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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ris Seok Sep 14. 2022

친구가 우리집으로 신혼여행을 왔다

친구의 신혼여행 in LA

친구가 우리집으로 신혼여행을 왔다.


친구가 우리집이 있는 LA로 신혼여행을 왔다. 몇개월 전 친구 부부가 LA로 신혼여행을 온다는 소식을 전했을 때 내 기분은 무지막지 기뻤다. 그리고 안도했다. 친구의 결혼식을 가지 못할 것이라는 아쉬움을 함께 즐기는 신혼여행으로 달랠 수 있음에 마음 속 근심이 거둬졌다.



미국에 살면서 아쉬운 점은 정말 많지만, 그중에 큰 아쉬움 중 하나는 친구들의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결혼식을 향하는 길은 마치 근사한 파티를 가는 길 같다. 평소보다 한껏 치장하고, 사랑하는 친구의 행복한 순간을 축복하는 일에 동참하는 일은 평범했던 일상에 영화같은 시간을 만들어준다. 나도 예쁘고, 친구도 예쁜 날. 신부대기실에서 찍는 근사한 사진은 평소에는 쉽사리 찍을 수 없는 귀한 사진이다.


그리고 숱한 대화를 통해 익히 알고 있는 내 친구의 친구들, 지인들을 실제로 만날 수 있는 경험은 특별하다. '앗, 너가 그 애구나!' 하며 서로를 알아보기도 하고, 차마 쑥스러워 말은 못 걸지만 속으로 '아 저 친구가 그 친구군' 하며 남몰래 흐뭇해하곤 한다. 친구의 부모님께 직접 인사를 드리고, 사랑하는 친구의 영원같은 사랑을 진심으로 축하해주는 시간, 결혼식. 그런 결혼식을 미국에 살기 때문에 직접 참석하지 못하고, SNS를 통해서만 지켜볼 수 있다는 건 때때로 매우 슬프다.


때문에 나로서는 꼭 참석해야 할 친구 결혼식 리스트 같은 게 있다. 이 친구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꼭 결혼식에 참석하겠다, 하는 굳은 결심을 하는 베스트 프렌드 명단이다. 물론 친구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모든 친구들의 결혼식에 참석하고 싶은 '프로 참석러' 워너비지만, 미국에서 두 아이를 키우다 보니 스스로의 사리사욕을 다 채우긴 힘든 상황이다. 그러니 줄이고 줄여 꼭 결혼식에 가야할 친구의 명단을 다섯 손가락 안으로 최소화할 수밖에 없다.



이번에 신혼여행을 오는 친구 S는 내가 짜놓은 꼭 가야할 결혼식 명단에 들어가 있는 친구다. S와는 남다른 각별함이 있는데, 그걸 꼭 집어 설명하긴 힘들다. 하지만 글을 쓰며 곱씹어 보니, S와 나는 오랜기간 서로의 꿈을 응원해주는 사이였음을 깨닫는다.


S와 나는 꿈쟁이라는 공톰점을 가지고 있다. 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 알고지낸 우리는 늘 꿈을 꾸며 살아왔다. 고등학생 때는 대학을 가고자 꿈을 꿨고, 대학생이 된 이후에는 무언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꿨다. 지금도 스스로의 성장 욕구로 인해 갈증이 나는 우리는 올해, 내년, 10년 후 등 장단기 목표를 공유하며, 서로를 으쌰으쌰 해준다.


S와의 각별함은 서로가 꾸던 꿈이 실패했을 때 더욱 짙어졌다. 스무살의 S는 노량진에서 반수를 했는데, 그래서인지 아직도 지하철에서 노량진을 지나칠 때면 가슴이 울렁인다고 했다. 그리고 내가 떠오른다고도 덧붙였다. 당시 난 노량진에서 반수를 하던 S를 찾아갔던 유일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S가 학원에서 쓸 머그컵도 선물했다고 하는데, 나에게 기억은 희미하다. 받는 이와 주는 이의 기억은 이처럼 다르다. 그래도 내가 과거 언젠가 S의 꿈을 응원하는 사람이었다고 하니, 몇 번을 들어도 기분 좋은 에피소드다.



그리고 S와 나는 서로의 꿈이 끝내 이뤄졌을 때 누구보다 더 진실된 축하를 전하며 굳건해졌다. 몇 년 전 석사논문과 육아에 허덕이느라 비교적 늦은 나이인 서른에 취업소식을 전하자 S는 "그 회사 어딘지 참 복도 많네"라고 답했다. S의 답장을 받고 두 눈에 눈물이 고였다. 가족 이외에 이만큼 나를 알아봐주고 인정해준 사람은 아마 S가 유일무이하지 않았을까. 그건 S와 내가 누구보다도 꿈에 진심인 사람이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를 알아봐줄 수 있는 것일테다.




그런 S가 우리집으로 신혼여행을 온 것이다. 자그만치 3박 4일을. 언제부턴가 우리는 시간에 쫓기듯 만나서 진득한 대화를 할 기회가 많지 않았다. 내가 1년에 한 번 한국에 방문해 머물 수 있는 시간은 고작 2~3주에 불과했는데, 짧은 휴가 시간 동안 육아도 해야하기 때문에 과거처럼 친구와 오랜 시간을 함께할 여건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S와 나는 진득하게 오래 붙어있던 경험이 최근 10년간 단 한 번도 없다. 오랜만에 만나도 고작 3~4시간이 우리에게 주어진 전부였으니.


목요일 저녁 S가 멕시코 로스카보스 여행을 마치고 LA 국제공항에 오후 4시15분께 도착했다. 당시 난 회사에서 근무 중이었기 때문에 S를 데리러 공항에 갈 수 없었고, S는 남편과 함께 우버를 타고 시내로 넘어왔다. 4박5일간의 멕시코 여행을 마친 S 부부는 한식이 몹시도 그리운 상황이었고, 우린 한인타운에 위치한 '북창동 순두부'에서 만났다.


S 부부를 LA 한인타운의 한식당 야외 주차장에서 만나다니, 뭔가 현실감이 없었다. S의 남편과는 무려 첫 만남이었다. 하지만 그간 SNS를 통해 워낙 자주 접한 분이다 보니 내적 친밀감이 컸다. S를 끌어안고, 순두부 집으로 들어갔다. S 부부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둔 사람처럼 보였다. 그럴만도 한 게 정신없이 결혼식을 치르느라 멕시코 여행을 가면서 컵라면 하나 챙기지 못했다고 한다. 4박5일 동안 외국음식만 먹었으니, 매운 맛이 얼마나 그리웠을지.


S와 밀린 이야기가 너무나 많았다. 밥을 먹으면서도, 그리고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도 우린 쉴새없이 떠들었다. S와 함께 내가 살고있는 동네에 들어오니 기분이 묘했다. "이곳이 너가 사는 곳이구나." S도 신기한 듯 보였다. 커뮤니티 단지 안으로 들어와서 우리 집 앞에 멈췄다. 차고 문을 열고 집 안에 들어섰다. 아들 둘은 S부부를 보고 신이 났는지 괴상한 비명을 지르며 거실을 뛰어다녔다. S 부부를 1층 손님방으로 안내했다.


하루 전날 미리 준비해둔 풍선과 그릇 선물, 편지들이 손님방 화장대 위에 놓여 있었다. S는 내 이름을 부르며 언제 이런 걸 다 준비했냐며, 미소지었다. 풍선과 선물은 S의 브라이덜 샤워도 결혼식에도 참석할 수 없었던 내가 S에게 뒤늦게라도 꼭 전하고 싶은 것들이었다.


S부부와 우리 부부는 나름 쿵짝이 잘 맞았다. 아마 우리 부부가 비슷한 성향을 가졌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개성이 강한 와이프와 그런 와이프를 보좌해주는 남편이라는 공통점. 금요일과 토요일에 일을 하지 않는 나는 남편이 육아를 자처해준 덕에 이틀 내내 S부부의 여행 가이드가 될 수 있었다. S는 LA에 온 게 이번이 세번째여서 LA 명소들을 대부분 방문해봤지만, S의 남편은 이번이 첫번째 미국여행이었다. 어딜가야 이 둘에게 가장 좋은 기억으로 남을 수 있을지를 고심했다.

S부부의 쇼핑을 위한 베버리힐스, 브런치를 먹기 위한 멜로즈, LA의 바다를 만끽할 수 있는 말리부, 샌타모니카, 라라랜드가 떠오르는 그리피스 천문대, 딘타이펑 식당이 위치한 글렌데일 아메리카나 등을 쭉 돌았다.


여행객이 LA에 오면 가장 좋은 점은 나 또한 여행객이 될 수 있다는 사실.

익숙했던 곳들을 여행객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LA가 얼마나 아름답고 평화로운 곳인지를 실로 오랜만에 자각한다.

밤마다 S부부와 우리 부부는 술을 부어라 마셔라했다. 누구보다 애주가인 우리들은 금세 친밀해졌다. 하루는 S의 남편이 한국에서 새벽 시간마다 편의점에서 어렵게 구한 귀하디 귀한 '원소주'를 토닉워터에 타서 마셨고, 또 하루는 냉동실에서 차가워질데로 차가워진 조니워커 블루를 마셨다. 다른 날은 바나나맥주를 비롯한 한국에서는 쉽사리 맛보기 힘든 외국 맥주들을 잔뜩 사와서 맛봤다. 친구 부부와 3박4일을 동거동락하니, 마치 아주 낯선 나라로 여행을 가서 에어비앤비에 묵고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


친구 부부와 함께했던 신혼여행. 우리에게는 평생 잊지 못할, 두고두고 추억할 수 있는 소중한 기억이 생겼다. 우리는 헤어짐을 아쉬워하지 않기로 했다. 분명 우리에게는 다음이 있으니까. S부부는 다음번 LA를 기약하며 떠났다. 잘가, 친구야. 부디 남편과 오래도록 행복하기를 진심으로 바라. 곧 다시 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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