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와 재택근무 (feat. 육아)

기약없는 재택근무에 돌입했다

by Iris Seok

직장생활의 규율과 통제 등에 지칠 때면 프리랜서의 삶에 대해 상상해보곤 했다. 회사가 아닌 카페로 출근하는 일상. 누군가의 통제없이 내 마음대로 하루의 일과를 계획하고, 실행해 나갈 수 있는 일상. 그런 일상으로 채워진 삶을 산다는 건 어떨까. 궁금했다. 40대부터는 꼭 그런 삶을 살기로 스스로에게 다짐을 해본다. 그런 삶을 위해 30대를 알록달록하게 채워나가 보자는 다짐.


최근 바라던 프리랜서의 삶은 아니지만, 코로나가 미국을 덮치는 바람에 난생 처음 재택근무란 것을 경험해보게 됐다. 지난 일요일 저녁, 회사로부터 이메일이 왔다. 내일부터 기약 없는 재택근무에 돌입한다는 통보가 담긴 간단명료한 이메일이었다.



이메일을 읽자마자 ‘와!’하는 소리가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튀어 나왔다. 꿈인가 생시인가. 아이를 유치원에 맡겨두고, 커피숍에 가서 나만의 하루를 보낼 수 있겠구나 싶어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이때만 해도 코로나의 심각성을 현실에서 체감하지 못했다). 여전히 데스크의 지휘 하에 기사를 쓰는 일은 똑같겠지만, 그래도 회사가 아닌 내가 원하는 공간에서 기사를 써내려 갈 수 있다는 것, 기대감과 설렘이 증폭했다.



하지만 상황은 내 기대와는 아주 다르게 흘러갔다. 재택근무 통보를 받은 지 2~3시간 후에 에릭 가세티 LA시장이 긴급 행정명령을 발표했다. 3월31일까지 LA시의 모든 식당, 카페, 술집, 영화관 등 을 폐쇄조치 취하겠다는 가히 충격적인 발표였다. 아니, 현대사회에서 그런 일이 가능하다고? 단 하루 아침 만에 모든 곳의 영업이 중단되다니, 자본주의 국가에서 가능한 일인가?



다음날이 되자 단 몇시간 만에 도시 전체가 ‘유령도시’처럼 변해버린 걸 확인할 수 있었다. 평소 자주 들렸던 커피숍에 들리자 ‘테이크 아웃만 가능하다’는 설명이 적힌 종이가 출입문에 붙어있었고, 실내 모든 의자들은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었다. 다른 식당들도 다 마찬가지였다. 미국은 그런 나라였다. 시장의 긴급 행정명령에 따라 거의 모든 곳의 영업이 중단됐다. 식당과 카페의 경우 테이크 아웃, 배달 음식만 허용됐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아들이 다니던 유치원도 긴급 방학에 돌입했다.



그렇다…난 꿈꾸던 재택근무를 할 수 없었다. 집에 갇혀 재택근무를 하는 동시에 육아를 하게 된 것이다. 일과 육아의 조합이라니…



이런 건 내가 꿈꾸던 근사한 재택근무의 모습이 아니었지만,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다.





재택근무에 돌입한 첫째날 난 알람 없이 일어났다. 먼저 일어난 아들이 오히려 나를 깨우러 방으로 달려왔다. 아이를 토닥이며 ‘우리 같이 침대에서 조금만 더 뒹굴뒹굴하자’고 졸랐다. 출근 준비를 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운전하는 시간이 없어진 것만으로도 아침시간이 굉장히 여유로워졌다.



그러나…여유는 잠시뿐. 9시부터 본격 ‘일 모드’를 가동하기 위해선 그 전에 아들의 아침 끼니를 챙겨 줘야했고, 이빨도 닦여야 했다. 분주한 아침을 보내고, 난 화장대에 비상용으로 꾸린 '업무용 책상' 앞에 앉을 수 있었다.

화장대를 업무용 책상으로 사용 중인 요즘, 유툽에서 올드팝송 들으며, 기사를 작성 중인 모습.



9시2분쯤, 데스크 부장님에게 단체 카톡이 왔다. ‘모두들 출근 잘 했습니까.’ 팀원들은 즉각 ‘네’라는 답변을 이어나갔다. 함께 사무실에 있지 않아도 원격으로 감시 당하는 느낌이란 게 이런 걸까. 외신 기사들을 살피고, 취재원들에게 온 이메일 등 중요 내용을 추려 버짓을 제출한다. 버짓을 제출하는 40분간은 고강도의 집중력이 필요하다. 아이가 옆에서 계속 말을 걸고, 이것 해달라, 저것 해달라 온갖 요구를 늘어놓는 상황에서 가까스로 버짓을 제출하고 한숨을 돌렸다.


부장님들의 회의가 진행되는 동안 부엌으로 나가 커피를 탄다. 하, 일하는 도중에 부엌에 나와 커피를 타다니. 뭔가 이 자체로도 자유감을 느낄 수 있었다. 부장님의 카톡이 울릴까, 매너모드를 풀고 핸드폰을 옆에 둔 채로 아이들과 함께 10분~15분간의 자유시간을 즐겼다.


10시 20분. 부장님께서 단톡방을 통해 오늘 써야할 기사를 배정해줬다. 오전에 기사 하나를 완성해 부장님께 이메일로 보내야하므로, 그때부터 긴장되는 마음으로 일을 하기 시작한다. 은근한 부장님의 압박 카톡 속에서 쉼없이 일을 하는 와중에, 아이는 찡얼댔고, 어쩔 수 없이 TV를 보여주며 하루를 버텨냈다. 평소 TV를 거의 보여주지 않겠다,는 나만의 육아 철학이 무너지고야 만 순간이다.



일하는 엄마를 이해해줄리 없는 아들을 몇 번이나 혼냈는지...태어난지 만 4년도 안된 아들의 보챔이 당연한 걸 알면서도 기사 마감이 다가올 수록 다급한 마음에 짜증이 솟아났다.



6시까지 끝나지 않는 마감 기사를 붙잡고 있다가…드디어 해방.



‘이건 뭐, 사무실 출근보다 더 힘든 걸?’ 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이메일로 기사 제출을 한 뒤, '기사 보냈습니다'라는 카톡을 날려야 하는 시스템. 뭐랄까...사무실에서 보다 훨씬 내가 일하는 순간 순간을 지배받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오히려 재택근무인데도 한눈을 팔지 않고, 하루종일 일만 한 것 같다.



만약 육아의 부분만 제외한다면, 일의 강도가 높은데도 불구하고 재택근무를 꽤나 즐길 수 있었을 것 같다. 하지만 육아와 재택근무가 함께 공존해야 하는 지금 상황에서도 누군가 내일 아침 "재택근무할래, 출근할래"를 묻는다면 일말의 고민없이 재택근무를 선택할 것 같다.


당연히 코로나의 위험으로부터 안전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중간중간 침대에도 누워보고, 나의 공간에서 일을 해나가는 기분이 실로 행복하다. 또한 워킹맘으로서 그동안 아이가 커나가는 모습을 거의 보지 못했는데, 하루종일 함께 한 공간에 있는 경험이 의미있게 다가왔다. (굉장히 힘들지만...인내력이 필요하지만...)


미국은 기약 없는 셧다운 기간에 돌입했다. 일단 LA는 오는 4월19일까지 지금처럼 셧다운 행정명령을 유지할 예정이다. 그 이야기인 즉슨, 나의 재택근무+육아 일정은 적어도 4월19일까지는 보장됐다는 것.



코로나 기간 동안 재택근무를 할 수 있는 환경 자체에 감사하며…재택근무와 육아의 쉽지 않은 조합 속에서 최선을 다하기 위해 오늘도 화이팅을 외쳐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