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병이 없는 삶
언제부턴가 월요일을 기다리는 사람이 되었다. 일요일 밤 잠자리에 들며 내일이 월요일이라는 사실에 작은 설렘이 올라온다. 아이 둘을 각각 학교와 유치원에 보낸 뒤, 단골 카페에 가야겠다. 카페에 가서 서늘한 날씨에 알맞은 따뜻한 카페라테 한 잔을 시켜야지. 그리곤 몇 주 전 책방에서 사온 책을 읽으며 사색에 잠겨야겠다. 그런 생각을 하니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주말 내내 육아와 가사에 시달린 끝에 드디어 월요일이 오는 것이다.
월요병이 사라진 건 재택근무의 시작 이후부터였다. 팬데믹으로 시작된 우리 회사의 재택근무는 현재 하이브리드 근무 방식으로 전환됐다. 난 이제 일주일에 단 한 번만 회사로 출근하는 직장인이 됐다. 회사 옮길 생각이 없느냐는 누군가의 제안에는 고민없이 대답한다. "난 재택근무하는 삶이 너무 좋아"라고. 매일 출퇴근 하던 과거의 삶을 지금의 나는 도저히 살아낼 자신이 없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
나에게 '재택근무'는 장점으로 넘쳐난다. 난 워킹맘이다. 아이 둘을 키우며, 일을 한다는 건 웃을 때 보다 울고싶을 때가 많다는 뜻이다. 첫째 아이가 학교에 들어간 후로부터는 엄마의 손길이 필요한 부분이 너무 많아졌다. 가령 학교 봉사활동이며, 학교에 챙겨가야 하는 준비물, 각종 행사 관련 구디백 등 아이에게 할애해야 하는 시간은 영유아기 때와 비교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하교 후 학원, 과외 등을 챙겨야 하는 것도 오롯이 엄마의 몫이다. 아이에게는 엄마가 필요하고(남편은 워커홀릭이라 평일에는 얼굴 보기 조차 힘들다), 재택근무하는 덕분에 난 일을 하면서도 아이 옆에 붙어있을 수 있는 엄마가 될 수 있었다.
육아 이야기를 제외하고서도 재택근무의 장점에 대해 자랑하고 싶은 부분이 많다. 나는 내 삶을 돌볼 수 있게 됐다. 나는 일을 하는 행위 자체를 사랑하는 사람이지만, 과거 매일 출퇴근 하던 시절에는 늘 마음 한구석에 결핍이 있었다. 주중에는 일하고, 주말에는 육아하고, 그런 삶을 살다보면 내 시간은 일주일에 단 한 시간도 확보하기 힘들었다. 아무리 일이 좋고 아이를 사랑한다지만, 한 명의 인간으로서 자신의 고유한 시간을 가질 수 없다는 건 삶의 행복도를 떨어뜨렸다. 당시의 난 늘 의문을 품었다. 이렇게 사는 게 맞나? 단 한 번 뿐인 삶인데, 나를 위해 잘 살고 있는 게 맞는 걸까?
말하자면 워라밸이 전혀 갖춰지지 않은 삶에서 난 답답함을 느꼈다. 일도, 육아도 거뜬히 해내는 동시에 내 삶의 웰빙도 잃고 싶지 않았다. 꾸역꾸역 일과 육아를 병행하며 버티던 와중에 직장인 3년차에 접어들 무렵 갑작스럽게 전세계에 닥친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재택근무가 내 삶에 스며들었다. 하지만 초창기 재택근무 당시에는 코로나 바이러스 공포가 너무 커 모든 곳이 셧다운 되는 바람에 재택근무의 장점을 제대로 느낄 수 없었다. 아이들이 유치원에 가지 않았으므로. 팬데믹이 완화돼 대부분의 삶이 정상 궤도로 돌아온 지금에야 난 재택근무의 장점을 온전히 느끼고 있다.
요즘 난 오전 업무를 마치면 요가를 향한다. 핫요가를 하면서 땀을 쫙 빼고 나면 내 안에 쌓여있던 불순물, 부정적인 감정들까지 빠져나간 것처럼 여겨진다. 요가 후 나는 하얀 도화지 상태가 되고, 그 위에 어떤 색의 그림이라도 그려넣을 준비가 된다. 그 때의 나는 그 어느 시간보다도 여유롭고, 풍요롭고, 너그럽다.
책을 읽고, 운동을 하고, 일과는 관계없는 글을 쓰며 나는 '살아있다'는 감각을 만끽한다. 이 모든 게 재택근무 덕에 얻게 된 소소한 행복감이다. 언제까지가 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재택근무가 없는 삶을 살고 싶지 않다. 나는 나의 안녕을 위해 당분간은 재택근무만을 고집할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