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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ris Seok Jun 17. 2024

남편과의 러브스토리

여전히 사랑 타령이냐 물으신다면



어려서부터 나에게 사랑은, 

영화나 소설이었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픽션 그 자체였다. 


반짝반짝 빛나고, 영롱하며, 그 무엇으로도 대체될 수 없는
절대적인 행복의 무한루프.


주말명화를 즐겨보는 엄마 옆에 따라앉아 영화를 보던 어린 시절 모습이 서른 중반이 된 지금까지도 어렴풋이 기억난다. 영화 속 주인공들은 언제나 절절한 사랑을 하고, 여러 장애물들을 겨우 뛰어넘고, 해피엔딩을 맞이한다. 디즈니의 모든 애니메이션처럼 사랑은 무조건 행복하게 마무리되어야 한다. 새드엔딩은 질색이다. 사랑은 언제나 사랑으로 끝나야 하는거니까. 그렇게 믿었다.


할리우드 영화에서 배운 주입식 교육의 영향 때문인지 내겐 사랑은 그런 것이었다. 영원한 것. 


사랑에 늘 관심이 많았지만, 그만큼 사랑에 대한 기준치가 높았기 때문에 쉽기 사랑에 빠지진 못했다. 내게 사랑은 영원히 변해서는 안되는 다이아몬드 같은 것이므로, 아무나 사랑할 수는 없었다.


꿈꾸던 영원한 사랑을 현실에서 실현하기 위해 무언가 특별한 사람을 오래도록 찾아 헤맸다. 현실세계에서 사랑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내 시선은 픽션을 향했다. 청소년기에는 10대들의 사랑이야기를 다룬 인터넷 소설에 푹 빠져 살았다. 귀여니의 소설을 보며 울고 불고 밤잠 이루지 못했던 숱한 날들을 지나 나는 ‘양귀비’가 되었다.


양귀비라는 닉네임으로 인터넷에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영화에서 본 소재들을 짬뽕한 삼류소설이었으나, 당시의 나는 진지했다. 어린 소녀는 새벽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고, 사랑에 대한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고등학생의 주인공들은 죽마고우인 부모님들의 약속에 의해 계약결혼을 하게 된다는 그런 진부한 이야기로 이뤄진 소설이었다. 인터넷 소설의 붐 덕분에 소설은 세상에 책으로 출간될 수 있었다. 그렇게 소녀는 글로 무언가를 창작하는 기쁨을 알게 됐다. 현실에서 일어났으면 하는 사랑이야기들을 상상하며 매일 밤 소녀는 글을 썼다.





남편을 만난 건 스물 두살 때였다. 우리는 LA의 어느 한식당에서 만났다.


당시(그리고 지금까지도) 친하게 지내던 오빠가 저녁을 먹자며 전화가 왔다. 자신은 학교 친구들도 데려가겠노라고, 예쁘게 하고 오라는 말을 덧붙였다. ‘예쁘게…?’라는 오빠의 당부에 이상함을 느꼈지만, 새학기 학교생활에 정신없던 때라 큰 의미는 부여하지 않았다. 뭐, 새로 소개해주는 친구들에게 예쁘게 보이라는 거겠지, 딱 그 정도의 생각.


길치였던 나는 보기 좋게 그 날 약속에 30분이나 늦었다. 주차장 같은 도로 위에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데 대체 언제 오냐는 오빠의 전화에 마음이 조급했던 기억. 발렛을 맡기고 부랴부랴 식당 안으로 뛰어들어가 처음 본 오빠의 친구들에게 첫인사와 사과말을 건네며 의자에 앉았다. 거기서 남편을 처음 봤다. 남편의 첫인상은 운동선수 그 자체였다. 딱 봐도 다부진 체격에 약간은 그을린 피부. 누가봐도 남자답게 생겼다는 말이 나올 만큼 선이 굵은 얼굴. 솔직히 말하자면 내 타입이 전혀 아니었다. 나는 호리호리한 기생오라비같은 남자의 외모에 끌리는 부류의 여성이었다. 남자다운 '추신수' 스타일의 외모에는 전혀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그날 저녁을 먹고, 인근 카페에서의 차 한 잔을 마시고 우리는 헤어졌다. 친한 오빠, 오빠의 학교 친구 두 명, 그리고 나까지 총 4명이서 함께한 자리였다. 자리를 파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친한 오빠의 전화를 받았다.


“어때? J 정말 괜찮지?”

“오빠, 무슨 말 하는 거야.”

“J가 페이스북에서 너 사진보고 소개해 달래서 마련한 자리야. J 진짜 괜찮은 애다. 잘해봐.”


그런 거였구나. 하지만 J는 내 취향의 사람이 아닌걸…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마음 한 편에는 왜 J가 오늘 내 번호를 물어보지 않았는가에 대한 궁금증이 일었다. 본인이 먼저 소개해 달라 해놓고서 막상 보니 내가 별로였던 걸까. 괜시레 자존심이 상하는 기분이 들면서 오히려 내 스타일이 아닌 J가 자꾸만 생각이 났다.


그러다 며칠 뒤 J에게 페이스북 메시지를 받았고, 그는 내게 데이트 신청을 했다. 분명 내가 추구한 남성상은 아니었지만 이상하게도 그에게 끌렸다. 분명한 건 그가 '좋은 사람'이라는 사실. 남녀 관계를 떠나 그는 한 명의 사람으로서 존중할 만한 삶의 태도, 성품을 가졌다는 걸 나는 분명히 알 수 있었다. 그랬기에 내가 그를 진심을 다해 사랑할 수만 있다면, 어린 시절부터 꿈꾸던 '진짜 사랑'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들었다. 밤마다 '제발 그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해달라고' 기도했고, 그 기도가 통했을까. 나는 어느새 그에게 스며들듯 사랑에 빠졌다.



내게 남편은 뒤늦게 찾아온 첫사랑이었고, 스물두살의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난 연애의 모든 부분에서 서툴렀다. 천천히 다가와달라고 부탁하는 내게 그는 "너가 꿈꾸는 사랑은 영화같은 사랑 같은데, 오빠가 최대한 노력해볼게"라고 달콤한 약속을 했다. 그는 '말하는 건 지키는 사람'이었고, 약속대로 서두르지 않고 내 속도에 맞춰 연애를 이어나갔다.


그런 그가 성급했던 부분이 있었는데, 만난지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았을 쯤, 그는 저녁 식사를 하는 도중 "너와 2-3년 연애하고, 결혼하고 싶어"라고 말했다. 


결혼? 난 적잖이 당황했다. 당시의 난 고작 스물 셋이었다. 결혼에 대해서는 단 한 번도 진지하게 고려해보지 않았던 나는 그의 말에 대체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냐며 핀잔을 놓았지만, 그는 그날부터 매일 ‘결혼’에 대해 이야기했다. 매일같이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듣다 보니, 세뇌가 됐는지 언제부턴가 나도 ‘결혼은 그와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의 한결같고 불도저같은 사랑을 받으며 이십대 내내 행복했다. 우리의 연애는 LA에서부터 시작돼 서울로 이어졌다.

우리는 내 나이 스물 다섯, 그의 나이 스물 일곱에 결혼에 골인했다. 그리고 우리는 처음 만났던 LA로 돌아와 두 아이를 낳고 살고 있다.


그와 만난지 12년차. 영원한 청춘에 머무를줄만 알았던 우리는 어느새 아줌마, 아저씨의 모습을 하고 두 아들을 키우며 매일을 살아간다. 그를 만나기 전의 삶은 마치 전생처럼 아득하게만 여겨진다. 그가 없는 내 삶은 이제는 상상 조차 어려운 것이다. 오늘은 미국에서 ’아버지의 날‘(Father’s Day)이었다. 외식 보다 집밥을 좋아하는 남편에게 평소와 다를 것 없는 메뉴로 저녁 한 상을 차려줬다. 오징어 불고기, 된장찌개, 샐러드. 매번 반복되는 집밥 메뉴에 질릴만도 한데 그는 오늘도 세 그릇이나 뚝딱 해치웠다. 집밥을 좋아하는 그에게 평생 집밥을 해주며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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