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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ris Seok May 05. 2021

인스타그램을 삭제했다

마음의 평화를 되찾았다

인스타그램 앱을 휴대폰에서 삭제한 지 일주일이 지났다. 내 마음이 평소보다 고요해졌다는 걸 새삼 느꼈다. 나는 왜 인스타그램을 삭제했을까.


사실 난 인스타그램 헤비 유저에 속하는 편이다. 타지에서 살고 있는 내게 인스타그램은 한국에 있는 친구, 지인들과 연결 고리나 다름없다. 거리상의 이유로 자주 만나지는 못해도 인스타그램 덕분에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볼 수 있고, 내가 살아가는 모습도 공유할 수 있다. 나 이렇게 잘 살고 있어요, 하고 말하는 듯한 사진, 영상 등을 게시하며 나는 나의 삶을 인증하고 그들에게 소식을 전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거다. 인스타그램은 내 삶을 친구들과 이어주고, 즐겁게 만들어 주는 대신 마음 한 구석을 마구마구 어지럽힌다.


예를 들면 이런 것.


-어라, 이 친구가 내 게시물에 좋아요를 눌러주지 않았네. 우리 나름 친한 사이인줄 알았는데.


-이 친구는 나를 팔로우 하지도 않았잖아. 나한테 관심이 없나.



적다보니 부끄러워진다. 그런데 다들 이런 생각을 본능적으로 하지 않나. 인스타그램은 '관계'에 대해 자꾸 꼬집어 생각해보게 만드는 앱이다. 특히 '덜 친한' '애매한'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보게 만드는 앱.


사실 친한 사람들이야 인스타그램이 아니더라도 따로 소통하고, 만나기 때문에 굳이 인스타그램을 통해 내게 괴로움을 주지 않는다. 설령 그들이 댓글을 달지 않아도, 좋아요를 누르지 않아도 별다른 생각이 들지 않는다. 왜냐. 우린 이미 의심없이 친한 사이이므로.


그런데 애매한 관계에서는 그런 믿음이 없다. 인스타그램에서 보여지는 작은 행동으로도 서로가 서로에게 쉽게 상처를 줄 수 있게 된다. 인스타그램을 사용하지 않았더라면 서로에게 전혀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없는 상황에서도 인스타그램 때문에 괜한 오해가 생기기도 마련이다.


게다가 알고싶지 않는 타인의 잘 살고 있는 소식도 내 마음을 어지럽게 하곤 한다. 이미 맞팔을 해버린 이상 그들의 일상을 더 이상 보지 않을 수는 없을터. 그런데 그들의 매일매일의 삶을 지켜보기란 어쩐지 피곤한 일이다.


최근에 문득 내 기분이 가라앉아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곤 '오늘 내 기분이 왜 이러지?' 했다가 '아, 아까 인스타그램에서 본 어떤 게시물 때문에 이러는구나'를 깨닫고 과감하게 인스타그램 앱을 삭제했다. 인스타그램이 아니었더라면 그 날 내 기분이 나쁠 이유는 전혀 없었다. 내 기분을 좌지우지 하는 앱을 굳이 왜 중독자처럼 사용하고 있나 싶어서 과감하게 앱을 삭제하고 나니, 마음이 편해졌다.


아침에 눈을 뜨면 나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휴대폰을 만지며 인스타그램 앱을 들어가려는 나를 발견했다. 그러다 아 이제 내 휴대폰에는 인스타그램이 없지, 하고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휴대폰에 앱이 설치되어 있을 때는 시도때도 없이 인스타그램을 확인했던 것 같은데, 막상 없으니 없어도 그만이었다. 친구들의 업로드 게시물을 보고싶다는 욕구가 때때로 끓어 올랐지만, 간신히 참아냈다.




인스타그램을 삭제한 건 이번이 두번째였다. 과거 취업준비를 하던 때에도 인스타그램을 삭제하고 온전히 내 삶에만 집중하고자 했다. 당시에도 인스타그램을 하면 내 마음이 괜히 뒤숭숭 해질 때가 있다보니, 맑은 정신을 위해 앱을 삭제한 것이었다. 실제로 인스타그램을 몇 달 끊으니, 취업준비에만 온 신경을 끌어다 모을 수 있었다. '누군 어떻게 살고 있는데...'를 전혀 인지하지 않게 되니 내 눈 앞에 펼쳐진 삶이 더 자세히 보이기 시작했다.


타인의 삶이 아닌 진짜 내 삶을 직시하는 일은 마음의 평화에 큰 영향을 미친다. 작은 휴대폰 안의 가짜 세상이 아닌 내가 두 발 디디고 살아가는 진짜 세상에 온전히 살아갈 때 삶에 대한 '감사'도 커지는 것 같다.


물론 삶이 즐겁기만 할 때는 인스타그램으로 타격을 거의 받지 않는다. 타인이 어떻게 살건 말건 내 삶이 너무 즐거우니 말이다. 그런데 삶이 내가 원하는 트랙에서 벗어났다 싶으면 그때부터 위태로워진다. 조그마한 자극에도 쉽게 상처받을 수 있는 약한 자아를 가지고 나면 인스타그램이라는 앱 조차도 나를 공격할 수 있는 무기가 되는 것이다.


내 삶이 요즘 여유가 없었나, 되돌아본다. 인스타그램이 내게 부정적인 감정을 던져준 걸 보면 분명 여유가 없긴 한가 보다. 이럴 땐 잠시 인스타그램 디톡스가 필요하다. 친구들의 삶이 궁금해서 다시 돌아가긴 할테지만, 아직은 이 평화를 조금 더 누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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