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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ris Seok Sep 14. 2023

여행 중 또 다른 여행을 계획하는 일


여름철 더위가 한풀 꺾였다. 여름의 끝 무렵, 이상하게도 한 해가 끝난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어쩜 내게는 '여름'이 한 해의 중심이자, 처음과 끝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해 초부터(또는 그전 겨울부터) 여름휴가를 계획하고, 여행지를 검색하며 시간을 보내는 나는 마치 여름만을 위해 사는 사람같다.


원래부터도 여름을 유난히 좋아했던 나였지만, 엄마가 된 후 아이들의 여름방학이 있는 여름은 더욱 귀중한 계절로 다가왔다. 미국의 여름 방학은 두 달이나 된다. 즉, 60일 동안의 자유가 아이들에게도 내게도 주어진다는 의미다. 타지에 사는 우리 가족은 대개 여름방학에 맞춰 한국에 방문하곤 한다. 그리고 친정 부모님은 우리가 미국에 돌아올 때 함께 미국에 오시곤 한다. 여름휴가라는 달콤한 핑계를 대며. 


사실 부모님에게 딸이 사는 미국집 방문이 '여름 휴가지'만으로 치부되기엔 뭔가 어색한 일이다. 부모님은 미국에 머무는 동안 대부분 우리집 안에서만 생활하기 때문에 집콕 생활이 과연 '여행'으로 불릴 수 있는가 의문이 든다. 부모님은 재택근무를 하는 내 곁에 머물며, 집안일, 요리 등 살림을 도와주는 일을 미국에서의 주업으로 삼는다. 


그렇지만 주말이면 우리 가족은 다함께 여행을 떠난다. 지난해에도 그랬고, 올해도 그랬다. 2년 전 여름에도 그랬고, 3년 전 여름도 그랬다. 그러니까 따지고 보면 매년 여름마다 우리 가족은 미국 우리집을 베이스기지로 두고 이곳 저곳을 여행다니고 있다. 


올해 여름에는 '캐나다 로키산맥'과 '파소로블스 와이너리' 여행을 떠났다. 


'캐나다 로키산맥'의 경우 내게는 단 한 번도 매력적인 여행지로 다가온 적이 없던 곳인데, 캐나다에서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을 보낸 남편이 아이들을 데리고 꼭 한 번 다시 로키산맥을 방문하고 싶다고 했다. 더 세분화 해서 이야기하면 남편은 '콜롬비아 아이스필드' 빙하 지역에서 설상차를 아이들과 함께 타고 싶다고 했다. 


검색해보니 캐나다 로키산맥의 초입으로 여겨지는 도시 '밴프'(Banff)는 겨울에는 매우 춥기 때문에 여름철이 가장 방문하기 좋은 시기였다. 부모님에게 색다른 경험도 시켜드릴겸, 그렇게 우리 가족은 반년 전부터 밴프 여행을 가기로 결심하고, 비행기 티켓팅과 호텔 예약을 끝마쳤다. 


■ 밴프, 유럽같은 분위기 속 대자연

첫날 밴프에 도착하고 입이 떡 벌어졌다. LA에서 캐나다 캘거리 공항까지는 비행기로 약 3시간. 캘거리 공항에서 렌트한 차량을 빌려 밴프까지는 1시간 30분. 공항 수속 시간까지 합치면 집에서 밴프에 도착하기까지 반나절 넘게 소요됐다. 그런데 밴프 다운타운에 도착하자, 반나절 동안의 수고가 아무렇지도 않게 여겨졌다. 이토록 아름다운 도시라니. 마치 동화 속 마을에 들어온 듯한 느낌. 이곳에 오길 너무 잘했다! 


밴프 다운타운이 내 마음에 꼭 들었던 가장 큰 이유는 '유럽같은' 분위기 때문이다. 아이를 낳고 유럽여행은 늘 언감생심이었던 탓에, '언젠가 유럽에 가자'는 마음을 품고 살아온지만 8년째. 밴프에서 느끼는 유럽 감성은 그간의 결핍을 채워줬다. 게다가 밴프 여행은 내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과 함께 한 곳이었다. 친정 부모님과 남편, 두 아이들. 그들과 함께 아름다운 도시를 걸어다니고, 아이스크림을 사먹고, 사진을 찍는 행동 하나 하나가 행복감을 가져다줬다. 특별한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다운타운 안을 산책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밴프 곳곳의 청정한 자연 광경도 여행의 재미를 더했다. 다운타운이 프랑스, 이탈리아의 도시 모습과 닮았다면, 밴프 인근 국립공원의 자연은 스위스와 닮아 있었다. 


8월 한 여름인데도 불구하고 눈이 있는 곳, 콜롬비아 아이스필드. 사진 속 빨간색 차량은 남편이 아이들과 함께 타고 싶어했던 설상차다. 어린 시절 남편의 눈에는 설상차의 바퀴가 거인처럼 거대했다고 하는데, 어느덧 훌쩍 자라 성인이 된 남편은 '그 시절 느꼈던 것만큼 차가 크지는 않네'라며 세월의 흐름을 실감했다. 


로드트립이라 운전자인 남편이 꽤나 고생을 했던 여행이지만서도, 차를 타고 가다 예쁜 곳이 보이면 멈춰서서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점이 로드트립의 큰 매력이었다. 

에메렐드 색깔의 호수들. 빙하가 녹은 물이 호수가 되었다고 하는데, 어쩜 이런 색깔을 띨 수 있을까? 


모레인 호수, 루이스 호수, 바우 호수, 페이토 호수 등 호수 구경이 주된 여행 일정이었는데, 호수 마다 특색이 있기 때문에 다 가볼만 하다. 그 중에서도 가장 좋았던 호수는 뭐니뭐니 해도 모레인 호수! 호수 색깔이 다른 곳과 비교도 안 될 만큼 아름답거니와, 호수를 둘러싼 등산로가 환상적이다. 이곳은 꼭 가봐야 하는데, 자차를 타고 갈 수 없고 버스를 이용해야 한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퍼블릭 버스는 예매가 어려워서 우리 가족의 경우 사설 버스를 별도로 예약해서 갈 수 있었다.


■파소로블스, 나파밸리 부럽지 않은 와이너리


밴프 여행을 다녀온 그 다음 주말의 여행지는 파소로블스. LA에서 차로 3시간 거리에 떨어져 있는 이곳은 비교적 만만한 여행지다. LA에서 나파밸리까지는 차로 약 6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LA 주민들에게는 파소로블스 와이너리가 나파밸리 와이너리 대체제가 되곤 한다. 요즘 들어 마켓에서도 파소로블스 와인이 꽤나 눈에 띄는데, 개인적으로 파소로블스 와이너리 몇 곳의 와인 맛은 나파밸리 안 부러울 만큼 맛있다고 생각한다. 


파소로블스에서 가장 애정하는 와이너리는 단연 'Austin Hope.' 지난번 여행에 워크인으로 들렸다 와인맛에 반해 멤버십까지 들고 온 와이너리다. 요즘 파소로블스 지역에서 워낙 인기가 많은 와이너리이므로 이번 여행에선 풀북킹이라 가지 못했다. 그저 와이너리에 잠시 들려 와인만 구입해서 나왔다. 사진에서 보이는 곳은 Epoch Estate 와이너리인데, 서비스가 훌륭했으나 와인은 내 입맛에는 '보통'이었다. 

'여행은 살아보는 거야'라는 슬로건에 알맞게 에어비앤비 숙소를 잡고 머물면, 마치 그곳 주민이 된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대가족이 이동하는 여행에서는 호텔 보다는 에어비앤비가 필수인 듯 하다. 2박3일동안 원없이 와인 마시고, 놀다 온 이번 여행. 아침에는 산책도 하고, 가족 모두들 좋은 시간을 보내고 왔다. 


이번 여행을 함께 떠난 우리 가족은 총 7명. 과거에는 7인승 차량을 몰았기 때문에 차량 한대로 이동이 가능했지만, 차를 바꾼지라 이번에는 차량 두 대로 이동해야 했다. 고맙게도 남편이 두 아들을 대동해 여행을 떠나줬기에, 나는 엄마, 아빠와 오붓한 로드트립을 할 수 있었다.


여행길 차 안에서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중 주된 내용은 '다음에는 어디로 떠날까'였다. 


내년 여름에는 여기에 갈까, 저기에 갈까, 즐거운 상상을 하며 우리는 여행길 위에서 다음 여행을 기약했다. 가족들과 함께한 2023년 여름 여행. 이 기억들로 다시 일상을 살아갈 힘을 얻었다. 내년에는 어디로 떠나볼까. 상상만으로도 벌써부터 들뜬다. 아무리 생각해도 '여행'은 가도 가도 또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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