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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ris Seok Nov 15. 2022

조건을 보면 결혼이 힘들다


내가 지금까지 결혼하지 않은 싱글 여성이었다면, 
난 어떤 배우자감을 원했을까? 


'환승연애' '나는 솔로' '핑크 라이' '결혼에 진심' '돌싱글즈' '체인지 데이트' 등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인기를 끄는 요즘, 이런 류의 짝 매칭 프로그램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볼 게 많아 삶이 즐겁다. 런닝머신을 하면서 한 시간 안팎 분량의 예능 프로그램 한 편을 보면 딱 좋다. 


그런데 연애 리얼리티 예능을 보다보면 저마다 보는 '조건'이 구체적고, 명확하다. 어떤 조건을 갖추지 않은 사람과는 결혼을 고려할 수 없다는 그들의 단호한 태도를 보면서 뜨악해질 때가 많다. 가령 '결혼에 진심' 프로그램에서 한 남성 출연자는 배우자감이 아이를 4명 낳는 데 동의하기를 원했다. 그는 첫째는 아들, 둘째와 셋째는 남녀 쌍둥이, 넷째는 딸을 낳고 싶다고 말했다. 게다가 부인이 아이 넷을 양육하는 동시에 자신의 커리어도 놓치지 않는 커리어우먼이면 좋겠다고도 덧붙였다.


네? 아이 4명이요? 게다가 성별을 이미 생각해 두셨다구요? 워킹맘이 옵션이 아니라구요? 


티비를 보며 혼잣말이 절로 튀어 나왔다. 패널들은 아직 결혼을 해보지 않았거나, 아이가 없었기 때문에 그 대목에서 적절한 리액션을 보여주지 못했다. 저 남성출연자의 바람이 얼마나 터무니없고, 허무맹랑한지 패널 중 한 명이라도 꼬집어줬으면 속이 시원했을텐데. 


그래, 아직 미혼이니까 그런 생각을 가지는 건 개인의 자유다. 그런데 그런 조건을 내세우다 보면 진짜 사랑하는 배우자를 만나기 어려울텐데, 하는 괜한 걱정이 들었다. 



이런 가정을 해본다. 지금의 나의 삶을 과거에 알았더라면, 난 어떤 생각을 했을까. 


결혼 전 지금의 남편이 나에게 "결혼 후에는 미국에 가서 살거야. 미국에서 일을 하면서 애 두 명은 낳아 키워야돼. 부모님과 한국의 친구들은 1년에 한 번 정도 만날 수 있어"라는 조건을 내건다면, 난 결혼을 했을까? 


아니. 당연히 결혼하지 않았다. 장담하건대 그렇다. 


난 한국이 아닌 미국에 살 마음이 추호도 없는 사람에다가 친정도 시댁도 없는 타지에서 일하며 애를 키우는 삶을 살고 싶지 않다. 게다가 부모님과 친구들을 1년에 한 번씩 이벤트성으로 만나며 살아야 하다니, 대체 그렇게 살아야 할 이유가 뭐란 말인가? 그런게 결혼이라면, 결혼을 차라리 포기하는 게 낫겠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위와 같은 삶을 살고있다. 결혼 전에는 결코 택하지 않았을 삶을 살고 있다는 뜻이다. 사람은 막상 어떤 일이 닥치면, 적응하는 동물이란 걸 잊어선 안된다. 이 세상에 '절대'라는 건 없으니까. 변화 속에서 사람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새로운 삶의 방식을 받아들일 수 있는지 천천히 깨닫게 된다. 


결혼은 어른이 되는 과정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포기와 희생, 그리고 옵션 B와 C를 수용하는 것이다.


과거에는 결코 원하지 않던 삶을 사는 나에게 누군가 결혼을 후회하느냐 묻는다면, 그건 아니다. 변수로 가득한 게 삶이라는 걸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 변수 속에서 유연하게 헤엄치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가 아닐까 생각한다. 뜻하지 않은 삶 속에서 인생의 의미를 찾아내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내가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의미를 찾기 위해 노력하는 이유는 남편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매일 밤 잠들기 전이면 옆자리에 누워있는 남편의 온기를 느끼며, 신에게 기도하곤 한다. 이 사람이 오래오래 내 곁에 있게 해달라고. 그것만 약속해주시면 나머지의 일들은 그저 감내하겠다고. 그러니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 삶에서도 웃을 수 있는 것이다. 사랑하는 남편이 곁에 있으니. 



결혼을 하지 않은 친구에게 이야기 해주고싶다. 조건만 보다가 진짜 중요한 걸 놓칠 수도 있다고. 진짜 사랑하는 배우자를 만나라고. 자신의 영혼이 숨쉴 수 있게끔 해주는 배우자라면, 나머지 부수적인 일들은 인간의 힘으로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다고. 


내가 너무 낙관적인 걸까? 난 사랑에 있어서는 여전히 동화를 꿈꾸는 이상주의자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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