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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ris Seok Apr 28. 2022

재택근무자의 카페 유목민 생활

두 아이를 각각 학교와 유치원에 보내놓고 나면 아침 9시. 본격적으로 재택근무를 시작할 시간이 된다. 둘째까지 유치원에 내려준 후, 집이 아닌 카페를 향한다. 자동차를 끌고 향하는 목적지는 익숙한 곳일 때도 있고 낯선 곳일 때도 있다. 오늘은 난생 처음 가보는 카페에 가서 일을 하기로 어제 밤부터 마음을 먹은 상태였다.


차가 막히지 않을 때는 15분에 불과한 거리여서 무리없이 한 카페를 목적지로 정했으나, 오전 9시에도 출근 트래픽은 여전했다. 막히는 고속도로 위에서 꼼짝없이 30분 갇혀있다 보니 오고자 했던 카페에 도착했다. 졸음을 참아가며 30분 동안 운전할 때는 새로운 카페에 가는게 무리수였다고 지난 밤의 결정을 자책했으나, 막상 와보니 산뜻한 기분이 들었다. 처음 와본 카페 벽면에는 그림이 빼곡하게 걸려있었는데, 가까이 가서 들여다 보니 작가들이 직접 그린 그림으로 카페에서 구매까지 가능했다. 그림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아침에 기상하자 마자 오전 업무 일부를 끝내 놓은 덕에 카페에 도착하자 마자 노트북을 켜고 팀 카톡방에 오전 업무를 공유할 수 있었다.


재택근무의 가장 큰 장점은 이런 것이다. 나의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다는 것.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틀에박힌 시간에만 일을 하는게 아니라, 새벽에도 일을 할 수 있고, 때때로 점심시간에 일을 해도 된다. 미리 일한 만큼 하루 중 내가 필요한 시간에는 내 시간을 가질 수 있다. 마감시간만 맞춘다면, 직원이 시간을 자유자재로 쓰는 일이 회사에 미치는 피해는 전혀 없다. 내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다는 점에서 난 마치 시간여행자까지는 아니더라도 시간관리자가 된 기분이 든다.


 자체는 좋아하지만, 매일 출근하는 일은 버거웠다. 내가 누리고자 하는 소소한 일상들, 가령 오늘처럼 카페에 간다든가, 책을 읽는다든가 하는 일들을 언제가 될지 모르는 미래의 시간에   있는 일로 미뤄두는 일이  아쉬웠다. 인생의 시간은 한정적인데, ''만으로 채워지는 일상의 시간은 때로 억울한 감정을 끌어들였다.


일과 일상, 두 가지 모두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걸까?


그런 질문이 내 안에서 꼬리에 꼬리를 물었을 쯔음 코로나19로 인해 재택근무가 시작됐다. 그리고 난 마침내 꿈꾸던 삶의 균형을 되찾았다. 일도 하고 내 일상도 영위할 수 있는 그런 삶.


카페에 와서 일을 할 때면 난 놀고 있는 기분이 든다.


외신 기사들을 읽고, 취재를 하고, 기사를 쓰는 일은 내게 엔돌핀을 주는 일이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 만큼 업무가 주는 스트레스는 거의 없다. 그러니 카페에 앉아 노트북을 두드리는 일이 일종의 '놀이'처럼 여겨진다.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 보다는 나만의 오전시간을 누리고 있다는 감정이 가득 차오른다. 게다가 이곳은 LA가 아닌가. 창밖의 쨍한 태양과 야자수 나무들만 바라봐도 아주 잠시동안 여행자가 된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


점심시간에는 핫요가를 갈 예정이다. 출퇴근 하던 과거에는 상상 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당시에도 핫요가에 갈 수야 있었겠지만, 시뻘개진 얼굴과 땀을 뻘뻘흘린 채 냄새를 풍기며 회사로 돌아가는 건 민폐였다. 그러니 내게 핫요가는 주말 토요일에 단 한 시간만 허용되는 사치였다. 매일 핫요가를 할 수 있다면, 내 삶이 조금 더 행복해질텐데...라는 생각을 2년 전 자주 했었던 것 같다. 엄마, 아빠가 미국집에 방문하셨을 때 퇴근 후 매일 핫요가에 간 적이 있었는데, 어찌나 행복하던지. 일과 육아에 치여 취미생활은 불가능한 시절이었기에 더욱 달콤하게 여겨졌던 시간.



그러나 현재의 나는 일을 하며 취미생활도 즐길  있게 됐다.



물론 매일이 여유롭고, 즐거운 기분으로 채워지는 건 당연히 아니다. 급작스러운 취재에 투입될 때도 있고, 써야할 기사가 많은 날에는 아이들 픽업 시간 맞추며 일을 하느라 조급함으로 마음이 쪼그라든다. 그럴 때면 대체 왜 이렇게 아등바등하고 살고 있는지 물음표도 떠오른다.



그래도 재택근무가 시작된 후 불평불만을 차마 하지 못하겠다. 여기서 더 바라만 벌 받을 것 같은 마음이라고 해야하나. 내가 그토록 바랐던 약간의 자유라도 얻었으니, 현재를 감사히 여겨야겠다고 부정적인 마음을 저멀리 밀어둔다.



내일은 어떤 카페에 가볼까.

이런 고민을 할 수 있는 하루하루가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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