고, 그 와중에 앞으로도 차에 기스를 내겠다니 신경이 잔뜩 예민해졌다. 차를 굉장히 아끼는 남편으로서는 그럴 수 있겠다 싶은 반응이었다.



그래도 서운한 마음이 들었고, "아니, 오빠. 이게 그 정도까지 날카롭게 반응할 일이야?" 하며 대화를 시도했다. 둘 다 침대에 누워 각자의 심정을 이야기했다. 나는 나대로 남편은 남편대로 불편함을 감수하고 있다는 걸 인정했다. 나는 큰 차를 몰고 있다는 불편함, 그리고 남편은 나와 차를 공유해서 써야한다는 불편함을 받아들이고 있는 중이었다.



대화를 하다보니 화는 어느 정도 가라 앉았다. "오빠와 부부싸움 하지 않는다는 글을 쓰려했는데 다 망쳤다"고 했더니, 자고로 그런 글을 써서는 안된다고 남편이 말했다. 그런 남편 칭찬의 글을 쓰다보면 괜히 기대감만 높아져서 자신한테 비난의 화살이 날아올 수 있다고, 자제해달라고도. 남편의 완고한 부탁에 웃음이 났다. 그렇게 그날의 가벼운 다툼은 지나갔다.


싸움을 아예 하지 않는 부부는 아마 없을 것이다. 다만 싸움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싸움을 대하는 태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날 우리의 싸움은 더 커질 수 있었지만, 우리는 감정보다 이성이 앞섰다. 서로 감정을 추스리고 대화를 이어감으로써 웃으며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감정이 다치는 순간이 30분을 채 넘지 않았기 때문에 이날의 싸움은 훗날 기억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때문에 나는 누군가 남편과 언제 싸움을 했느냐 물으면, '언제였더라...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대답할지 모른다.



싸움을 크게 키우지 않는 건 남편과 나 모두 싸움이 에너지 낭비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일과 육아를 하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에너지는 충분히 고갈됐다. 한정적인 에너지를 싸움이라는 부정적인 상황에 투입하고 싶지 않다.



남편과 나는 서로가 잘됐으면 좋겠고, 행복했으면 좋겠다. 하루의 마무리가 평안했으면 좋겠다. 그러므로 싸움은 왠만하면 피하고, 모든 걸 대화로 해결하는 길을 택하고자 한다. 싸움을 피하진 않겠지만, 키우진 않겠다는게 우리 부부의 태도다.

매거진의 이전글 재택근무자의 카페 유목민 생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