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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ris Seok Feb 05. 2023

여행에 있어서 만큼은 J


나는 MBTI 검사를 할 때 마다 늘 엔프피(ENFP)가 나온다. 누군가는 시기에 따라 MBTI 검사 결과가 달라지기도 한다던데, 나는 몇년째 한결같은 엔프피다.


그런데 난 여행에 있어서 만큼은

무계획(P) 보다는 계획(J)형에 가까운 사람이 된다. 


이번주도 올해 여행 계획을 세우며, '아, 나는 J형 인간인가?'라고 자문했다.


새해 첫 달인 1월 내내 나는 올해 여행 계획을 세우는데 집중했다. 두 아이를 키우고 있다보니, 아이들이 학교에 가지 않는 날에 여행 일정을 맞춰야 한다. 게다가 난 직장인이니 내게 주어진 휴가일을 분산해 가장 효율적인 여행 계획을 세워야지만이 더 많은 여행을 갈 수 있다.


지난달 열심히 짠 올해의 여행계획은 다음과 같다. 아이들의 일주일간 봄방학이 있는 4월, 두달 간의 긴 여름방학이 있는 7월, 그리고 겨울방학이 있는 12월에 여행을 갈 예정이다.


세 건의 여행 모두 아이들의 봄, 여름, 겨울 방학 시즌에 맞춘 일정인데, 그 말인 즉슨 극 성수기라는 뜻이다. 학부모들의 마음이 다 똑같지 않겠는가. 많은 부모들은 자녀가 학교를 결석하지 않는 선에서 여행을 계획하기 때문에 방학 시즌은 여행이 가장 활발한 시기다. 고로 미리 여행지를 선정하고, 호텔과 항공편 예약을 해두는 게 안전하다. 방학 시즌이 임박했을 때 예약을 시도하면 이미 호텔과 항공편이 풀북킹 됐을 가능성이 높고, 혹여 자리가 있다 해도 비쌀 수 밖에 없다. 그러니 서두르는 자만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


 

여행 일정을 짜면서 가장 즐거운 부분은 호텔을 예약할 때다. 먼저 익스피디아(expedia)에 접속해 현지 호텔을 검색해 본 후, 평점이 적어도 10점 만점에 8.8점은 넘는 곳으로 둘러본다. 이왕이면 9점이 넘는 호텔을 선호한다. 이후 네이버 블로그에 호텔 이름을 검색해 보면, 앞서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의 후기가 주르륵 뜬다. 수십개에 달하는 후기를 읽으며, 나는 여행을 가기도 전에 여행지에 대해 많은 부분을 줄줄 꿸 수 있는 수준이 된다.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을 즐기는 이유는 바로 이거다. 후기들을 통해 난 여행지를 이미 다녀온 사람 마냥 큰 대리만족을 느낀다. 그 순간만큼은 현실을 벗어나 여행지 위에 두 발을 딛고 서서 여유를 한껏 누린다. 그 감각이 참 좋아서, 나는 수시로 여행지 후기를 찾아본다.


 

올해 연말까지 여행 계획을 쭉 세우고, 호텔 예약까지 마친 나는 'J가 아닐까'라고 남편에게 물었다. 남편은 'J 유형의 사람은 이미 여행지 하루 일정까지 촘촘하게 계획해 뒀을 거라고, 호텔 예약만 해둔 건 그저 가장 좋은 가격에 최상의 선택지를 고르고 싶은 너의 욕망 때문이 아니겠느냐'는 현실적인 답변을 내놓았다. 분하지만 부정할 수는 없었다.
 


 

여하튼 난 내 안에 존재하는 일말의 J스러움에 뿌듯함을 느끼고 있는 중이다. 앞으로도 여행에 있어서만큼은 이 정도의 J스러움은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 한 번 뿐인 생에서 세상 곳곳 아름다운 곳들을 여행하고 싶기에. 나의 경험소비를 위해서는 기꺼이 계획형 인간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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