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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ris Seok Dec 31. 2020

난 쓰레기와 함께 살고 있었다

비울 수록 채워지는 삶에 관하여 


최근 이사를 했다. 미국에는 포장이사가 없기 때문에 박스를 사서 짐을 싸고, 푸르는 일까지 전부 나의 몫이었다. 2주간의 충분한 시간을 두고 부엌, 거실, 방 등으로 섹션을 나눠 짐을 싸기 시작했다. 겉으로는 보이지 않았지만 서랍, 장롱 속에서는 끝없이 물건이 빠져나왔다. 


나는 쓰레기와 함께 살고 있었구나


하는 자괴감과 함께 한탄이 절로 새어 나왔다. 


분명 무언가가 잘못됐다. 이렇게 많은 쓰레기들을 언제 스스로 구입해 집 안에 쌓아둔 것일까? 구입했던 기억조차 없는 물건들도 태반이었다. 만약 이사를 가지 않았더라면, 구석에 처박혀 영원히 꺼내보지 않았을 확률은 99%. 스스로 맥시멀리스트임을 자각하고 있었지만, 이정도인 줄은 몰랐다. 


지금까지 늘 마음속 한편에 ‘미니멀리즘’에 대한 동경을 가지고 있고, ‘미니멀리즘’의 이로움에 대해 궁금함을 품고 있었던 이유는 ‘다다익선’을 지향하는 나의 삶의 태도가 어딘가 나를 파괴하고 있다는 미세한 느낌을 감지하고 있었기 때문은 아닐까. 


코로나19 시기에는 필요도 없는 옷과 장신구들을 정리하며, 삶의 태도를 변화시킬 때가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사짐 정리를 끝내고 고민없이 넷플릭스에서 ‘미니멀리즘’에 대해 검색한 건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사람들은 역사적으로 가장 호황된 삶을 살고 있는데,
이와 동시에 왜 끝없이 무언가를 갈망하는 것일까?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미니멀리즘: 비우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위와 같은 질문에 대한 답을 쫓기 위해 물질 만능주의인 현대사회에서 미니멀리즘의 태도를 추구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보여준다. 사람들은 역사상 가장 호황기인 오늘날을 살고 있는데, 왜 무언가를 계속 구매하고, 끝없이 가지고 싶어하는 것일까. 나처럼 왜 집에다 무언가를 끊임없이 채워넣으며, 쓰레기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다큐멘터리는 사람들이 무언가를 계속해서 사는 이유는 '중독'됐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처음에 차를 구매할 때는 '필요'에 의해서였지만 두번째, 세번째 차를 계속해서 사게 되는 것은 그저 이전의 차가 싫증났기 때문이며, 사는 일에 중독됐기 때문이라는 것. 게다가 소셜미디어는 사람들이 물건에 중독된 채로 살아가게끔 부추긴다. 실제로 인스타그램, 페이스북을 하다 보면 우리는 수많은 광고로부터 노출되고, 자신도 모르게 그 광고에 응한다. 나역시 인스타그램을 하다 광고 게시물을 보고, '오 나에게 딱 맞는 물건을 추천해줬네!'라고 생각하며, 클릭 한 번으로 새로운 물건을 구입하곤 했다. 


소셜미디어가 대중화된 현대사회에서는 타인의 삶을 들여다 보는 일이 너무나 쉬워졌다. 분명 사람은 자신의 가장 좋은 모습을 소셜미디어에 노출하는데, 그걸 바라보는 타인은 그 사실을 마음 한 구석으로는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소셜미디어 속 화려한 누군가의 삶을 갈망하게 된다. 이로 인해 사람들은 그 '누군가'가 되기 위해 자신에게 실제로는 필요하지도 않는 물건을 구입하고, 소셜미디어를 통해 공유하며 맥시멀리스트가 되는 것 같다. 


다큐멘터리에서는 자라, H&M과 같은 패스트패션이 유행하기 시작하며 사람들은 더 많은 옷을 사기 시작했으며, 심지어 집 안의 가구 마저 패션 아이템의 하나로 여기며 구입하곤 한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소셜미디어에는 #인테리어 #홈인테리어만 검색해도 수만개의 멋진 집이 나온다. 이젠 집 안의 모든 물건들이 하나의 패션이 되어버렸고, 그로 인해 사람들이 구매해야 할 물건의 분야는 더욱 확대됐다. 


자발적 노숙인이 된 '콜린'

4년 전부터 자발적인 노숙자의 삶을 살고 있다는 콜린의 이야기가 흥미롭게 다가왔다. 그는 가방 단 두개에 들어갈 만큼의 물건을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처분한다. 그가 남긴 물건은 단 51개. 그는 물건들을 가방 안에 채워넣은 후 가방을 메고 전 세계를 돌아다니기 시작한다. 그는 세상 곳곳을 돌아다니며 단기 월세 집에서 살아간다. 

전 월스트리트 중개인 AJ 레온

월스트리트의 중개인이었던 AJ 레온의 이야기도 감명깊었다. 그는 억대 연봉을 받으며 승승장구하는 금융인이었고, 어느날 상사로부터 승진 제의를 받게 된다. 그런데 이상하게 바로 그 순간, 그는 뭔가가 잘못됐다는 사실을 깨닫고 만다. 자신의 방에 돌아와 펑펑 울었다는 레온은 승진을 승낙하게 되면 자신은 평생 이 직장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갇힌 삶을 살게될 거라는 사실과 직면한다. 그가 원하던 삶은 이런 삶이 아니었는데, 보다 주체적이고 모험 가득한 삶을 늘 꿈꿔왔는데, 평생 이 곳에 갇힌다고 생각하니 암담했던 레온은 방을 박차고 그날로 회사를 그만두는 결정을 내리게 된다. 


다큐멘터리는 물건에 대한 광기를 없애고, 그 관심을 사람에게 돌려야 한다고 주장하며 마무리를 맺는다. 물건은 그저 물건일 뿐이다. 물건에 대한 관심을 끄고, 나와 내 이웃, 그리고 더 넓은 범위의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사랑을 주고 받는 일이야 말로 인생에서 가장 값지다는게 다큐멘터리의 주제인 셈이다. 미니멀리즘은 물건에 대한 광기를 없애기 위한 하나의 운동이며 움직임이다.


미니멀리즘의 삶의 태도로 인생을 사는 사람들은 하나 같이 말한다. "비울 수록 채워지고, 행복해진다고." 삶의 태도는 사람마다 다양할 수 밖에 없고, 정답은 없다. 하지만 새로이 다가올 2021년에는 지금보다는 비우는 삶을 도전해보고 싶다. 이사짐을 정리하며 '필요도 없는' '쓸모없는' '쓰레기와 같은' 물건들로 가득한 내 집에 대한 회의감을 잊지 않고, 조금은 달라진 내가 되고 싶다. 비울 수록 채워지는 삶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는 2021년이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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