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와 둘째 아들을 각각 학교와 유치원에 보내고 나면 오전 8시30분. 그때부터 난 철저하게 혼자의 몸이 된다. 자유로운 몸이 되고 나면 유치원에서 차로 3분 정도 떨어진 카페를 향한다. LA 외곽에 위치한 이 동네에서 커피 맛집은 굉장히 찾아보기 힘든데, 전혀 카페가 위치하지 않을 법한 동네 피자집 옆에 커피와 빵 맛이 좋은 카페 하나가 우뚝 솟아 있다. 동네에서는 나름 핫플레이스로 아침이면 좁은 카페 문 너머까지 줄이 늘어져 있을 때가 종종 있다. 그럴 때면 나도 줄의 맨 끝 자리에 합류해 ‘역시 이곳 커피 맛은 끝내주지’ 하며 흐뭇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매일같이 카페로 출퇴근 하다 보니 점원은 나를 보고 알은 채를 한다. 이를테면 ‘오늘도 핫라떼?’ ‘오늘은 스콘 안 먹니?’라며 나의 기호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듯 넌지시 물어봐 준다. 나는 거의 변함없이 매일 따스한 라떼 한 잔과 블루베리 스콘을 주문한다. 팁까지 더해 10달러. 아침마다 내게 선물하는 10달러의 호사. 이곳의 블루베리 스콘은 맛이 정말 끝내주는데, 원래 난 스콘을 안 먹는 사람이었다. 이곳의 블루베리 스콘이 기가 막히게 맛있는 바람에 어쩌다 스콘을 먹는 사람이 되어버렸을 뿐. 여전히 다른 곳에서는 스콘을 즐겨 먹지 못한다.
좁은 카페에서 가장 일하기 좋은 장소는 주방 카운터 자리. 빵을 굽고 커피를 만드는 주방 옆으로 아일랜드 테이블이 길게 뻗어 있다. 테이블 밑 벽면에는 가방을 걸어 둘 홀더도 있어 책가방을 걸어 두기에 편리하다. 손님이 많을 때는 그 자리를 차지하지 못할 때가 많지만 그래도 웬만하면 내 자리를 사수하는 편이다. 그리고 늘 내 옆에는 또다른 단골 손님이 앉아 있다.
“안녕, 오늘 기분 어때.”
“좋아.”
“주말은 어떻게 보냈어?”
“난 하이킹을 다녀왔는데, 넌?”
그런 시시콜콜한 스몰 토크가 그와 나 사이에서 공처럼 주거니 받거니 이어진다. 나처럼 매일 이 카페를 찾는 그는 히스패닉 남성으로 인근에서 변호사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그의 이름은 발음하기가 어려워서 난 여전히 그의 이름을 부르기 보다는 ‘헤이’(hey)라며 반가운 인사를 건네곤 한다. 그 또한 내 이름을 부른 적이 없는데, 사실 우리 사이에는 서로의 이름은 크게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그와 나는 아이를 키우고 있는 학부모이며, 매일 오전에는 같은 카페를 방문해 일을 한다는 동질성이 있다. 카페를 갈 때마다 그와 이야기를 나누며, 내게 가깝지도 그렇다고 멀지도 않은 동네 친구 한 명이 생겼다는 안도감이 밀려온다. 이 안도감은 내가 어느 커뮤니티에 속해 있다는 사실에서 비롯된 것이다. 미국에서 몇 년 꼴로 이사를 다니던 이방인인 나에게도 정말 ‘동네’란 게 생겼구나 싶어서.
나에게 동네라는 장소는 오랜 시간 부재했다. 집에서 차를 타고 1시간이나 떨어진 곳에서 고등학교를 다녔고, 스무 살부터는 미국에서 유학을 하며 이 도시 저 도시를 옮겨 다녔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에 돌아와서 산 햇수 또한 고작 3년 안팎. 그러니까 10대 중반부터 지금까지 난 2-3년에 한 번 꼴로 살던 지역을 옮겨 다녔다. 정을 붙일 만 하면 다른 곳으로 이동하고, 또다시 새로운 동네를 내 동네로 여길 만 할 때가 되면 다른 곳으로 이주했다.
팬데믹이 한창이던 지난 2020년에 이사 오게 된 이 곳은 LA 다운타운에서 차를 타고 40분 정도 떨어져 있는 ‘포터랜치’라는 지역으로 2000년 초반부터 개발되기 시작한 신도시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한국의 광교와 닮아있다는 생각을 했다. 이 지역은 여러 개의 ‘게이티드 커뮤니티’(gated community)로 구성돼 있다. ‘게이티드 커뮤니티’란 하우스가 하나의 단지 안에 속해 있고, 비거주자가 단지 안으로 들어오려면 경비원이 지키고 있는 게이트를 통과해야 한다는 걸 의미한다.
일반 하우스들이 별도의 게이트 없이 한채씩 개별적으로 위치하고 있는 점과 달리 게이티드 커뮤니티는 단지를 형성하고 있다. 그래서 어쩌면 한국의 아파트와도 비슷한 구석이 있다. 단지 안에서 아이들이 나와 킥보드, 자전거를 타고 놀고, 단지 내 이웃들은 인사를 하고 가깝게 지낸다. 이곳에 이사 오고 나서야 나는 미국에서도 ‘나의 동네’라는 걸 처음으로 가지게 됐다. 단지 앞에 학교가 있어서 마치 한국의 '초품아'(초등학교를 품은 아파트)에서 살고 있는 기분이 든다.
오늘도 난 동네 카페에 들려 얼굴만 알고, 나에 대해 내밀하게는 모르는 동네 사람들과 눈인사를 주고 받으며 일을 시작한다. 이 정도의 거리감, 딱 좋다.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나인투 식스를 기어코 사수해야 하는 사무실 대신 단골카페를 향하는 재택근무 라이프가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