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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ris Seok Jan 23. 2023

중고 옷을 팔아 돈을 벌었다


지난 연말 옷장이 무너지는 경험을 했다. (참조:https://brunch.co.kr/@ummi/173) 맥시멀리스트의 최후였다. 옷 정리를 더이상 지체할 수 없는 상황이 왔다. 넘치는 옷장을 구하기 위해서는 일단 입지 않는 옷을 버려야했다.


옷정리 1차전.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 라고 외치는 정리의 신 곤도 마리에의 조언에 힘입어 더이상 날 설레게 하지 않는 옷들을 추려냈다. 나는 내가 평소 버리는 행위를 잘 한다고 자부해왔는데, 옷에 있어서는 과감한 편은 아니었다.


'이 옷은 한 번 밖에 못 입었는데, 다음 번에 날 좋을 때 입을 수 있지 않을까?'


'어머. 이런 옷이 있었어? 다음에 입어야겠다.'


'이 옷에는 추억이 담겨 있어 버릴 수 없겠어.'


갖가지 이유들이 날 주저하게 했다. 이러다가는 옷장 정리에 진도가 전혀 나가지 않을 듯 했다. 옷장이 전쟁통 마냥 정신이 없는 가운데 옷과 관련한 추억팔이는 그만둬야 했다.


그러다 불현듯 과거 유학생활을 청산할 때 옷을 중고로 판매했던 게 기억이 떠올랐다. 약 10년 전 나는 유학생활 물품들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시애틀의 빈티지샵을 찾았다. 당시 난 중고옷을 판매해서 150달러 가량을 벌어 상당히 뿌듯해했었다.


이번에도 옷을 팔아야겠다. 버리지 말고. 그렇게 생각하니 옷 정리에 속도가 붙었다. 버릴 옷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팔 수 있는 옷이라고 생각하니, 옷을 정리하는데 행동이 보다 과감해졌다. (한국이었더라면 당근 마켓에 옷을 팔면 됐을까? 미국에 사는 나는 당근마켓을 한 번도 이용해 본 적이 없다.)



대충 옷정리를 마치고(옷정리 2차전은 필수다) 구글에 'resale clothes near me'를 검색했다. 차로 20분 거리 떨어진 곳에 중고옷을 구입하는 빈티지샵이 2~3개쯤 있었다. 휴대폰 메모장에 빈티지샵 리스트를 적어두고, 드디어 어제 빈티지샵을 찾았다.


빈티지샵들은 대개 오전 11시에 문을 열었다. 11시5분에 빈티지샵에 들어갔더니, 내가 1등 손님이 아니었다. 나보다 먼저 이곳을 찾은 손님은 2명 있었다. 그들도 나처럼 옷이 산더미만큼이나 많았다. 10분 정도 대기하다가 내 차례가 와서 직원에게 다가갔다. 직원은 내가 가져온 옷들을 전부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그는 내 옷을 일일이 확인하며, 구입의사가 있을 시에는 태그를 달았다.

20달러, 19달러, 30달러 등등 옷들에는 저마다의 가격이 매겨졌다. 그가 구입의사를 밝힌 옷은 총 7벌로 옷의 가치는 다 합해 140달러. 그는 스토어 크레딧으로 받을 시 옷 가격의 50%, 현금으로 받을 시 옷 가격의 25%를 나에게 지불하겠다고 설명했다. 그가 구매하겠다고 고른 옷들은 모두 클래식한 제품들로 아무리 브랜드가 있는 제품이라 하더라도 여성스러운 블라우스, 자켓 등은 제외됐다. 나는 현금 35달러를 쥐고 해당 빈티지샵을 나왔다. 내게는 여전히 처리하지 못한 옷이 큰 쇼핑백 안에 들어있었다.


이대로 집을 가야 하나, 하다가 뭔가 아쉬워서 인근의 또다른 빈티지샵을 향했다. 불과 3분 거리에 위치한 곳이었다. 그런데 그곳에서는 첫번째 샵에서는 거절 당했던 나의 옷들이 바지 두 벌을 빼고 전부 매입이 됐다. 역시 물건의 가치는 고정값이 아니다. 언제나 상대적인 것. 두번째 샵에서는 총 14벌의 옷을 넘기고 55달러를 받았다.


이날 난 중고 옷을 팔아 90달러를 벌었다.


원래 내가 다 돈주고 구입한 옷들이니 '돈을 벌었다'는 표현에 부적합할 수 있지만, 그래도 그냥 쓰레기통에 버리는 것보다는 훨씬 보람찼다. 정든 옷들에게 새 생명을 불어넣어준 기분이랄까. 이날 판매되지 않은 두 벌의 바지는 인근 '굿윌 스토어'에 기부했다.

 

조만간 옷정리 2차전을 마치고 또다시 옷을 팔러 갈 계획이다. 옷장은 가벼워지고, 내 지갑은 두둑해질 수 있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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