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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ris Seok Mar 29. 2022

결혼은 해피엔딩인가


요새 푹 빠져서 보는 드라마 '2521(스물다섯 스물하나)'


요즘 이 드라마에 울고 웃는 사람이 비단 나뿐은 아닐 것이다. 주변 지인들과 만나면 인사치레처럼 이 드라마 이야기를 주고받곤 하니까.


지난주 백이진(남주혁)이 여주인공 나희도(김태리)에게 결혼 축하 인사를 건네는데, 심장이 쿵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결혼 축하라니? 그렇다면 이 둘은 결혼을 안 한단 말인가?! 남주와 여주의 사랑이 이뤄지지 않는다니, 이건 말도 안돼! (아직도 희망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작가님. 둘의 사랑이 이뤄지리라 믿어요.)


드라마를 보며 남녀 주인공의 결혼을 간절히 바라는 동시에

'으잉, 난 결혼을 해피엔딩이라고 생각하나?'

스스로에게 질문을 건네게 됐다.




남녀 주인공의 결혼 후 모습을 상상해봤다. 아이를 낳고, 밤새 애를 보다 출근하고, 자기 시간은 하나도 없고, 그러다 지치고. 잠옷 차림으로만 서로를 만나고. 그런 우리네의 평범한 삶을 주인공들에게 대입해봤다. 그렇다면 드라마 속 주인공들이 가진 청춘의 반짝임도 사라지겠지? 나와 내 남편이 그랬듯 말이다.



그런데도 난 결혼이 해피엔딩이라 생각한다. 본능적으로.


먼저 함께 늙어갈 수 있다는 사실이 좋다. 배우자의 젊은 시절부터 중년, 그리고 노년까지의 모습을 곁에서 지켜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결혼은 해피엔딩이 아닌가 싶다. 사랑하는 사람이 어떻게 성장해 나아가는지, 어떻게 나이들어가는지 곁에서 지켜보는 일은 얼마나 근사한가.



드라마 속 백이진이 나희도의 성장 스토리에 감명받듯 나도 내 배우자의 성장 스토리를 열렬히 응원해주는 사람이고 싶다. 평생토록.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닮은 아이를 가질 수 있다는 사실 또한 결혼이 가져다주는 달콤한 열매다. 꼰대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 나는 개인적으로 살면서 아이 한 명은 낳아 키워보는 걸 추천하곤 하는데, 그건 인생을 한 번 더 사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아이를 키우며 어린 시절의 나와 마주할 때가 많다. 아, 나는 이 시기에 뭘 했었지. 나도 엄마, 아빠랑 이런 시간을 보내곤 했었는데...하며, 잊었던 과거의 나를 현재로 데려오곤 한다. 좋은 기억도 나쁜 기억도 뒤섞이지만, 대개 좋은 기억일 때가 많다. 아이를 통해 과거의 나를 볼 때면, 아직 내 안에 문신처럼 과거의 자아가 생동감있게 살아있음을 깨닫는다.


그런데 그 감각이 싫지 않다. 싫긴 커녕 아주 좋다고 해야 하나. 자식을 키우며 어린 시절의 나를 만나고, 나를 치유해주는 느낌이 인간으로서 느낄 수 있는 여러가지 감정 중 핵심이 아닌가 싶을 때도 있다.




나와 남편은 이십대에 만났다. 내 나이 스물 넷, 그의 나이 스물 다섯에. 당시 우리는 LA에서 유학 중이던 학생이었다. 졸업 후 한국에 돌아가 '무엇이 되고싶다'는 몽글몽글 빛나는 꿈을 품은 젊은 날의 우리들은 함께 성장했다. 나는 남편을 만난 이후로 타지에서 느낄 수 밖에 없었던 향수를 전혀 느끼지 않게 됐다. 스물 넷, 미국에서의 삶이 아름답기만 했던 것은 그 시절 남자친구였던 남편 덕분이다.


남편을 만났을 때 난 순수 그 자체였다. 연애를 아예 안 해본 건 아니지만 3개월 넘긴 연애가 없었을 만큼 제대로 된 사랑은 못 해본 상태였다. 그런데 어렸을 때부터 로맨스 드라마, 영화는 수없이 보고 자란터라 꿈꾸는 연애는 동화에 가까웠다.


당시 남자친구이던 남편은 말했다. “너는 영화 같은 사랑을 꿈꾸는 것 같아. 그런데 난 그 로망을 최대한 지켜주고 싶어”라고.

 

내 로망을 지켜주고 싶다던 남자. 그는 그 말을 지켰다. 그와 사귀는 내내 동화 속 주인공이 된 것만 같았고, 무슨 이런 남자가 다 있나 싶었다. 전생에 내게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 남자는 내게 이토록 큰 사랑을 주는지 의아한 순간도 있었을 만큼 남편은 꿈에 그리던 남자친구가 되어줬다.


드라마를 보며 새삼 남편과 내가 결혼에 골인했다는 사실이 감사하게 다가왔다. 너무 당연해서 최근에는 잊고 지냈었는데, 나의 첫사랑과 결혼을 하다니. 감사하고 또 감사한 일이다. 100점 남자친구였던 그는 120점의 남편, 아빠로 변신했다. 그가 나에게 온 건 내 인생 최대의 복이다.   


드라마 속 그들처럼 젊었던 우리를 이따금씩 떠올려 보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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