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강제 집순이'가 되어보니

좋은 점도 있더라

by Iris Seok


“넌 ‘집순이’(혹은 집돌이)야?”


때때로 사람들과 이런 질문을 주고 받곤 한다. 집순이(집돌이)는 외출을 거의 하지 않고 집에서 시간 보내기를 즐기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집순이가 있는가 하면, 집에 있는 시간 보단 밖에서 보내는 시간을 훨씬 더 선호하는 밖순이(밖돌이)도 있는 법이다.




난 대개 스스로를 ‘밖순이’로 생각해왔는데, 이는 365일 중 적어도 330일 이상은 밖에서 시간을 보내야 직성이 풀리는 내 성향을 익히 잘 파악하고 있기 때문. 아무런 약속이 없는 날에도 난 기어코 옷을 입고 서점, 카페, 피트니스 등을 향해 집을 나서는 사람이다. 바깥 공기를 마셔줘야 엔돌핀이 솟아나는 사람이랄까.



그러다 최근 나의 일부에 ‘집순이’ 기질이 어느정도, 아니 사실 꽤 많이 포함돼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야 말았다. 코로나19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LA에서 ‘사회적 거리두기’ 행정명령인 ‘세이퍼 엣 홈’(safer at home: 식당, 술집, 영화관 등 모든 곳의 영업이 중단되고, 주민들의 외출 자제 권고)’ 행정명령이 지난 3월16일부터 시행돼 본의 아니게 강제 ‘집순이 라이프’에 돌입하게 됐는데, 지난 3주가 넘는 시간 동안 집순이 생활을 묘하게 즐기고 있는 나를 발견하곤 내 안의 집순이의 존재를 인정해야만 했다.



스스로 자문하게 됐다. 난 왜 집에만 있는 지금의 생활에 묘한 만족감을 느끼고 있는 것일까? 이 편안하고 여유로운 감정은 뭘까?





아이들과의 시간


먼저 최근 재택근무를 하게 되면서 ‘아이들과의 보낼 수 있는 시간’이 평소보다 3배~4배 이상 증가했다. 워킹맘인 나는 평소 아이들과 보낼 수 있는 시간이 거의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잠깐, 집에 와서 저녁 먹고 잠들기 전까지 잠깐, 딱 그 정도가 내가 하루에 아이들과 보낼 수 있는 시간의 전부였다.


고백하자면 그 얼마 안되는 육아의 시간 마저도 즐기지 못했었다. 일로 가득 채워진 일상 속에 아이들의 존재는 때때로 무거운 짐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퇴근 후 집에 돌아와서 나만의 휴식 시간을 보장받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지 상상해보는 횟수가 잦았다. ‘무자식이 상팔자’라는 옛 어른들의 말이 얼마나 뼈 때리는 진실이었는지를 주기적으로 곱씹으며, 워킹맘이라는 정체성을 부정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나날이었다.


그런데 재택근무에 들어간 후, 좋으나 싫으나 아이들과 찐득한 하루를 보내게 됐다. 게다가 코로나19 속 광고가 대폭 줄어든 회사의 비상경영 체제에 따른 ‘무상휴가’ 조치에 상상 조차 못했던 휴가를 선물 받았다. 월급이 대폭 감소되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집에서 일과 육아 둘 다를 소화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기에 나로서는 천만다행인 소식이었다.


말하자면 난 전업주부의 일상을 보내고 있다(틈틈이 일도 해야하긴 하지만).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다 보니, 내가 평소 얼마나 소중한 순간들을 놓치며 살아가고 있는지를 자각하게 됐다. 내가 없는 시간 동안 이 아이들은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성장하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스쳤다. 첫째 아이가 ‘매일이 일요일 같다’며 웃으며 일어나는 모습, 둘째 아이의 아장아장 걸음을 떼는 모습, 두 형제가 함께 노는 모습…일하는 엄마는 참 많은 걸 놓치며 살고 있다는 걸 문득 깨닫는다.



코로나19로 일상이 무너져 내렸지만, 모든 것에는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이 공존하기 마련이다. 강제 집순이 생활은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을 대폭 늘렸고, 이들에게 무엇을 해먹일지 고민하며 보내는 요즘이 감사하다.



불필요한 사회 생활의 부제


회사에 출근하지 않으니, 불필요한 사회생활을 해야할 필요가 사라졌다.


사실 난 사람들과 만나는 일을 좋아한다. 기자란 직업에 매력을 느꼈던 가장 큰 이유도 매일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직업이라는 점에서다. 기자가 아니면 만날 수 없었던 사람들을 만나 그들을 가까이서 인터뷰할 수 있다는 건 개인의 삶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좋아하는 일을 한다 해서 늘 행복하기만 할 수는 없다. 때때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지쳐 있었던 것 같다. 그날의 내 기분, 의지 등과 상관없이 매일 누군가를 만나 대화를 한다는 게 가끔씩은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사람은 가끔씩은 혼자만의 시간도 필요한데, 늘 사회에 노출되어 있다 보니 피로감이 쌓였다.


내가 지쳐있다는 사실은 최근 집에 머물며 알게 됐다. 가족 이외의 그 누구도 만나지 않고, 카톡으로만 사람들과 대화하며, 내 시간을 틈틈이 즐길 수 있는 지금이 싫지 않다. 아니, 오히려 ‘조금만 더 재택근무를 하고 싶다…’라는 생각도 남몰래 하곤 한다.



나의 자아를 들여다 보는 시간


요즘의 나날들은 오로지 나와 가족들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다. 아이들을 돌보고, 아이들이 잠든 시간에는 나만을 위한 시간을 가진다. 워킹맘에게 이 시간이 얼마나 꿈같이 소중한 시간인지는 말해 무엇하랴. 읽고 싶었던 책들, 보고 싶었던 영상들, 쓰고 싶었던 글들…하고싶었던 일들이 참 많았던 만큼 내게 갑작스럽게 주어진 자유시간을 최대한 알차게 쓰려고 노력 중이다.


그래서 최근 시작한 나만의 프로젝트는 이른바 '아침형 인간 되기'


새벽 5시에 기상해 요가, 일기쓰기, 독서, 공부, 신문 읽기 등을 하고 있다. 오전 7시에 대개 첫째 아들이 일어나므로 내게 주어진 자유시간은 2시간. 가장 고요한 새벽 시간에 전기 돌아가는 소리만 들으며 내가 하고싶었던 무언가를 한다는 데서 오는 만족감이 아주 크다. 조금 더 거창하게 표현하면 마치 '내 자아를 찾는 시간' 같다고나 할까.


바쁜 일상 속에서 매몰됐던 내 영혼을 되돌아 보고, 치유하고, 앞으로 나아간다. 그 일이 새벽시간 2시간 동안 일어난다. 출근을 해야한다는 압박이 없기 때문에 가능한 시간이다. 다시 출근을 해야하는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면 지금처럼 2시간의 자유시간은 꿈도 꿀 수 없다. (그럼에도 코로나 이후의 삶에서도 아침형 인간의 습관은 유지할 생각이다.)






코로나19는 전세계적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고통으로 몰아넣은 최악의 바이러스다. 코로나19 자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순 없다. 지금도 최전선에서 환자들을 구하기 위해 노력하는 의료진들의 모습을 보면 가슴이 아릿한게 감사의 마음 뿐이다. 그들을 위해서라도 모든 국민이 '사회적 거리두기'에 충실해 하루 빨리 코로나19로부터 벗어나길 희망한다.


다만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집에서 보내는 시간동안 '우울함'으로만 일상이 채워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코로나19로 힘든 것은 혼자만이 아니다. 모두가 동일한 상황에 놓여있다. 이 상황에서 코로나19 관련 뉴스만 들여다 보며 건강염려증, 우울증을 키우기 보다는 자신만의 생활 습관을 구축해 보람찬 하루를 보냈으면 좋겠다. 하루 하루 자신만의 방법으로 잘 지내다 보면, 어느덧 우리의 일상이 되돌아 오리라고...믿고 소망한다. 모두가 힘내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