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도록 일하는 엄마이고 싶다

by Iris Seok


이따금씩 하는 일에 번아웃이 오거나 매너리즘에 빠질 때면 마음 속에 품어 둔 사직서를 조용히 꺼내 본다. 사직서를 제출하고, 당장 내일부터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주어진다면 어떨까? 아이들이 학교 간 시간에 온전히 나만을 위해 시간을 쓴다면? 아마도 카페에 가고 책을 읽고 글을 쓰겠지. 핫요가를 갔다가, 집으로 돌아와 맛난 점심을 챙겨 먹고 식후 커피도 다시 한 잔. 어라. 그렇다면 요즘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삶이다. 지금도 재택근무를 하며 비슷한 형태로 살고 있으니까. 그래서 그런지 일을 그만둔다는 상상을 해봐도 흥이 나지는 않는다. 내가 원하는 것은 완전한 자유가 아닌 속박 속의 은근한 자유라는 걸 슬그머니 인정하게 된다.



난 비교적 늦은 나이에 취업을 했다. 한국 나이로 30세, 만으로 28세에 입사를 했으니 분명 평균보다는 늦게 첫 직장을 가진 셈이다. 대학원 졸업, 첫 아이 출산, 해외이사 등에 밀려 의도하지 않게 30세가 돼서야 직장인의 세계에 들어올 수 있었는데, 오랜 시간이 걸려 힘들게 쟁취한 첫 직장인만큼 직장인으로서의 정체성은 소중했다. 첫 출근을 하기 전날밤, 침대에 누워 잠들지 못하던 내가 떠오른다. 글을 써서 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고 감사해서 도저히 잠을 들 수 없었다.



글을 쓰는 일은 사실 살면서 늘 해오던 일이었다. 중학교 때 ‘양귀비’라는 닉네임으로 인터넷 소설을 쓰기 시작한 이후로 삶에서 글쓰기가 부재한 적은 없었다. 대학교, 대학원에서도 늘 에세이, 논문 쓰기를 해왔으니 취업 전까지도 난 언제나 쓰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글을 쓰는 일은 열정페이를 강요당하는 일이기도 했다. 영화제 또는 대기업의 기자단, 스토리텔러 등의 인턴은 무급인 경우가 많았고, 대학원에서 논문을 쓰는 일은 학위를 따기 위한 과정이지, 돈벌이 수단으로써 기능은 하지 못했다. 그래서 정식 기자가 되어 글을 쓰며 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이 처음에는 생경하게만 다가왔다.



그러나 아무리 좋아하는 일이라 해도 복사, 붙여넣기 하듯 수없이 반복하다 보면 매너리즘은 찾아온다. 나의 경우 한 직장에서 5년 이상 있다 보니 좀이 쑤셨다. ‘대퇴사시대’(The Great Resignation), ‘조용한휴직’ 등의 신조어가 나올 만큼 퇴직과 이직이 쉬운 이 변화의 시대에 한 직장에서 오래 머물러 있다 보면 스스로가 도태되고 있다는 불안감은 시시때때로 엄습한다. 대학교로 치면 4학년까지 마치고 졸업을 하면 넥스트 챕터를 열 수 있다. 그런데 대학을 졸업하고도 남았을 긴 시간을 한 직장에서만 보내고 나니, 이직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그림자처럼 나를 따라다녔다. 지금 다니는 회사에 대한 불만 보다도 성장에 대한 갈증 때문이었다. 조금 더 생동감 있는 삶을 살고 싶다. 나를 더 성장시키고 싶다. 그런 욕구들이 내 안에 있었다.



이 상황에서 내가 1인분의 삶을 사는 사람이라면 정답은 쉽다. 당연히 이직을 준비하면 된다. 내 가슴이 뛰는 곳을 향해 나아가면 된다. 하지만 엄마의 삶을 사는 나로서는 고민의 늪에서 빠져나오기가 어렵다. 일을 하면서 엄마의 삶을 해내기 위해서는 재택근무 방식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걸 알았고, 그 점에서 지금 직장은 내게 최상의 복지를 주고 있다. 아이에게 집에 있는 엄마가 될 수 있는 동시에 일하는 나로도 살 수 있는 지금의 상황에 변화를 주고 싶지 않은 마음이 이직에 대한 갈망을 다시금 서랍 안에 넣어 놓게 했다.



일과 육아. 두 마리의 토끼를 잡기란 어렵다는 걸 잘 알지만, 그래도 내 커리어를 키워 나가는 동시에 아들 두 명도 이 사회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멋진 성인으로 성장시키고 싶다. 두 마리의 토끼를 잡기 위해 살아가는 과정은 한 평생에 걸친 도전이 될 것이다. 그래도 양쪽 모두 결코 포기하지는 않으려 한다. 그러기 위해서 지금 내게 필요한 건 나무가 아닌 숲을 볼 수 있는 마음. 원하는 방향을 향해 걸어 가고만 있다면, 조금 느려도 괜찮다는 여유를 장착할 수 있는 느긋한 태도. 아무래도 일과 육아 두 가지 모두를 오래도록 붙잡기 위해서는 마음수련이 먼저 수행돼야 하는 게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