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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ris Seok Jan 27. 2021

랜선 모임, 그 찬란함에 대하여

랜선 라이프 예찬-3) 랜선 모임

사람을 좋아하는 엔프피(ENFP) 유형의 나는 미국에 살면서 매년 연말이면 마음 한 켠이 사르르 시려왔다. 차가운 눈송이가 마음의 맨바닥으로 떨어져 끝없이 알싸한 냉기를 퍼뜨리는 것만 같았다. 유독 한국에 가고 싶은 열망이 강한 시기. 그건 매년 연말이면 친구들의 송년회, 가족들의 연말 모임에 참석하지 못하는 자의 아쉬움에 향수까지 더해져 발산된 감정때문이었다. 그런데 코로나19 시기의 연말의 모습은 조금 달랐다. 한국을 향한 향수가 아예 없었다고 한다면 새빨간 거짓말일테지만 예년의 서글픔의 10분의 1정도로만 아쉬웠다. 


왜? 


이 모든 건 랜선모임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전 세계의 모든 사람들에게 '뉴노멀'한 일상을 가져다줬는데, 그 중에서 온라인 화상채팅 문화를 열발자국 진보하게 했다. 거기다 '줌(zoom)'이라는 화상채팅을 제공하는 기업의 엄청난 성장을 가능케했다. (구글미트도 사용해봤지만 개인적으로 '줌'만큼 매끄럽지 않았다) 


지난해부터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한국이든 미국이든 대부분의 사람들이 집콕하는 생활을 하다 보니 친구들과 줌을 통해 만나는 경우가 부쩍 늘었다. 지난해 3월부터 적어도 한 달에 한 두번씩은 다른 그룹의 친구들을 주기적으로 만났다. 그러다 12월, 송년회 시기가 오자 친하게 지내는 모든 그룹에서 '줌 송년회'를 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줌을 통해 송년회를 하는 일이 젊은층에서는 비일비재한 일이 되어버린 것이다. 우리 회사만 해도 줌을 통해 약 60명에 가까운 직원들이 동시 접속해 줌 시무식을 치뤘으니, '랜선 모임'은 뉴노멀의 일부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시기임에는 틀림없다.  


랜선 모임을 통해 마치 한국에 있는 것처럼 친구들과 약속을 잡기 시작했다. 이 그룹과는 15일, 저 그룹과는 20일, '23일은 어때?'라며 약속 날짜를 정하며 나는 조금은 들뜬 감정을 느꼈다.  


송년회와 신년회 날짜를 잡으며 내가 한국에 있는 건지, 미국에 있는 건지 헷갈릴 정도였다. 실로 오랜만에 여러 친구들과 약속을 잡으니 팬데믹 와중에도 신이 났다. 사회생활의 부재로 때때로 우울감도 있었는데, 랜선모임은 오랜만에 친구들과 만나 서로의 안부를 물을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줬다. 


줌을 통한 만남의 장점은 바이러스 대유행 속에서도 서로 얼굴을 보고 대화할 수 있다는 점이었고, 더불어시공간을 뛰어넘어 여러 사람이 한 자리에 모일 수 있다는 것이다.

 

나의 경우 줌을 통해 유학시절 동고동락하던 친구들과 만날 수 있었다. 뉴욕, LA, 한국 등 여러 곳에 흩어져 거주하는 우리가 시차를 고려해 날짜와 시간을 정한 후 줌을 통해 한 자리에 모였다. 9명이 한 자리에 모인 건 10년 전 그 시절 이후로는 처음인 것만 같았다. 이 모임에는 유부녀, 유부남이 고루 섞여 있어 모두가 한국에 거주한다 하더라도 시간을 맞춰 한 날 한 시에 만나기란 힘든 일이었다. 


9명이 동시접속해 줌을 통해 대화를 하는 일이 쉽지는 않았다. 종종 오디오가 겹쳐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고, 소통의 오류가 있기도 했다. 내가 하는 말을 저쪽편에서 알아듣지 못하는가 하면 서로 다른 주제를 두고 이야기 하기도 했다. 게다가 우리 중 부모가 된 4명은 화상채팅 중 아이들이 화면으로 출몰해 채팅의 흐름이 원활하게 흘러가지 않았다. 



그럼에도 '랜선모임'이었기에 가능했던 만남이었고, 그래서 더할나위 없이 감사했다. 




랜선 모임은 사적인 만남 이외에도 내가 일하는 방식에 큰 영향을 미쳤다. 코로나19가 본격적으로 퍼진 지난 3월부터 LA에서 대부분의 기자회견은 줌을 통해 열리고 있다. LA 시의회 회의, 주 정부 브리핑, 선거 캠페인 행사 등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오프라인 행사는 온라인 모임으로 대체됐다. 


나는 현장에 가지 않고서도 줌을 통해 기자회견에 참석하고, 누군가를 인터뷰할 수 있었다. 현장에서만 느낄 수 있던 생생함이랄까, 생동감을 느끼지 못해 아쉽기도 했지만 바이러스의 위험 속에 안전하게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한 심정이었다. 


게다가 막상 줌을 통해 모든 취재를 해결하다 보니 생각보다 편리한 점이 많았다. 


우선 취재를 하러 가기 위해 소요되는 시간 낭비를 줄일 수 있었다. 기자로 생활하다 보면 길거리 위에서 흘려 보내는 시간이 많다. 취재를 가기 위해 왕복으로 차 안에서 1~2시간을 쓰는 일이 잦은데(사실 그 점이 좋아 내 일을 즐길 수 있다는 함정도 있다), 코로나 시기에는 모든 취재가 온라인을 통해 해결되다 보니 낭비되는 시간이 확실히 사라졌다. 그저 줌 링크에 접속하면 취재가 가능했다.


게다가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공간의 제약을 뛰어넘어 오프라인에서는 만나기 힘든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이 엄청난 장점으로 작용했다. 


한 예로 지난해 11월 선거에는 미 전역에서 한인 후보가 5명이 연방의회 하원의원에 출마했다. 후보들은 남가주 지역에서 3명, 시애틀에서 1명, 뉴욕에서 1명씩 있었는데, 한인 후보라는 공통점으로 당파를 초월한 공동 기자회견이 열렸다. 한 자리에 모인 후보들은 한인으로서의 정체성에 서로 큰 공감을 나누며, 미주 한인 커뮤니티와 의견을 공유할 수 있었다. 


만약 코로나 시기가 아니었더라면? 줌 기자회견은 불가능했을테고, 그저 각 지역의 후보들끼리 따로따로 기자회견을 가졌을 확률이 높다. 5명의 한인 후보가 한 자리에 모이는 역사적인 순간은 없었을 것이란 이야기다. 




때때로 생각해본다. 


과연 코로나19 이전의 시기로 돌아갈 수 있을까?

뉴노멀한 삶이 과거의 노멀한 삶이 되는 날은 올까? 


이미 인류는 뉴노멀한 삶을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예정보다 일찍 경험해 버렸다. 온라인을 통해 돌아가는 삶의 편리함도 알아 버렸다. 굳이 오프라인이 아니어도 온라인으로 대부분의 생활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아버린 것이다. 때문에 코로나19 시기가 종식된다 하더라도 이 새로운 삶의 양식은 우리의 일상에 지금처럼 함께일지 모른다. 언택트와 관련한 책들이 서점가에 쏟아져 나오는 이유도, 우리가 새로운 미래의 먹거리를 고심해봐야 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랜선모임의 편리함과 유용함을 예찬하며, 우리가 앞으로 살아갈 미래 세계에 대해 고심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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