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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ris Seok Apr 20. 2022

'에그헌트'를 아시나요

미국에 살면서 신기한 건 챙길 날이 유난히도 많다는 사실이다. 미국인들은 '특별한 날'을 기념하는 걸 좋아하는 것 같다. 그 사실은 마트에만 가봐도 알 수 있다. 2월 발렌타인, 4월 부활절, 7월 독립기념일, 10월 할로윈, 11월 땡스기빙, 12월 크리스마스 등 몇달을 주기로 큰 기념일들이 등장한다. 기념일 한 달 전부터 마트는 분주하다. 각 기념일의 테마에 맞게 마트는 꾸며진다. 타겟, 월마트, 랄프스 등 마켓은 기념일을 위한 전용 물품들을 판매하는 코너가 따로 마련돼 있다. 가령 발렌타인은 마트가 분홍빛으로 물들고, 할로윈에는 주황빛 호박과 특이한 코스튬이 마트 여기저기서 보인다. 


올해 우리 가족은 처음으로 부활절을 챙겨봤다. 과거 교회를 다니는 친구를 따라 부활절 행사에도 가봤거니와 부활절 시즌에 계란에 그림 그리기 등도 해봤던지라 기독교인에게는 부활절이 1년 중 가장 중요한 날이라는 건 익히 알고 있었다. 다만 무교인 우리 가족에게는 부활절이 기독교인의 축제이지, 우리의 축제는 아니었다. 


그런데 미국에서 아이를 키우다 보니, 올해부터 부활절은 우리 가족의 행사가 된 것 같다. 


바로 '에그헌트'(Egg Hunt) 때문. 


채서영 서강대 영문학과 교수의 한 칼럼(https://www.joongang.co.kr/article/25063919)에 따르면 달걀이 부활절의 상징이 된 이유는 "안에 생명력이 잠재해" 있고, 또한 "달걀껍데기가 빈 무덤을 상징한다"는 해석으로 풀이될 수 있다고 한다. 또한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이 당한 고난을 함께하는 의미로 40일간 절제하고 마지막 일주일은 철저히 한 끼를 굶는 금식을 했는데, 그동안 닭장에 달걀이 쌓이자 마지막 날 삶아서 나누고 함께 깨뜨리면서 부활을 축하했다"는 역사적 배경도 있다고 한다. 


게다가 아이들에게는 계란 모양의 플라스틱 안에 초콜렛을 숨겨둔 후, 부활절 당일에 보물찾기 마냥 찾게 하는 '에그헌트' 풍속이 생겼다. 아이들은 토끼(bunny)가 달걀을 몰래 두고 갔다고 믿는다. 크리스마스 선물을 산타클로스가 두고 갔다고 믿는 아이들은 당연히 버니의 존재 또한 믿는다. (이 순수함을 어찌할꼬) 


친하게 지내는 학부모가 부활절 에그헌트 행사를 함께 하자고 제안해서, 의도치않게 에그헌트를 경험할 수 있었다. 


우리집에서 에그헌트 행사를 하기로 했는데, 남편과 나는 음식을 준비하고, 아이들이 찾을 '에그'들은 친구네가 준비하기로 했다. 친구네가 전달해준 알록달록한 '에그' 꾸러미를 받고 1차적으로는 놀랐다. 이렇게나 많이? 왜 친구네 아이들이 크리스마스 다음으로 가장 좋아하는 날이라고 했는줄 알 수 있었다. 


아이들을 재우고 밤에 남편과 몰래 정원으로 나와 여기 저기 에그들을 숨겨 놓았다. 말이 숨겨 놓는 것이지 아이들이 쉽게 찾을 수 있게끔 잘 보이는 곳에 친히 놓아뒀다고 표현해야 맞는 게 아닌가 싶다. 내일 눈뜨고 아이들이 기뻐할 생각에 남편과 함께 웃음이 났다. 아이들은 버니가 엄마 아빠인줄은 꿈에도 모르겠지. 산타와 버니의 존재를 믿는 아이들의 천진난만함이 너무도 사랑스럽다. 




드디어 '에그헌트' 당일. 아이들은 눈 뜨자마자 정원으로 달려나갔다. 친구네가 오기 전까지 에그들의 존재를 모르게 하기 위해 모든 창문에 커튼을 쳐놓았는데도, 아이들은 기가 막히게 그 날이 '에그헌트'를 하는 날이라는 사실을 떠올리고선 정원으로 냅다 뛰었다. 남편과 당황에서 재빨리 아이들을 쫓아가서 "친구를 기다리지 않으면 버니들이 에그를 다시 가져간다"고 협박 아닌 협박을 했다. 


아이들은 힘들게 인내를 발휘해 친구네가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내가 격주로 일요일날 근무하는 까닭에 '에그헌트' 행사를 애매한 시간인 오후 3시에 하게된 거라, 아이들한테 괜시레 미안해졌다. (미안함은 워킹맘의 숙명인가) 


친구네가 오자마자 아이들은 달리기 시합이라도 하듯이 정원으로 질주한다.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 아이들이 모두 찾아낸 에그들. 


친구네가 아이들의 다툼을 사전에 방지하고자 각 에그들에 컬러 스티커를 붙여놨다. 아이들이 각각 자신이 선택한 색깔의 스티커가 붙은 에그를 찾는 방식이었다. 이 방법은 통했다. 이날 단 한 번의 싸움도 없이 아이들은 서로 도우며 에그를 찾아냈다. 플라스틱 에그 안에는 초콜렛, 캔디, 장난감 등이 숨겨져 있었고, 아이들은 이날 족히 일주일간 나눠먹어도 될 양의 초콜렛과 과자를 섭취했다. ('슈가하이' 덕분에 굉장히 늦게 잠들었다...)



스모어까지 먹은 아이들은 이날 아주 아주 행복했다는 후문. 




여하튼 미국에 살면서 챙길 날이 많다는 게 때때로 번거롭긴 하지만, 지루하지 않아서 좋다. 공동체가 함께 챙길 날이 있다는 건 개개인에게 삶의 활력소로 작용하기도 하는 것 같다. 특히 대개의 기념일들은 가족과 함께 보내는 기념일이어서 자라나는 아이들에게도 큰 추억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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