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맘 아들의 대답
첫째 아들은 엄마와 아빠의 연애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스치듯 해줬던 연애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다가 시시때때로 예고도 없이 묻곤 한다. '왜 엄마, 아빠는 서로가 좋았는지' 아이는 몹시나 궁금해 한다. 이미 이전에 그 답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주말에도 아이는 물었다. "아빠! 엄마의 어떤 점이 좋았어?"
남편은 평이한 대답을 늘어놓았다.
"엄마는 예쁘고, 착하고, 똑똑하잖아."
남편도 아이에게 물었다. "너는 엄마의 어떤 점이 좋은데?"
아이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음...'하며 천장을 바라봤다. 엄마의 좋은 점이 바로 떠오르지 않다니! 평소 집에서 아이들을 혼내는 역할을 자처해온 터라 그럴 수도 있겠거니 하며 서운하려던 마음을 슬쩍 접어 넣었다.
저녁 식사 시간이었기에 딱이 아이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자연스럽게 식사에 집중했다. 아이에게 질문을 했다는 것 조차 잊었을 만큼 제법 시간이 흐른 뒤, 아이가 불쑥 대답했다.
"엄마는 어린 나이에 책을 썼잖아. 난 엄마가 일찍부터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찾은 사람이라서 좋아."
머리가 띵 해지는 대답이었다. 나도 남편도 어안이 벙벙했다. 6살 아이로부터 이런 깊이 있는 대답이 나올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아빠가 그랬듯 "울 엄마는 착하고 이쁘다" 정도의 아이다운 대답을 예상했건만, 아이는 우리의 예상 보다 훨씬 깊고 고차원적인 대답을 머릿속으로 떠올렸다.
아이의 대답에 살짝 울컥함이 차올랐다.
어쩌면 그건 내가 가장 기다려온 대답인지도 몰랐다.
갑작스럽게 잡힌 취재 때문에 아이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거나, 집을 오랜 시간 비울 때면 아이는 "왜 누구누구 엄마처럼 집에만 있지 않고, 엄마는 일을 하는 사람이냐"고 따져묻곤 했다. 나도 엄마가 집에만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고, 일을 하지 않고 나와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아이는 솔직한 희망사항을 말했다.
그럴 때면 나도 지지않고 대답했다.
"엄마는 일이 너무 소중한 사람이야. 사람이 살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일하며 보내는데, 스스로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게 얼마나 중요해. 엄마는 너도 사랑하지만 내 일도 사랑해. 너도 성인이 되기 전에 되도록 많은 경험을 해서 너가 한 평생 하고 싶은 일을 꼭 찾자. 그걸 찾아주는 게 엄마와 아빠의 미션이야."
"엄마는 하고 싶은 일을 언제 찾았는데?"
"엄마는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일찍 찾은 편이야. 엄마는 미국 나이로 13살 때 인터넷에서 소설을 써서 책을 출판했었어. 한 번 볼래?"
아이는 생기발랄한 표정을 지으며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서재에 꽂혀있던 내 인생의 첫번째 책을 꺼냈다. 사실 어린 아들이니까 보여주는 거지, 타인을 보여주기엔 낯부끄러움이 드는 책이기도 하다. 양귀비라는 닉네임으로 썼던 책 '싸가지와 계약결혼'. 중학생이었던 당시의 내가 사랑에 대해 뭘 알았다고 사랑 이야기를 썼단 말인가. 몰랐기 때문에 쓸 수 있었던 글이기도 했다. 20대 이후 나는 꾸준히 사랑을 주제로 한 소설을 쓰고 싶었지만, 현실성이 결여된 글을 쓰는 게 어려워 매번 다음번 기회로 미뤄왔다. 어린 날의 내가 가지고 있던 끝없는 상상력과 그걸 부끄러워 하지 않고 타인에게 내보일 수 있었던 당당함이 그립다.
아이는 엄마의 책을 보고 신난 얼굴이 됐다.
"나도 엄마처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빨리 찾을래! 되도록 빨리!"
"빨리 찾는 건 중요하지 않아. 찾을 수만 있다면, 언제라도 좋아."
그날 이후 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아이는 여전히 마음 속에 엄마가 쓴 책을 잊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엄마가 좋은 점이 뭐냐는 질문에 마음 속 서랍을 열어 진심을 담은 대답을 꺼냈다.
일을 통해 세상에 어떤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며, 긴 인생을 의미있게 살아가는가는 오래도록 내가 가지고 있는 고민이다. 아마 한평생 이 고민을 하며 살아갈 것임을 나는 알고 있다. 내가 살아갈 인생의 방향성에 대한 확신을 아이의 대답으로부터 얻었다. 다가올 미래를 의심하지 않고, 주어진 현재를 묵묵히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오늘도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