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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ris Seok Oct 30. 2022

엄마의 환갑

영화 같은 배 위에서의 저녁

환갑은 만 60세의 생일을 축하하는 한국의 전통 문화다. 과거에는 평균 수명이 짧았기 때문에 환갑은 장수로 여겨져 큰 축하를 받는 날이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평균수명이 길어져 '인생은 60부터'라는 말도 있을 만큼 환갑은 인생의 새로운 시작쯤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올해 엄마의 환갑을 맞이하는 우리 가족의 마음은 사뭇 남달랐다. 올해는 엄마가 만 60세가 되는 해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유방암 5년 완치 결과를 받는 해이기도 했다.


지난 2017년 6월 엄마는 유방암 판정을 받았다. 조직검사 결과를 들으러 엄마와 함께 병원에 갔다. "유방암입니다" 라는 의사선생님의 단호한 목소리가 메아리쳐 울렸고, 나는 이내 아득해졌다. 이게 꿈이 아니고, 현실이 맞나. 당황스러웠다. 드라마 속에서나 나올 법한 대사였는데, 현실세계에서 의사선생님께 저 대사를 직접 듣게될 줄이야.


엄마와 멍한 얼굴로 병원을 나와 집까지 걸어갔다. 그리고 집에 도착해 각자 방에서 조금 울었던 것 같다. 수술하면 되지, 완치될 건데 뭐, 생존율 높아, 라며 서로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지만, 그래도 '암'이라는 단어가 가져다주는 공포는 컸다. '암'은 '죽음'을 가장 실제적으로 느끼게 했다. 죽음이라는 단어가 우리 가족 가까이 와있다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엄마의 이야기


엄마가 유방암 0기 판정을 받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억울하다'였다.


한 평생 크게 남에게 피해주지 않고, 착하게 살아온 것 같은데. 오히려 늘 손해를 보면 봤지, 이기적인 행동은 하지 않았는데, 왜 하늘은 이런 내게 기어코 '암'이라는 큰 병을 주신걸까. 억울하고, 또 억울했다.


유방암 판정 이후 밤마다 잠에 들 수 없었던 엄마는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봤다. 어린 시절부터 55세가 된 지금까지 많은 일들이 있었다. 현실에 쫓겨 꿈을 포기해야 했던 젊은 시절도,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며 다사다난했던 30대와 40대도 시간 순서와 상관없이 뒤죽박죽 떠올랐다. 힘든 시기도 있었지만, 되돌아보니 행복하고 감사한 삶이었다. 하늘이 내게 과분할 만큼 많은 걸 주셨다는 깨달음과 함께 뜨거운 눈물이 한 줄기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건강한 몸으로 더 살고 싶어요. 아이들이 자녀를 낳고 키우는 모습, 성장해나가는 모습 곁에서 지켜 보고 싶어요. 남편과 함께 나이들어가고 싶어요. 노년의 삶을 누리고 싶어요. 라고 엄마는 신에게 기도했다.


불행 중 다행이었던 사실은 유방암 0기였기 때문에 수술 후 생존율이 높았고, 별도의 항암치료는 필요하지 않았다. 건강염려증이 있던 엄마와 아빠는 그 누구보다도 주기적으로 건강검진을 받는 사람이었고, 덕분에 조기에 엄마의 유방암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해 엄마는 7월 중순에 수술을 받았고, 환갑을 한달 앞두고 수술 후 5년 암 완치 판정을 받았다. 인생은 환갑부터라더니, 엄마는 그 말이 참된 진실임을 몸소 확인했다. 엄마는 이제부터는 정말 본인만을 위한 삶을 살겠노라 다짐했다. 부모, 자식, 배우자 보다도 나를 삶의 중심에 두고 살아야겠다고 엄마는 재차 생각했다.




엄마의 환갑 당일. 남편과 나는 한 달전부터 예약해둔 장소로 부모님을 모시고 갔다. 환갑 저녁은 배 위에서의 식사였다. 몇달 전 남편과 우연히 집 근처 호수를 방문했다가 호수 위 배에서 식사하는 사람들을 발견했다. 개인용 보트를 가진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특혜인가 궁금해서 지나가는 서버에게 물어봤더니 미리 예약만 하면 보트 렌탈비를 내고 식당에서 직접 주문한 식사를 배달해주는 서비스가 가능하다고 했다.


엄마와 아빠는 보트에 올라타며, 전혀 뜻밖의 상황을 맞이했을 때의 표정을 지었다. 예약을 직접 주관한 나와 남편 또한 놀랐다. 기대 이상으로 근사했기 때문인데, 메인 음식이 나오기 전 에피타이저를 먹으며 보트 투어도 해주신다고 했다.


'웨스트레이크 빌리지(Westlake Village)'는 벤투라카운티와 엘에이 카운티에 걸쳐져 잇는 도시로 동양 사람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다. 이날도 동양인은 우리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이곳에 올 때면 아주 낯선 곳으로 여행을 온 것 같은 착각이 일곤 했다. 언젠가 엄마와 아빠를 모시고 와야지 했는데, 엄마의 환갑날 함께 올 수 있어 기뻤다.

그날 우리 보트를 담당한 서버가 보트 운전까지 도맡았다. 보트 안에서 휴대폰을 블루투스로 연결해 노래도 틀 수 있다고 해서 남편이 올드팝송을 BGM으로 깔았다. 보트에 올드팝이 잔잔하게 울렸고, 보트는 호수를 물살을 가르고 둥둥 정처없이 떠다녔다. 호수는 바다처럼 넓었다. 호수를 둘러싼 특색있는 집들을 구경하며, 저곳에 거주하는 이름 모를 사람들의 모습을 상상했다. 이런 곳에서 산다면, 평화롭기만 할 것 같다는 상상을 했다. 모든 사람에게 저마다의 지옥이 있다는 사실을 알지만서도, 그래도 이런 아름다운 곳에서 살면 도시에 사는 사람들보다는 행복할 것만 같았다.


엄마는 풍경과 음악에 취한 듯 보였다. 휴대폰으로 영상을 찍으며 우리 모두는 그 순간을 영원이라는 틀 안에 박제하려는 시도를 했다. 내 휴대폰을 바라보며 엄마가 말했다.


"딸, 사위. 너무 고마워. 제일 행복한 환갑이었어.

환갑 한 번만 더 있어도 우리 딸이랑 사위 큰일날 뻔 했네."


지난 한 달 동안 엄마의 환갑여행을 모토로 우리 가족들이 함께 보낸 시간들이 스쳤다. 견우와 직녀처럼 일년에 한 번 만나는 우리 가족에게 2022년의 여름은 잊을 수 없는 추억들을 선사해줬다. 4년 뒤 아빠의 칠순을 고대하며, 엄마의 환갑여행은 그렇게 저물었다.

 


'인생은 60부터'. 그 문구를 고스란히 증명하는 삶을 살아줘 엄마. 오래오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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