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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ris Seok Sep 05. 2023

노는 일의 함정


2020년부터 매주 꾸준히 한 편 이상씩 브런치에 글을 써오고 있다. 팬데믹 동안 시작된 직업 이외의 글쓰기는 내게 일종의 습관과 같은 것이었다. 그냥 살아있으니까 매순간 무언가를 생각하고, 그 생각을 활자로 옮겨 온라인을 통해 누군가와 공유하는건 당연한 일상 중 하나였다고 해야할까.


그런데 이번 여름 동안은 이 공간에 도무지 글을 쓸 수가 없었다. 음, 정확히 말하면 글을 쓸 시간이 없었다.


여름 내내 한국과 미국에서 가족들과 시간을 보냈고, 오랜만에 만난 친정 식구들 품에서 난 한없이 게을러졌다. 노트북을 꺼내 생산적인 일을 하고 싶지 않았고, 가족들과 함께 있는 순간을 만끽하느라 바빴다.


그러니까 난 가족들과 함께 있으면 글을 쓸 수 없는 사람이 되어 버린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노는 순간들' 속에서는 놀기 바빠서 글을 쓸 여력이 없다. 일상의 순간 순간에 좋은 글감이 떠오르긴 하지만 금세 휘발돼 공기 중으로 사라지고야 만다. 이번 여름 내내 난 끊임없이 놀 궁리를 하며, 다음엔 뭐하고 놀까에 대해 떠올렸다.


그도 그럴 것이 최근 5년 동안 3개월 내내 가족들과 붙어있던 적은 올해가 처음이다. 팬데믹 동안에는 꽤나 오래 떨어져 있었고, 팬데믹 이전과 이후에도 나와 남편은 직장인인 탓에 회사에 매여있으므로, 한국에 있는 가족들과 오랜 시간을 함께하기는 어려웠다. 그러니까 올해 여름은 나에게 선물같은 시간이었다. 그동안 가족들과 떨어져 타지생활을 한 것에 대한 보상의 시간이기도 했고.



노는 건 정말이지 좋았다. 내 나라 한국은 재미난 곳이다. 일단 아이를 양육하는 내 입장에서는 더욱 그렇다. 날마다 동네 키즈카페만 찾아다녀도 시간이 잘도 갔다. 아이들을 키즈카페에 넣어놓고, 인근에서 쇼핑을 하거나 커피를 마시는 틈새 시간은 달았다. '아, 이게 한국이지. 정말 좋구나' 하는 감탄을 수시로 했다. 아마도 한국이 내게는 일상이 녹아 있는 현실 거주지가 아니라 여행지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으리라.


한국에서의 시간도 좋았지만, 부모님이 미국에 오신 후의 시간도 더할 나위 없이 근사했다. 부모님이 집에 있자 재택근무를 하는 내 상황이 더욱 유리하게 작용했다. 부모님이 상주하는 집은 늘 온기로 가득했고, 난 안정적인 상태로 일과 육아를 해나갈 수 있었다. 일과 육아에 치여 너무 힘들다는 투정을 부릴 대상이 있다는 건 심리적으로 든든한 방어막이었다. 누군가와 별도로 약속을 잡지 않아도, 가족들 6명이 복작복작함께 하는 내 집에만 있어도 신이 났다.


길고도 길었던 2023 여름 휴가는 이제 곧 끝이 난다. 부모님은 이틀 뒤면 한국으로 돌아가시고, 난 다시 남편과 두 아이 이렇게 네식구가 한 팀인 채로 미국에서 살아간다. 여느 때와 다름 없이. 한 동안은 집 안이 휑할 것만 같아 벌써부터 조금은 두렵다. 아이들도 나도 이제 다시 홀로서기를 해야할 때다. 



노는 일의 함정은 내가 해야할 일을 최대치로 끌어낼 수 없다는 것. 
최소한의 할 일만 하며 스스로 세워둔 계획과는 멀어져버린다.


그래도 이제부터는 다시 본래의 규칙적인 생활로 돌아가 열심히 책을 읽고 글을 쓸 생각이다. 실컷 충전했으니 가열차게 내 안의 모터를 돌려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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