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Iris Seok Sep 20. 2023

문득 남편이 파리에 가자고 말했다


어느날 문득 남편이 파리에 가자고 말했다. 


"뭐, 파리?"

"그래. '나중에'라고 미루기만 하지 말고 기회가 있을 때 가자."

"언제?"

"아이들 봄 방학 때."


아이들의 봄 방학은 내년 3월. 지금으로부터 무려 반년 후의 일이다. 학부모에게 아이들의 방학 기간은 이른바 극성수기이기 때문에 우리 부부는 학부모가 된 이후로 몇개월 전부터 비교적 이른 여행 계획을 세우곤 했다. 여행 계획이라 말하면 조금 거창해보이지만, 사실 여행을 갈 장소와 머물 호텔을 예약해 놓는 게 전부다. 만일 거리가 먼 곳이라면 비행기표 예매까지 완료해 놓기. 비행기 티켓과 호텔 예약을 완료하면 여행 준비의 8할은 끝난 셈이다.


프랑스 파리라... 그곳은 지금의 내가 지구에서 가장 가고 싶은 여행지일 것이다. 내 인생 첫 유럽 여행지는 이탈리아였다. 당시 나와 남편은 스물 넷, 스물 여섯살이었고, 두 사람 모두 유럽 여행은 처음이었다. 대학원생이던 나의 겨울방학에 맞춰 그해 12월 우리는 이탈리아로 9박10일 여행을 떠났다. 그 때도 여러 유럽 국가 중 가장 방문하고 싶은 곳은 당연히 파리였으나, 계절이 겨울이었기에 우리는 겨울에도 날씨가 비교적 따뜻한 이탈리아에 가기로 결정했다.


우리는 짧은 일정으로 유럽 여러 국가들을 투어하는 것보다 이탈리아 한 국가에서만 10일을 머물렀는데, 지역 마다 분위기가 천차만별이라 마치 다른 국가들에 방문한 것처럼 여겨졌다. 로마, 피렌체, 베니스, 나폴리를 차례로 방문하며 세상에 어쩜 이런 곳이 있을까 감탄을 거듭했다. 확실히 내가 살던 한국, 미국과는 다른 곳이었다. 역사가 그대로 묻어난 오래된 건물들, 교과서에서 보던 역사 유적지와 박물관, 자유로우면서도 낭만적인 분위기, 어딜가든 사진을 찍기만 하면 멋진 결과물이 나왔다.


첫번째 유럽여행에서 나는 완전히 유럽에 매료됐다. 앞으로 도장깨기처럼 갈 수 있는 유럽 국가들이 많다는 사실이 몹시 설렜다.


그러나 두 명의 아이가 우리 부부를 찾아왔고, 두 아이를 데리고 유럽여행을 가는 건 언감생심 꿈꾸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렇게 유럽은 내게 너무나 가고 싶지만, 갈 수 없는 여행지가 됐다. 나중에 아이들이 중고등학생이 되거나 대학생이 되면 그때 유럽을 가리라 마음 속에 유럽여행에 대한 열망을 품고만 있었다.


그런데 남편이 문득 파리에 가자는 것이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내 마음은 이미 파리에 가있다. 두 아이를 데리고 파리 여행이 과연 괜찮을까, 걱정이 되는 게 사실이지만, 그래도 기회가 될 때 도전해 보려 한다. 남편은 프랑스 파리를 향하는 비행기 티켓을 구매하고 평생의 숙제를 끝낸 기분이 든다고 말했다. 오래도록 파리 노래를 부르는 내게 남편은 꼭 파리 여행을 선물로 주고싶었던 모양이다.


그리하여 내년 3월, 우리 가족은 파리에 간다. 아직 믿기지는 않는다. 다만 주기적으로 인터넷 검색창을 열어 파리 여행을 검색해보는게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으로 자리잡았다. 여행은 가기 전의 설렘이 막상 갔을 때 보다 더 크지 않나, 싶기도 하다. 내년 3월까지 난 파리를 향한 사랑에 푹 빠져 지낼 예정이다.

작가의 이전글 노는 일의 함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