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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ris Seok Oct 31. 2023

남편의 철인3종경기 도전기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는 사람들

<나 혼자 산다>에서 기안84가 생애 최초 풀마라톤을 완주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TV 너머 마라톤 출전자들이 달리는 모습을 바라보며 마음이 뜨거워지고, 두 눈은 붉어졌다. 두 달간 연습해 풀마라톤에 도전한 기안84, 두 눈이 안 보이는 시각장애인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러너와 줄을 매달아 마라톤에 출전한 남성, 200회 풀마라톤을 완주한 할아버지 등 영상 속에는 멋진 사람들이 너무도 많았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고 끝내 목표한 바를 성취한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다시금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중꺾마)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마라톤은 우리네의 인생과 닮아있다.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을 때 멀리 있는 종점을 바라보지 않고, 당장 그 순간 달리는 것에만 집중하면 마라톤을 끝마칠 수 있다. 기안 84는 끝이 보이지 않는 풀마라톤 순간에서 오로지 지금 당장 달리는 것에만 집중했다. 우리의 인생도 목표에만 매몰돼 멀리만 바라보지 않고, 지금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일에만 몰입하면 언젠가 나도 모르는 사이 종착지에 도착한다.


그리고 인생은 결국 혼자서 살아갈 수는 없다. 본인이 아무리 잘났다 해도 그저 유한한 인생을 사는 인간일 뿐이다. 기안84가 완주할 수 있게끔 옆에서 도와준 봉사자들, 일반 시민들이 있었기 때문에 기안84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달릴 수 있었다. 우리의 인생도 곁에서 지지해주는 가족, 친구, 이웃들이 있기에 좌절하는 순간에도 훌훌털고 일어나 살아갈 수 있다.



남편도 최근 자신의 한계와의 싸움을 했다. 철인3종경기에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3개월 동안 혼자 새벽 시간에 일어나 수영, 자전거, 달리기를 연습하던 남편은 철인3종경기 비기너 코스에 참가했다.



바다에서 수영을 하고, 이후 자전거, 달리기로 이어지는 철인3종경기 코스는 생각보다도 더 고난스러운 과정이었다. 특히 바다 파도가 너무 세서 헤엄치고, 헤엄쳐도 다시 뒤로 밀려나는 남편을 멀리서 바라보며 과연 물 밖으로 안전하게 나올 수 있을까 걱정이 됐다. 예상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물 밖으로 나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며, 나와 두 아들은 두 손을 모아 간절하게 기도했다.


'제발 우리 아빠 살아서만 나오게 해주세요...'


출렁이는 파도 너머로 남편의 모습이 보이자, 우리는 소리쳤다. "저기 있다! 저기!! 아빠다!!"


혼자만의 싸움을 마쳤을 그는 희미하게 웃으며 바다 밖으로 나왔다. 지친 그의 몰골만 보더라도 바닷물 안에서 그가 얼마나 고군분투 했을지 대충 예상이 갔다.  남편은 다음 코스인 자전거를 타기 위해 유유히 빠져나갔다. 평소 자전거와 달리기는 꾸준히 연습해 온 덕분에, 남편은 수영에서 뒤쳐졌던 속도를 자전거와 달리기로 만회했다. 아들 둘은 아빠가 보이면 “아빠 화이팅!”이라고 외치며, 손을 흔들었는데 그 응원이 생각보다 큰 힘이 됐다고 했다.

남편이 들고온 값지고 값진 메달. 오랜만에 엄청난 성취감을 느낀 남편은 다음번에는 마라톤에 도전하겠다고 했다. 나도 남편을 따라 5K 마라톤에 도전해 볼 생각이다. 특히 이번 기안84의 마라톤 여정이 엄청난 동기부여가 됐다.


멕시코의 오지에 터를 잡고 사는 원시부족인 타라우마라(Tarahumara)족은 달리는 사람들로 잘 알려져 있다. AP통신 종군기자로 전 세계 오지를 누볐던 저자 크리스토퍼 맥두걸은 저서 ‘본투런’(Born to Run)에서 타라우마라족의 삶을 그려내며 인간은 달리기 위해 태어났다는 주장을 펼친다.


북아메리카 오지 코퍼 캐년에 살고 있는 타라우마라족은 운송, 사냥 등을 위해 험준한 고원을 뛰어다니며 달리기 기술을 자연스럽게 터득했다. 그들은 스스로를 ‘라라무리’(달리는 사람들)라고 칭하며 아이를 키울 때도 걷기 보다 달리기부터 가르친다. 타라우마라족에게 달리기는 고통이 아닌 즐거움 그 자체이며, 삶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작가로서 꾸준하고 치열하게 글을 쓰기 위해 매일 달리는 사람으로 정평이 나있다. 그는 묘비명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면 다음과 같이 써넣고 싶다고 고백했다.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그리고 러너).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 그에게 하루 최소 한 시간 이상 달리며 자신만의 침묵 시간을 확보하는 건 정신건강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 작업이었다. 달리기로 단련된 건강한 육체가 존재할 때 한정된 양의 재능과 시간을 필요한 곳에 집약해서 쏟아부을 수 있게 된다고 하루키는 말했다.




달리기는 뛰는 행위를 제외하고서도 삶의 모든 부분에 큰 영향을 미친다. 잘 달리기 위해서는 꾸준히 연습을 해야 하고, 다음 번 달리기를 위해 식습관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달리는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이야기한다. 달리는 과정은 고통을 향해 나아가는 동시에 끝내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성취감을 얻는 일이라고. 그들은 달리면서 일종의 수련 과정을 거치고, 내면의 밑바닥에 깔린 본연의 나를 생생히 마주한다. 심장이 터질 듯 뛰면서 발생하는 물리적인 고통을 극복하면 새로운 에너지가 몸 안에 돌고, 삶은 단순명료해지며, 부정적인 감정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다.



체코의 마라톤 영웅 에밀 자토펙은 말했다.
‘새는 날고 물고기는 헤엄치고 인간은 달린다’고.


창밖을 바라보니, 오늘 날씨가 맑다. 정처없이 자유롭게 질주하고 싶은 날이다. 인간이 달리기 위해 태어났다면, 달리지 않고는 이 삶을 배길 수 없다. 나 또한 달리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 괜시레 LA에서 열리는 마라톤 대회를 검색해 보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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