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Iris Seok Aug 12. 2021

1년 반 만에 출근을 해보니

재택근무 vs 출근

그건 생각지도 못했던 재택근무였다. '내일부터 기약없는 재택근무에 돌입합니다'라고 쓰여있는 회사 총무국으로부터 온 이메일을 확인하고 그 때 내 기분은 어땠더라. 얼떨떨한 동시에 웃음꽃이 피어올랐던 것 같은데. 


지난해 3월만 해도 미국 내에서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위기 의식은 거의 없었다. 한국과 아시아 일부 국가에 국한된 위기상황처럼 느껴졌달까. 그래서 회사로부터 재택근무 시스템에 대한 통보를 받았을 때 기쁨이 컸다. 이게 웬 떡이람! 하지만 그로부터 2시간 뒤 지역 정부 차원의 '셧다운'(봉쇄령)이 발표되면서 난 아주 잠시 동안의 단꿈에서 깨어났다. 기뻐할 때가 아니구나, 지금 이 곳은 심각하구나, 라는 자각을 했다. 아이의 유치원도 잠정적으로 폐쇄됐으므로 내가 꿈꾸던 재택근무와는 만남과 동시에 이별해야했다. 


코로나 시국에 맞이하게 된 뜻밖의 재택근무는 장시간 지속됐다. 지난 1년 반동안 우리 회사는 재택근무로 운영돼 왔다. 물론 취재를 할 때는 현장에 가야 했기에 일반 회사들의 재택근무와는 다른점이 있지만, 대부분의 기자회견과 취재들이 온라인을 통해 이뤄져 무늬만 재택근무는 아니었다. 1년 반동안 재택근무를 하며 사무실 출근을 하던 시절이 호랑이 까까먹던 시절 마냥 머나 멀게 느껴졌다. 인간의 적응력이란 이처럼 빠르단 말인가. 


육아를 병행했기에 재택근무가 천국일 수만은 없었지만 육아와 일이 점차 일정한 패턴을 갖추고 자리를 잡게 되자 차차 일상이 편해졌다. 출퇴근을 하지 않고 딱 오전 9시부터 업무를 시작해서 오후 6시면 퇴근하고 바로 집에서의 또다른 하루를 시작할 수 있는 삶. 재택근무는 낭비되는 시간을 거의 없애준다는 점에서 워킹맘에게 균형잡힌 삶을 선사해줬다.  


그러나 인간은 뭐든 금세 적응해버리는 동물. 재택근무에 대한 감사는 어느덧 사라지고, 스멀스멀 무력감이 찾아왔다.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 집에 갇혀 일과 육아만 하는 삶. 그런 하루하루가 조금씩 지겹게 느껴졌고, '인간은 무엇으로 살아가나'와 같은 철학적인 질문들이 머리를 헤집으며 조울증 증세를 보이던 어느날, 회사로부터 통보받았다. 


'8월부터 정상화를 합니다'


재택근무를 통보했을 그 때처럼 정상화에 대한 통보도 굉장히 갑작스럽게 이뤄졌다. 회사 내부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9월쯤 정상화가 되리라 예측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정상화라고 해서 코로나19 이전처럼 매일 출근하는 삶으로 돌아가는 건 아니었고, 이른바 '하이브리드' 근무였다. 출근 반, 재택근무 반 형식으로 일을 하자는 것이었다. 델타 변이 급증으로 여전히 코로나19 사태가 심각한 현 상황 속에서 팀원들은 각자 출근할 날을 정해서 되도록 동선이 겹치는 것을 피했다. 




8월의 첫째주 월요일. 


정상화가 된 후 처음 회사에 출근하는 날이었다. 무려 1년 반 만에 회사에 출근한다고 생각하니 첫 출근하던 그날처럼 설레는 마음이 앞섰다. 점심 도시락을 싸서 남편을 출근시킨 후 샤워를 하고 화장을 했다. 이 새벽 바람부터 외출준비를 하는 게 얼마만인가. 집에서는 늘 추리닝, 잠옷 바람을 하고 일하는데, 출근룩으로 갈아입자 기분이 업됐다. 화장을 하고 옷을 갈아 입으니 재택근무 때는 느낄 수 없었던 '나는 직업인'이라는 감각이 살아났다. 

 


씨리얼로 대충 아침을 챙겨 먹고, 아이스라떼 한 잔을 타서 차에 탔다. 회사까지의 거리는 40분. 출근길 40분은 나에게 주어진 '자유시간'이나 다름없다. 평소 좋아하는 팟캐스트를 들으며 커피를 홀짝 마시면서 운전하는 기분, 마치 여행길에 오른 여행자와 같은 설렘과 자유를 느꼈다. 코로나 시국 전만 해도 유치원에 가는 아들과 함께 출근길에 올랐기 때문에 이런 여유로운 아침을 늘 꿈꿔오기만 했는데, 이제서야 만끽할 수 있게 됐다. 늘 생각하지만 육아보다 일이 백배는 더 쉽고 재밌다. 아이들과 떨어져 회사를 향하는 길이 모래주머니를 달고 뛰던 육상 선수가 모래주머니를 떼고 맨 몸으로 달리는 것처럼 여겨졌다. 


회사에 도착해 내 책상에 앉으니 달력은 2020년 3월에 멈춰있었다. 지난 1년 반동안 분명 나는 똑같이 육아를 하고, 일을 했는데, 사무실에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 이 세상이 잠시 멈춰있었던 것 마냥 정지상태로 다가왔다. 내 책상 의자에 앉고서야 '내가 현실로 되돌아왔다'고 실감했다. 


월요일 전체회의 시간에 오랜 기간 만나지 못했던 동료들을 만나 스몰토크를 하니 기분이 좋아졌다. 몸에서 에너지가 돌았다. 혼자 일하다 보면 도태되기 쉽상이고, 내가 프리랜서인지 한 회사에 소속된직장인인지 잊을 때가 많다. 그러다보면 무기력함도 찾아오고, 매너리즘에도 빠지게 된다역시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아무리 혼자서 일하는 게 편하다고 해도 주기적으로 동료들을 만날 필요가 있다. 


회사에 출근하니 아무래도 집에서 일할 때 보다 회사 돌아가는 사정을 직접 보고 느낄 수 있었다. 독자들로부터 걸려오는 전화도 받을 수 있어 현장의 목소리를 생생히 들을 수도 있었다. 게다가 종종 걸려오는 제보전화 덕에 특종 기사를 쓸 수도 있었다. 


무엇보다 출근을 하니까 '더 열심히 일하게 됐다.'


공부할 때 집이 아닌 도서관에 가는 사람들의 심리와도 같다. 주변에 열심히 공부하는 누군가를 보고 느껴야지만이 공부에 집중할 수 있게 되는 것, 그건 공부에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다. 일을 할 때도 동료가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고, 또 상대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을 할 때 더 열심히 일하게 된다. 


일단 옷부터 잠옷이 아닌 세미정장이기 때문에 자세를 흐트러뜨릴 수 없었다. 내 경우 그날 입은 옷에 따라 하루 마음가짐이 달라지기도 하는데, 일을 할 때는 더욱 그랬다. 집에서 아무래도 잠옷만 입고 일하다 보면 쳐지기 쉽고, 일에 대한 열정이 사그러드는데, 오픈된 공간에서 불편한 옷을 입고 일하니 긴장감도 돌고 집중력이 높아졌다. 


하루 종일 회사에서 일하다 오후 7시가 넘어서야 집에 도착했다. 애들이 어찌나 보고 싶었는지. 집에서 지지고 볶을 때는 잊고 있었는데, 떨어져 있으니 아이들을 향한 사랑도 샘솟았다. 사랑에 빠졌을 때도 약간의 거리감은 필요한데, 부모 자식간의 사랑에서도 마찬가지인가 보다.  




쓰다보니 출근 찬양글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결코 출근이 재택근무 보다 더 낫다고 말할 수는 없다. 우선 통근시간으로 인한 피로감이 너무 크고, 회사에 나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지치는 부분이 있었다. 누군가를 계속 의식해야 하는 건 일을 향한 집중력을 높여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피로감도 높여주니까. 때문에 현재 우리 회사처럼 하이브리드 방식으로 일하는 게 현재로서는 가장 좋은 제도가 아닐까 싶다. 재택근무 반, 출근 반으로 일한다면 각 제도의 장단점을 적절히 분배해 균형감 있게 일할 수 있을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인스타그램을 삭제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